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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by 서리가내린밤 Feb 24. 2025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병실에 누워 잠을 청했었는데, 눈을 뜨니 캄캄한 이곳에 혼자만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몸은 여전히 누워 있었지만, 내가 느끼는 공기와 소리가 생생했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꿈이 이렇게 생생했던가. 공기, 냄새, 소리—모든 것이 살아 있는 듯한 이곳은, 마치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세상이 다가오는 듯했다. 조금만 더 눈을 비비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질까, 아니면 여전히 이곳에 있을까?

그때, 주변을 돌아보니 지구가 내 앞에 크게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우주에 와 있었다. 별빛이 멀리서, 아주 멀리서 나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내가 우주에 있을 수 있는가? 꿈이라면, 너무 선명한데. 이건 분명 현실이 아니다.


90년 전, 우주를 꿈꾸던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늘 별을 바라보며 자랐다. 우주를 좋아했고, 우주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시절, 별은 나에게 마치 다른 세상처럼 신비롭고, 끝없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꿈을 품고 있던 내가 현실에서는 우주인이 될 수 없었다. 신체 조건이나 경제적 여건이 맞지 않아, 나는 그 꿈을 쫓는 대신 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그러나 우주에 대한 나의 열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관심은 계속해서 우주를 향했다. 그럼에도, 나는 겁이 많아서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우주를 좋아했던 마음을 버리려 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우주인 되지 못해도, 우주에 대한 열망은 계속 내 안에 살아있었다. 대신 영상으로 우주를 보며 그 신비함을 조금이나마 느끼고자 했다.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NASA의 탐사 영상을 봤다. 그것이 내 마음을 달래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꿈꾸던 우주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병실에 누워, 하루 종일 창 밖 하늘만 바라보던 어느 날, 아들이 내게 물었다. "하늘에 뭐가 있냐고, 지루하지 않냐고. 드라마 틀어줄까?" 그때서야 나는 아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하늘은 공중에 떠 있는 바다 같아. 끝없이 펼쳐진 저 하늘을 보면, 지친 내 마음이 꽉 찬 것처럼 설렘으로 다가와."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죽기 전에 해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나이가 들고, 병마에 시달리면서 나의 꿈을 실현할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답했다.


"우주에 가보고 싶어."


그 말이 내 입을 통해 나가자, 이상하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진짜 우주에 올 수 있을 줄은.

그리고 지금, 나는 여기 있다.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우주에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상에서 보던 우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곳은 어둡고, 끝없이 광대했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달은, 빛을 내기보다는 거칠고, 모래를 삼킬 듯한 표면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먼지처럼 작은 빛을 발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있어도, 별들은 너무 멀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신비로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때, 귀를 찢을 듯한 해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나는 귀를 막고 뒤돌아보았다.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덮칠 듯한 거대한 존재였다. 아찔한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급하게 몸을 돌려 다른 행성들을 보고 싶었다.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하나하나 지나며, 저 멀리 아름답게 빛나는 큰 행성을 보았다. 그 행성은 너무 멀어서 다가갈 수 없었지만, 나는 그곳에 닿고 싶었다. 가까워지려 했지만, 그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그때, 뒤를 돌아보니 지구가 보이지 않았다. 내 눈앞에는 오직 광활한 우주와 그 속에 떠 있는 여러 행성들만이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 한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돌아가야 했다.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지구는 너무 멀고,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나는 점점 힘이 빠져갔다.


"안돼요, 엄마.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아들이 왜 여기 있을까? 헛것일까? 그 목소리는 분명히 내 귀에 들렸다. 내가 우주에 있어도,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말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럼에도, 아들의 목소리가 나를 다시 일으켰다. 나는 조금 더 힘을 내어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때, 강한 바람이 불어 나를 밀어 행성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 행성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그보다 더. 지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에, 이곳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이곳은 내가 오래도록 꿈꾸어 온 낙원 같았다.


이곳은, 내 마음속에 있던 그 작은 별, 내가 이뤄낸 꿈의 장소였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았다. 비록 우주에서 떨어져 있던 내 마음이지만, 이제 그 마음이 완전히 채워졌다. 이곳이 바로 나만의 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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