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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밥을 퍼 준다는 건(2)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by 주양

“열두 살 여름방학 때 할머니랑 남해 갔었잖아. 친척이 한 달만 덕장에서 생선 말리는 거 도와주면 돈 많이 준다 했거든. 버스를 몇 시간 타고 갔는데. 남해는 참 예뻤어. 하늘이 바로 머리위에 붙어있더라? 너무 좋았어. 일하러 온 게 아니고 여행 온 것 같았어. 나 할머니랑 소풍 한번 가본 적이 없거든. 친척아줌마가 잠 잘 곳으로 창고를 내어 주었어도, 마냥 신이 났어. 창고 안에 평상에서 할머니랑 잤거든?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베개 옆에 쥐가 노려보고 있던 적도 있다? 할머니가 그때 참 미안해했어. 일주일 지나서 할머니가 그냥 집에 갈까? 하는데 나는 조금만 더 일해서 돈 받아서 서울 가요. 현조 선물 사서 가요, 했어. 그냥 그때 가자고 할 때 서울로 갈걸 그랬어.”


식어가던 화목난로에 다시 불이 붙었고, 따뜻한 온기가 책방 가득 퍼져나갔다. 경순이는 그 앞에 앉아 손을 쬐다가, 설핏 웃음 비슷한 걸 지었다. 그렇게도 텅 빈 미소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나는 한동안 그녀의 입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생선을 말리다가 떨어져서 다쳤는데, 병원 가기에는 눈치가 보였어. 친척어른들도 귀찮아했고. 아줌마가 준 파스만 할머니 등에 붙여줬어. 덥고 바람도 안 들어오고 쥐가 노려보는, 그 창고에서 할머니가 죽었어.”


아주 사소한 일에도 울어버리던 이경순은 눈물 대신 미소를 머금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또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다.


“할머니 장례도 치르지 않고. 어디다 묻었는지 말도 안 해주고. 친척아줌마가 내 손을 잡아끌고 허름한 배에 태웠어. 몇 시간 동안 바다만 보면서 도착한 곳은 작은 섬이었는데. 배에서 내리자마자 선착장에 서 있던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여자가 오라고 손짓을 했어. 속으로 생각했어. 우리 엄마도 저렇게 고울까?”


목조건물로 되어 있는 술집에서 경순이는 생선을 굽고. 말린 무와 호박으로 반찬을 만들고. 동태 알로 매운탕을 끓이고. 파전과 빈대떡을 부쳤단다. 가끔은 술도 따르고 가슴팍에 돈을 넣어주는 음흉한 아저씨들을 피해 뒷간에 숨어 있다가 주인여자에게 머리채를 잡히기도 했단다. 열다섯 살이 되던 8월의 한여름, 대학생 무리가 섬으로 봉사를 왔는데. 의대에 다니는 남자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이마를 덮은 앞머리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찰랑거렸단다.


“하루는 오빠에게 줄 녹두전을 몰래 담고 있는데, 주인아줌마가 부엌에서 나오라고 했어. 진달래색 한복을 입으라 하고 얼굴에 분이랑 루주를 발라주면서 다 컸으니까 손님을 받으랬어. 그러고 나면 머리 올려준댔어.”


그 길로 경순이는 도망을 쳤단다. 아줌마가 뒷간을 간 사이에 강제로 입혀진 한복차림으로 의대에 다니는 남자에게로 갔다고 한다.


“여행가방에 숨어서 섬을 빠져나왔어. 웃기지?”


경순이는 섬에서 나오고 의대 오빠와 진주 자취방에 살림을 차렸다는 말을 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시장에서 밥그릇과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면서, 그날들을 회상하듯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열여섯 생일에 선물처럼 아기가 찾아왔어. 방방 뛰면서 임신했다고 말했는데. 오빠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어.”


경순이의 첫 사랑은 임신을 했다고 행복해하는 열여섯밖에 안된 그 아이의 뺨을. 눈두덩을. 가슴과 등짝을. 발로 차고 벽으로 밀치고 머리채를 잡아 주먹으로 때렸다고 한다.


“너무 아팠는데, 우리 아기만 가렸어.”


경순이는 날아오는 주먹을 막지 않고 오직 배만 감쌌다고 한다.


