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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만든 사람들

by 예감

이렇게 힘든 환경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친할머니 손에서 자란 유년 시절은 따뜻한 기억으로 지금까지도 가슴 깊이 남았다.


할머니는 자식들은 물론, 손주들을 다 키우셨는데, 내가 마지막 손주였다.


그렇게 평생 아이만 키우다가 가신 할머니...


내가 성인이 돼서 더 효도하고 싶었는데, 시설에 있던 고3 때 돌아가셔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못 봤다.


당시 할머니는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요양병원 생활 오래 하고 계셨다. 그렇게 병원 생활이 길수록 야위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지금 생각만 해도 목이 매여온다..


할머니는 나를 정말 아껴주셨고, 나도 할머니를 유일한 가족이라고 생각해서 아낌없이 챙겼다.


어른들도 내가 할머니를 좋아하고 잘 챙겼다고 고맙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본인들은 자식들이면서 참 그게 맞나 싶다..)


그런데 그러면서 '네 부모님이나 오빠가 문제를 많이 일으키니 네가 기둥이 돼서 동생이랑 부모님까지 챙겨야 한다'는 말을 정말 질리도록 들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게 내 나이 초등학생 3학년, 10살 때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런 것도 내가 시설로 도망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츤데레 담임 선생님..


학교 안 가는 나를 집까지 데리러 오시고, 툭툭 던지는 말속에 진심이 느껴졌던 분.

무심한 듯 챙겨주는 그 방식이 저한테는 오히려 편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하늘 공원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외국인 여성 두 분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다.


당시 나에게는 이분들이 있었기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따뜻한 마음들 덕분에, 나는 끔찍했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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