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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Oct 21. 2024

12. 네가 사는 그곳은, 늘 여름바캉스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그래서.."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채 우물쭈물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나를. 경순이는 단 한 번의 책망이나 조금의 서운함도 없는 맑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외딴섬처럼 버려져 모질고 속악한 어른들에게 갖은 고초를 받아놓고도 눈비음 없는 꿋꿋한 저 얼굴이 나는 죄스러웠다. 착하고 순한 너에게 함부로 대한 나도, 몹쓸 어른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바닥으로 떨어뜨린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괜찮아, 현조야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봐."     


"그래서.. 첫아기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헌데..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열두 살 여름방학 이후 그녀의 삶을 엿보아 알게 된 나는 작은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면목이 없었다. 행동과 말투 온몸과 마음을 다해 경순이를 헤아리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첫아기는 말이야. 복 많이 받고 살라고. 복실이라고 지었어."     


열여섯 어린 몸으로 생명을 품은 경순이는. 폭력에서 첫아기를 지켜낸 경순이는. 피가 터져 잘 벌어지지 않는 입으로 맨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는 그 길로 옷 몇 가지와 할머니 지갑과 내 사진을 챙겨 도망쳤다고 한다. 무조건 앞만 보고 걸었다고 한다. 걷다 보면 할머니의 시장이 나오고. 내가 있는 옛 동네가 나올 것 같아서. 마냥 앞만 보고 걷고 또 걸었다고 한다.     


"원효로, 용문시장. 그게 기억이 안 났어? 학교이름이라도!"     


"이상하게 할머니 이름이랑, 문현조 얼굴밖에는 잘 생각이 안 나더라고.."     


"경찰서에라도 가지 그랬어!"     


"아.."     


"뭐? 이제야, 아...라고?"     


객쩍게 웃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워 흰자위가 나오도록 눈을 뒤집었다.


"첫아기.. 복실이는 어디 있어?"     


느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를 보며, 까르르 웃던 경순이는 회상하듯 골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참 걷다 보니까, 어디서 밥 짓는 냄새가 풍기는 거야. 눈이 뒤집힐 만큼 배고팠어. 개처럼 말이야. 코를 킁킁대면서 무작정 냄새를 쫓았지? 도착해 보니까, 어떤 교회 앞이었어. 염치 불고하고 들어갔는데. 머리가 훌러덩 벗겨진 할아버지가 한참 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데? 누구냐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밥상을 내오셨어. 예배당에서 먹었던 그 미역국 맛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먹는 내내 목사 할아버지가 천천히 먹어 아가. 천천히 먹어 아가, 밥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 하셨어. 그게 너무 좋아서.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물어봤지?"     


우연히 들어간 작은 시골교회에서 좋은 어른들을 만난 그녀는 목사님 소개로 미혼모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선교사님 부부가 아껴주고 많이 사랑해줬다고 한다.      


"같은 처지에 미혼모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어. 선생님들이 알파벳도 가르쳐줬고. 뜨개질하는 것. 다 알려줬어. 저녁에는 친구들이랑 드라마 보는 시간이 가장 좋았어. 그리고 새벽마다 박스 안에서 아기들이 태어났거든? 목사님이랑 선생님들 도와서 아기들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던 것도 좋았고."     


할머니와 살았던 유년시절처럼 참 행복했다면서 경순이는 침을 튀겨 자랑했다. 시간은 지나 이듬해 봄, 라일락 향기가 알싸한 계절에 예쁜 딸이 태어났고. 센터를 후원하던 외국인 부부가 그녀의 첫아기를 입양하고 싶어 했다. 설득하는 목사님에게 열여섯의 경순이는 고집을 부렸단다. 뭘 해서라도 자신이 키울 거라고.     


"경순아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아기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생각해 보자. 저분들은 오래도록 알고 봐온 좋은 어른들이란다. 복실이가 저분들 손에서 자란다면 분명히 넓은 세상을 보고 보다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자라날 거란다. 아이의 크는 모든 시간들을 알려준다고 하니, 경순아.. 정말 마음 아프겠지만, 아이를 위해 보내주자. 우리 경순이도 새롭게 살자. 목사님이랑 약속한 대로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보자. 대학도 가보는 거야. 경순이도 누려보자."     


동이 틀 무렵, 경순이는 센터에서 도망을 쳤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발에 잡힌 물집이 터져 슬리퍼에 달라붙어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생선을 팔던 시장이 나올 때까지. 처음 가진 친구와 뛰어놀던 놀이터가 나올 때까지. 아기가 울면 어느 집 처마 밑에서 젖을 물리고. 밤이슬을 피해 나무 밑에서 토끼잠을 자다가 해가 뜨면 다시 걸었다고 한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식당 앞에 버려진 음식찌꺼기를 훔쳐 먹고. 흐려지는 기억을 꽉 붙들면서 갓난 딸을 끌어안고 끝도 없이 긴 거리를 헤매었다고 한다.     