“오빠를 사랑했지만, 이젠 아기를 더 사랑해야 해서. 자취방을 나왔어. 그런데 정말 웃긴 건 뭔 줄 알아? 나 그 와중에 밥은 먹고 나왔다? 실컷 나를 패고는 지쳐서 주저앉은 오빠한테 밥 퍼달라고 했어. 그때 오빠가 어이없이 노려보다가 내가 하도 떼를 부리니까, 밥 한 공기 퍼주고는 ‘당장 애 지워!’ 소리치고 나가버렸어. 그래서 나는 오빠를 미워하지 않고 떠날 수 있었어.”


“사지를 찢어 죽일 놈을 미워하지 않는다니?”


“그래도 나는 사랑을 했는걸!”


“그런 놈한테 밥을 퍼달라니.”


“밥은 말이야. 내가 만난 어른들은 다 무서웠거든. 그런데 나는 그 어른들한테 늘 밥을 퍼달라고 했어. 그런 나를 모자란 애로 여겼지만. 그런데 나는 맞으면서도 달라붙어서, 내 밥 좀 퍼달라고 했어. 끝내 다들 밥을 퍼줬어.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어.”


경순이를 팔아버린 친척에게도. 성노리개로 쓰려는 작부 집 여자에게도. 폭행을 일삼은 첫 남자에게도. 경순이는 밥을 퍼 달랐단다.


“할머니가 일을 나갈 때 반찬은 냉장고에서 꺼내먹으라면서도. 꼭 밥은 퍼주는 거야. 쇠그릇에 이만큼 밥을 퍼서 뚜껑을 꽉 닫아서 아랫목에 묻었어. 그래서 아무리 밉고 무서운 사람이어도 내 밥을 퍼주면 사랑하게 돼버려. 미움이 사라지면 행복해져.”

“그래서 네가 그렇게 밥을 퍼 주는 거에 집착하는 거였구나. 나는? 나는 안 미워? 나는 안 무서워? 왜 나한테는 밥 퍼달라고 안 해?”

“너랑 우리 할머니는 내 밥 안 퍼줘도 괜찮아”


따가워지려는 목 끝의 떨림을 밀어내면서 왜 그런 거냐고 물었다.


“이미 마음을 퍼줬거든. 그것도 고봉밥처럼.”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경순이는 사랑이 사람이 된 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미움이 들어오면 못 견디는 거라고. 사랑을 원료로 인생을 채워가는 그녀가 사랑받고 싶어서가 아닌, 사랑하고 싶어서. 자신을 때리고 팔아버리고 뭉개는 사람에게 밥을 퍼달라고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먹을 밥을 퍼주세요. 그러면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요. 제발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이런 미련한 애원을 하며 살아온 걸까?


“그 사람들 밉지 않아?”

“아니. 지나간 건 다 애틋해. 나쁜 것도 좋았던 것도. 다 내 거잖아. 그러니까 안 미워.”

경순이는 잔인하고 풍진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그래서......”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채 우물쭈물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나를. 경순이는 단 한 번의 책망이나 조금의 서운함도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외딴섬처럼 버려져 모질고 속악한 어른들에게 갖은 고초를 받아놓고도 눈비음 없는 꿋꿋한 저 얼굴이 나는 죄스러웠다. 착하고 순한 너에게 함부로 대한 나도, 몹쓸 어른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바닥으로 떨어뜨린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괜찮아,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봐.”

“첫아기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헌데, 네가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그녀의 열두 살 여름방학 이후의 삶을 알게 된 나는, 작은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면목이 없었다. 행동과 말투 온몸과 마음을 다해 경순이를 헤아리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말이다.


“첫아기는 말이야. 복 많이 받고 살라고. 복실이.”


열여섯 어린 몸으로 생명을 품은 경순이는. 폭력에서 첫아기를 지켜낸 경순이는. 피가 터져 잘 벌어지지 않는 입으로 맨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는, 그 길로 옷 몇 가지와 할머니 지갑과 우리의 사진을 챙겨 도망쳤다고 한다. 무조건 앞만 보고 걸었다고 한다. 걷다 보면 할머니의 시장이 나오고. 내가 있는 옛 동네가 나올 것 같아서. 마냥 앞만 보고 걷고 또 걸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신발 밑창이 다 떨어졌어.”

“동네 이름이 그게 기억이 안 났어? 학교이름이라도!”

