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슬픔이 너무 깊어 별도의 조문은 받지 않습니다.’
내 나이 스물세 살부터 25년을 사랑해 온 남자가 나의 딸의 상주가 되어 빨간 눈으로 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 네 식구, 가족 명단에서 딸이 스스로를 삭제했다.
내 인생은 네가 떠남으로 끝났다고 이 슬픔만큼 어두운 장례식장에 앉아 되뇐다.
조문을 안 받는다고 해도 올 수 있는 관계가 있다. 위로받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우리 부부의 시작을 알고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함께 해준 대학동창들이 눈물을 쏟으며 나를 안는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스물셋이던 그때, 우리의 시작이 떠오른다. 타임슬립하는 영화처럼 인생이 박살 난 시점에, 가장 꿈 많고 두려움 없었던 우리의 기원을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교환학생제도가 없던 시절,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1년 만에 복학한 학교생활은 적응이 쉽지 않았다. 부적응자로 어색하게 학교를 후비고 다니다 키 크고 멀끔한(그 당시 내 눈엔) 한 살 많은 복학생 선배인 남편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북 <널 보낼 용기>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널 보낼 용기》 출간 후, 완성된 이야기의 흐름을 존중하고자 일부만 공개합니다.
이어지는 서사는 책 《널 보낼 용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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