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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Oct 04. 2024

너의 주치의에게 너의 부고를 알리다

     

“꽃은 얼마짜리로 할까요?”


세상이 끝난 것 같은 비통한 순간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워낙 어린아이가 떠나다 보니 장례식장 측에서도 조심스럽게 진행사항을 물어보았지만 장례식장 안의 대화라는 게 슬픔과 대비되는 어처구니가 없는 것들이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도 국, 안주, 꽃, 상복 등을 딸을 보내기 위해 결정해야 했다.

 "돼지고기는 대(大) 자로 하시겠어요?"에선 삶의 비루함이 느껴져 실소가 나왔다.

남편은 오죽하랴. 사고사다 보니 장례식 하는 동안에도 경찰서와 장례식장을 오가며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울지도 못하고 내내 긴장을 하며 보내서인지 장례식을 마치고 남편은 밀려오는 감정에 힘겨워했다. 남편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정신과 가서 약을 좀 타자.”     


아이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깨달은 건 무조건 잠을 잘 자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자야 했다. 불안감, 우울감도 낮춰야 했다. 사실 의사 선생님에게 아이의 부고를 전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정신과는 예약 없이 진료가 가능한 곳이 아니어서 당장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아이가 다니던 병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사정을 말하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꺼라 확신했다. 아니라 다를까, 병원에 전화를 하니 바로 예약을 잡아 주었다. 남편, 나, 큰아이까지 세 식구가 된 가족이 아이의 주치의를 만나러 갔다. '우리 가족을 살려주세요'. '우리 이제 어쩌죠'라는 심정으로. 


나무 정신건강 의학과      


매주 금요일이면 학교에서 외출증을 끊어 진료를 갔던 병원을 아이 없이 보호자들만 들어섰다. 학군지의 병원인만큼 병원대기실은 오늘도 교복 입은 학생들로 앉을 틈이 없다. 이 병원을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딸 또래의 청춘들이 병들어 있는지 목격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인식도 가지게 되었다. 딸의 이름대신 XXX보호자님이라 부르는 소리가 낯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은 자리에 일어나 우리를 맞았다. 늘 아이와 함께였던 진료실에서 우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아이 없이 마주했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들을 잃는 경험을 하지만 저는 첫 경험이라 소식 듣고 잠을 못 잤습니다. 더 잘 지켜봤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저를 탓하셔도 괜찮습니다.”     


책임소재를 가리는 순간에 의사들은 솔직하지 않고 책임회피를 한다고 알고 있던 것은 편견인가. 책임을 묻는 자리도 아닌데 대뜸 이어진 선생님의 솔직한 사과를 목도하고 적잖이 놀랬다. 6개월간 봐왔던 선생님은 항상 당당하고 명확한 차도녀 같은 모습이었다. 때로는 딸에게 얼음같이 차가운 팩폭을 날려 아이의 멘털이 와르르 무너진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결단코 선생님의 사과를 들으러 간 건 아니었다. 우리 상황을 제일 잘 아는 선생님께 아이의 부고를 알리고 음 맞는 충격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듣고 싶었다. 가장 시급한 건 많이 힘들 때 도움받을 비상약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만큼이나 자책을 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궁금한 게 없었던 건 아니다. 아이의 정확한 병명은 무엇이었는지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우울증인지, 양극성 장애 2형인지, 경계성 성격장애는 맞는지, 지금에 와서는 진단이 달라진건 없는지 알고 싶었다. 또 마지막에 그동안 안 쓰던 항우울제를 왜 쓰셨는지도 묻고 싶었다.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투여할 시 자살충동이 더 올라가는 것은 잘 알려진 항우울제의 부작용이다. 그 위험성 때문에 그동안 안 쓰던 항우울제가 아이가 너무 가라앉아 보였는지 마지막에 처방됐다. 바보같이 그 당시에는 그 처방이 마음에 걸려도 이유가 있겠지라며 넘겼다. 이제와 그게 마음에 걸리면서도  그 약 때문에 살 아이가 갑자기 떠났다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질문을 삼켰다. 6개월간 맞는 약을 못 찾았는데 마지막 한 알에 딸이 소위 말하는 '극단적 선택'을 한 건 아닐테니까. 


선생님은 그 처방을 자책하는 걸까. 아니면 아이가 위험한 걸 알았지만 입원이나 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걸까. 약물이나 입원 같은 다른 방법을 못 써 본 것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원망의 마음은 없었다. 엄마인 나도 아이를 못 지켰는데 누구를 탓할 수 있겠나. 종합병원이 약도 다양하고 임상이 더 풍부하다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 종합병원 정신의학과 진료를 4개월여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진료가 다음 주였는데,  딸은 마치 그 시간을 피하듯, 더 이상 병원은 싫다고 항변하듯 가버렸다.       


“아니에요, 선생님. 모두 운명이겠지요. 선생님 덕분에 그동안 버틸 수 있었어요. 감사했어요.”     


진심이었다. 의사와 환자사이에 생겨야 할 라포가 선생님과 나 사이 생겨버린 것 같다. 이게 나의 판단을 흐리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료가 있는 날이면 아이를 돌보면서 느낀 불안과 걱정을 선생님께 쏟아내며 답을 얻고 또 한 주를 살 수 있었다. 선생님 역시 말하기 힘든 본인의 아팠던 유년까지 털어놓으며 딸의 생각을 전환해보려 노력하셨다. 그전 병원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진심과 신뢰를 느꼈다. 나만 느낀 것이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아이는 주치의의 말을 칼날같이 아프게 받아들였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자살하지 말라고 입원시킨 폐쇄병동에서도 자살은 일어나요. 환자가 삶의 의지가 없이 죽으려 하면 막기가 어렵습니다. 아이가 그랬어요.”    

 

“어머니 정말 애쓰셨어요. 어머니처럼 하시는 분 없어요. 진심이에요. 힘드실 때 언제라도 오셔요. 꼭 연락 주세요. 가족들 잘 지내시는지 알려주세요. 제가 아이는 못 지켰지만 가족들은 지키고 싶습니다. 소식 전해주세요. 꼭이요.”     


아이를 지키지 못한 엄마가 듣기에는 낯 뜨거운 위로다. 내가 자책이라는 무덤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걸 알고 하시는 위로란 걸 안다. 그러나 딸을 살리려고 한 그 고투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지켜본 선생님께 받는 위로는 그 의미가 다르다. 심장을 긁어내는 통증 같은 것에 목이 멘다. 죽음이라는 결과 값은 모든 노력을 상쇄한다고 해도 진료실에는 아이를 살리려는 보호자와 의사의 진심 어린 노력이 있었다는 걸 서로는 안다. 선생님은 우리 가족이, 특히 내가 안녕하길 기도하고 계심이 분명했다.


"잘 지내신다는 안부 꼭 자주 알려주세요."


애썼다는 눈인사를 마치 동지에게 보내듯 서로에게 보내고 진료실을 나왔다. 아이가 마지막에 먹었던 것과 같은 항우울제와 수면제가 처방되었다. 아이를 멈추지 못한 약이 이제는 부모의 우울을 잠재우기 위해 손에 들려있다. 인생은 이렇게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한없이 미운 이 약이 필요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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