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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Oct 07. 2024

선생님, 이 병은 현대의학으로도 못 고치나요?

깽판을 칠 요량은 아니었지만 단단히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하셨다. 딸과 사위가 워낙 물러 터져서 의사한테 할 말 못 하고 왔나 싶어 자기라도 물어보고 싶더란다. 왜 어여쁜 손녀가 그리 떠났는지, 의사 선생님 실력으로도 우리 손녀를 고칠 수 없었는지 알고 싶었던 내 딸의 외할머니, 나의 엄마가 우리 가족 다음으로 딸의 주치의 병원을 찾았다. 나한테는 그날 이후, 잠이 안 오고 불안감이 잦다 하셔서  얼른 병원에 가보시라고 권했다. 그날의 충격으로 우울증이나 치매를 겪을까 봐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싶었다. 오로지 자식 잃은 딸 걱정에 괜찮다고 하시지만 2년여를 데리고 있었던 손녀인데 그 슬픔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나와 남편이 딸의 마지막 항우울제 처방에 대해 대화하는 걸 들으시고 혹시 약을 잘 못 썼나 하는 마음이 있어서 따져 물으러 갔다고 하셨지만, 그럴 인품의 분이 아니다. 진심으로 '왜 그 고운 아이가 죽어야 했나'에 대한 답을 얻고 싶으셨다. 엄마가 보기에는 당신 딸이 나쁜 엄마일리 없고 사위도 인품이 좋은 사람이다. 집안 환경도 괜찮고 학교생활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녀는 샤워할 때면 콧노래를 부르고, 밤이면 놀이터서  춤추며 영상을 찍던 아이였다.


우울증은 뇌질환이라는 것도 이번에 아셨다. 의지를 다지고 용기를 내서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란 걸  눈에 띄게 상태가 나빠지는 손녀를 보며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나와 딸이 친정에 얹혀 지내는 동안 아이의 투병과정을 모두 지켜보셨다.     


우리 가족은 남편의 두 번째 주재원 파견으로 2019년부터 중국에서 살고 있었다. 딸은 해외살이동안 국제학교를 다닌 터라 한국에서 학교경험은 고작 초등 4년이 다이다.  중3이었던 딸의 고교입학을 위해 남편의 귀임에 앞서 22년 가을, 딸과 둘이서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결정했다. 난이도 최상이라는 한국입시에 따라가려면 최소한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시작해야 언저리라도 비빌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친정이 정착지가 된 이유는 코로나로 3년이 넘도록 한국에 올 수 없어 겪었던 외로움이 가장 컸다. 그리고 4년마다 한 번씩 나라를 옮기며 사는 생활에 딸은 발 없는 새처럼 고향이 없는 아이가 되어 어느 도시에 살든 내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없는 생뚱맞은 도시에 둘만 덩그러니 사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엄마가 계시는 대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딸은 외할머니 집에 사는 건 내키지 않아 했지만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갈 거니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방학마다 한국에 나올 때면 늘 지내던 외할머니 집은 익숙한 곳이었다. 원래는 1학년만 다니다 남편이 귀국하면 가족이 같이 살 계획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복귀해도 아이는 적응을 끝낸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기 싫어했다.


"더 이상 전학하고 싶지 않아요. 학교도 괜찮고 친구들도 좋아요. 그냥 여기서 다닐래요"


입시도 버거운데 또 전학 가자고 하는 게 부모의 이기심 같아서 아이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렇게 두 집 살림을 하며 친정에서 1년을 넘게 있게 된 것이다. 엄마는 손녀가 귀하디 귀해 손목도 아프면서 교복을 손빨래 하셨다. 누구보다 하얗고 빳빳한 교복을 입게 했다. 그런 어여쁜 손녀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요. 손녀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선생님의 실력으로도, 현대의학으로도 못 고치는 병이었나요?     


”할머니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이기 힘드실 거예요. 다음번에 오실 때쯤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손녀의 병은 평생 갈 수 있는 힘든 병이었다는 것은 아시지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충동조절이 가장 문제였어요. 살고자 하는 환자는 약이 효과를 보고 좋아지는데 삶을 포기하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의사로부터 직접 들으니 확인사살한 것 마냥 마음이 한결 편해지셨다고 했다. 현대의학도 할 수 없는 영역이면 ‘운명이다’라고 받아들이기로 하신 것 같았다.


사실 엄마의 질문은 나도 궁금했는데 내뱉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의 정확한 병명 말이다. 청소년은 전두엽이 다 자라지 않은 상태라 얼마든지 변화가능성이 있고 사춘기라는 특수성 때문에 쉽게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선생님이 병명에 대해 두어 차례 언급을 하셨지만 물음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평생 갈 수 있는 힘든 병이라고 하신 걸 보면 알려주셨던 대로 우울증보다는 조증과 우울증이 순환하는 양극성 장애 2형으로 재확인해주실 걸로 이해된다.


의사 선생님의 ‘다음번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다’는 말이 궁금했지만, 그 이후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주치의를 찾지 않았다. 엄마는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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