"유난히 달이 둥글고 크게 뜬 밤이었어. 배고프다고 울어야 할 아기가 계속 잠만 잤어. 복실아 일어나, 밥 먹어야지.. 젖을 물렸는데. 얼마나 곤하게 자는지 석류 같은 입술이 움직이지를 않더라고. 아무리 흔들고 볼을 비벼도 눈을 뜨지 않았어. 할머니처럼 우리 아기도 일어나지 않았어. 크고 둥근달이 뜬 밤에 아기가 울지를 않았어.."     


경순이는 깊은 잠에 든 아기를 안고 계속 걸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아기가 하늘로 돌아갔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음에도. 때가 되면 젖을 물리고. 밤이 되면 몸을 흔들어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하는 걸 보니. 아기가 이젠 젖을 먹을 수 없다는 걸. 품에 안겨 참새 같은 숨소리를 들려주지 않을 거란 걸. 쌀알 같은 볼을 비비지도 않고. 두 볼이 발그레질 때까지 젖을 빨지 않을 거란 걸. 가슴팍이 모유로 흠뻑 젖고 나서야 았다고 한다.     


"다리 밑으로 갔어. 시원한 개천이 졸졸 흐르고 풀벌레가 예쁜 연주를 해주는 여름밤이었어. 거기서 아기마지막으로 안았어."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면서 염치없는 울음을 꿀떡 삼켰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같잖은 동정심을 눌러 담으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순아.. 아기 묻은 곳 가자.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응?"     


내 말에 경순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음표를 만들어냈다.     


"복실이는 여기 있는데?"     


순진한 얼굴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에 두 손을 얹으면서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맥 빠지는 어깨를 들었다 올리면서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정말이야! 진짜 사람들이 안 믿는데, 나 정말 억울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경순이를 응시했다. 그녀는 답답하다며 몸서리를 쳤다.    

 

"둥글고 아주 큰 달이 떴었거든?"     


달무리가 짙게 번지던 그 밤에 이름 모를 마을에서 걸음을 멈춘 경순이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죽은 아기에게  마지막으로 젖을 물리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려 했단다. 옷섶을 열어 아기에게 젖을 물렸는데, 달처럼 하얗고 목련처럼 예쁜 아기가 사르륵 가슴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뭐라고?"     


"내 가슴속으로 들어갔어.. 진짜야!"     


내 앞에 경순이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 몸짓과 어투를 목격했다면 한치의 거짓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한 방울의 의심도 없이 순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땅에 묻어주려고 흙도 다 파놨거든.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젖 물리고 보내려고 가슴에 품었는데. 스르륵 사라졌어 정말이야. 그때 여기가 찌릿했거든? 아기가 살을 파고들어 가느라 가슴팍이 그토록 아팠던 거야.."    

 

경순이는 가슴중앙에 가만히 두 손을 대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금도 크고 둥근달이 뜨는 밤이면, 가슴속에서 아기 목소리가 들려.. 엄마아.. 엄마아.. 한단 말이야."     


그런 경순이를 향해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웃긴 건 뭔 줄 알아? 이젠 아기를 느낄 수만 있지. 볼 수는 없어서 무지하게 슬픈데도 오줌이 마려웠다는 거야. 정말 이상했어. 아기가 가슴속으로 들어간 것도. 오줌이 마려운 것도. 참 이상하고 신기한 밤이었어."     


경순이는 아기를 가슴에 묻고 구석으로 가서 아주 길게 오래도록 소변을 봤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서 파도소리가 들리는 거야. 첨엔 내 소변소린 줄 알았어. 근데 아니었어.. 알고 보니까. 가슴에서 들리던 거였어. 우리 아기가 가슴속에 바다를 만들었나 봐... 가슴에는 아주 큰 바다가 고여 있어."     


경순이의 첫 아이는. 땅이 아닌 가슴에 묻은 아이는. 아니.. 가슴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는. 경순이의 살과 뼈가 아프도록 파고 들어가 그 안에 바다를 만들어 사는 아이는. 둥근달이 뜨는 밤이면, 엄마아 엄마아.. 자장가를 불러 달라 보채는 그 아이는. 가슴팍에 크고 넓은 바다가 고여있게 만든 그 아이는. 아무도 깨어 있지 않는 밤에 일어나 파도를 출렁이며 몸을 흔들게 만드는 그 아이는. 모험심이 강하고 달이 뜨면 노래를 하는 장난스럽고 엉뚱한 그 아이는. 복 많이 받고 살라 복실이라 이름 지었다는 아이는. 여름밤에 바다로 여행을 떠난 복실이가 사는 그곳은 늘 여름바캉스라고..  경순이는 말했다.


"현조야... 달이 뜨는 밤이면, 가슴속에서 파도소리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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