“이상하게 할머니 이름이랑, 현조 얼굴밖에는 잘 기억이 안 나더라고.”

“경찰서에라도 가지 그랬어!”

“아.......”

“아? 아 라고?”


객쩍게 웃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미련스럽기도 해서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뒤집었다. 도움을 청하는 방법조차 잊은 채, 모진 시간을 작은 몸으로 버텨낸 것이다. 화가 났다. 도움이 필요하면 경찰서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어른 하나 없이 살아온 그녀의 인생이 안쓰러웠고, 그런 그녀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복실이는 어디 있어? 입양 보낸 거야?”


경순이는 골똘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걷다 보니까, 어디서 밥 짓는 냄새가 풍기는 거야. 눈이 뒤집힐 만큼 배고팠어. 개처럼 말이야. 코를 킁킁대면서 무작정 냄새를 쫓았지? 도착해 보니까, 어떤 교회 앞이었어. 염치 불고하고 들어갔는데. 아저씨 한 분이 한참 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데? 누구냐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어. 조금 있다 여자 분이 밥상을 내오셨어. 예배당에서 먹었던 그 미역국 맛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먹는 내내 천천히 먹어요. 천천히 먹어요. 밥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하셨어. 그 말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물어봤지.”


다행히 우연히 들어간 작은 시골교회에서 좋은 어른들을 만난 그녀는, 목사님 소개로 미혼모들이 모여 사는 센터로 가게 되었단다. 그곳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목사님 부부가 아껴주고 많이 사랑해줬다고 한다.


“미혼모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어. 나보다도 어린애도 있었고. 선생님들이 알파벳도 가르쳐줬고. 뜨개질하는 것. 다 알려줬어. 저녁에는 모여서 드라마 보는 시간이 가장 좋았어. 새벽마다 박스 안에서 아기들이 태어났거든? 목사님이랑 선생님들 도와서 밥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던 것도 좋았고.”


경순이는 미혼모 센터에서 생활은 할머니와 살았던 유년시절처럼 참 행복했다면서 침을 튀겨 자랑을 했다. 시간은 지나 이듬해 봄, 라일락 향기가 알싸한 계절에 예쁜 아들이 태어났고. 센터를 후원하던 외국인 부부가 그녀의 첫아기를 입양하고 싶어 했단다. 설득하는 목사님에게 열일곱의 경순이는 고집을 부렸단다. 뭘 해서라도 자신이 키울 거라고. 자신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아니에요, 복실이까지 사랑해 주는 왕자님 같은 남자가 꼭 나타날 거예요.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요. 경순이는 좋은 남자 만나서 아이 낳고 잘 살 거라고요.”

“경순아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아기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생각해 보자. 저분들은 오래도록 알고 봐온 좋은 어른들이란다. 복실이가 저분들 손에서 자란다면 분명히 넓은 세상을 보고 보다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자라날 거란다. 정말 마음 아프겠지만, 아이를 위해 보내주자. 우리 경순이도 새롭게 살자. 목사님이랑 약속한 대로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보자. 대학도 가보는 거야.”


동이 틀 무렵, 경순이는 센터에서 도망을 쳤단다. 그리고 다시 걸었단다. 발에 잡힌 물집이 터져 슬리퍼에 달라붙어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단다. 할머니가 생선을 팔던 시장이 나올 때까지. 처음 가진 친구와 뛰어놀던 놀이터가 나올 때까지. 아기가 울면 어느 집 처마 밑에서 젖을 물리고. 밤이슬을 피해 나무 밑에서 토끼잠을 자다가 해가 뜨면 다시 걸었다고 한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식당 앞에 버려진 음식찌꺼기를 훔쳐 먹고. 흐려지는 기억을 꽉 붙들면서. 갓 낳은 아들을 끌어안고 끝도 없이 긴 거리를 걸었다고 한다.


“유난히 달이 둥글고 크게 뜬 밤이었어.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찌르는 예쁜 여름밤에 말이야. 배고프다고 울어야 할 아기가 계속 잠만 잤어. 복실아 일어나, 밥 먹어야지.젖을 물렸는데 얼마나 곤하게 자는지 움직이지를 않았어. 아무리 흔들고, 볼을 비벼도 눈을 뜨지 않았어. 할머니처럼 일어나질 않았어. 크고 둥근달이 뜬 밤에 아기가 울지를 않았어.”


경순이는 깊은 잠에 든 아기를 안고 계속 걸었다고 한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음에도. 때가 되면 젖을 물리고. 밤이 되면 몸을 흔들어 자장가를 불러주었단다. 아기가 이젠 젖을 먹을 수 없다는 걸. 품에 안겨 노래 같은 숨소리를 들려주지 않을 거란 걸. 쌀알 같은 볼을 비비지도 않고. 두 볼이 발그레해질 때까지 젖을 빨지 않을 거란 걸. 가슴팍이 모유로 흠뻑 젖고 나서야 알았다고 한다.


“다리 밑으로 갔어. 개천이 졸졸 흐르고 풀벌레가 예쁜 연주를 해주는 밤이었어. 거기서 아기를 마지막으로 안았어.”


담담한 경순이의 이야기에, 허벅지를 꽉 누르면서 눈물을 참았다. 염치없는 울음을 꿀떡 삼켰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같잖은 동정심을 밀어내면서 창문을 내다보았다. 창 밖에 뜬 달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경순아. 아기 묻은 곳 가자. 겨울 지나 봄 오면.”

“응?”


경순이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음표를 만들었다.


“복실이는 여기 있는데?”


그녀는 순진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팍에 두 손을 얹으면서,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맥 빠지는 어깨를 들었다 올리면서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정말이야! 다들 안 믿는데, 정말 억울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경순이를 응시했다. 그녀는 답답하다며 몸서리를 쳤다.


“둥글고 아주 큰 달이 떴었거든?”


달무리가 짙게 번지던 그 밤에, 이름 모를 마을에서 걸음을 멈춘 경순이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죽은 아기에게 마지막으로 젖을 물리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려 했단다. 옷섶을 열어 아기에게 젖을 물렸는데, 달처럼 하얗고 목련처럼 예쁜 아기가 사르륵 가슴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내 가슴속으로 들어갔어. 진짜야!”


그녀의 표정, 몸짓과 어투를 목격했다면, 이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한 치 거짓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한 방울의 의심 없이 순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땅에 묻어주려고 흙도 다 파놨거든.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젖 물리려고 품었는데. 스르륵 사라졌어. 그때 여기가 찌릿했거든? 아기가 파고들어 가느라 가슴팍이 그토록 아팠던 거야.”


아픈 말을 참 해맑게도 전하는 경순이가 지그시 눈을 감고 가슴팍에 두 손을 모았다.


“지금도 크고 둥근달이 뜨는 밤이면, 가슴속에서 아기 목소리가 들려. 엄마아.... 엄마아.... 한단 말이야.”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웃긴 건 뭔 줄 알아? 이젠 아기를 느낄 수만 있지 볼 수는 없어서 무지하게 슬픈데도 오줌이 마려웠다는 거야. 정말 이상했어. 아기가 가슴속으로 들어간 것도. 그 순간에 오줌이 마려워 급하게 눈 것도. 참 이상하고 신기한 밤이었어.”


경순이는 아기를 가슴에 묻고 구석으로 가서 아주 길게 오래도록 소변을 봤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서 파도소리가 들리는 거야. 첨엔 내 오줌소린 줄 알았어. 근데 아니었어. 알고 보니까, 가슴에서 들리던 거였어. 우리 아기가 가슴속에 바다를 만들었나 봐. 내 가슴에는 아주 큰 바다가 고여 있어.”


경순이는 가슴을 치켜 올리며 자랑하듯 말했다.


“현조야.”

“응.........”

“달이 뜨는 밤이면 있잖아? 가슴속에서 파도소리가 들려.....”


경순이의 첫 아이는. 땅이 아닌 가슴에 묻은 아이는. 아니,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 있는 아이는. 경순이의 살과 뼈가 아프도록 파고 들어가 둥근달이 뜨는 밤이면, 엄마아, 엄마아..... 자장가를 불러 달라 보채는 그 아이는. 가슴팍에 크고 넓은 바다가 고여 있게 만든 그 아이는. 아무도 깨어 있지 않는 밤에 일어나 파도를 출렁이며 몸을 흔들게 만든 그 아이는. 달이 뜨면 노래를 하는 장난스럽고 엉뚱한 그 아이는. 복 많이 받고 살라 복실이라, 지었다는 그 아이가 사는 그곳은, 늘 여름 바캉스라고.... 경순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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