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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Sep 30. 2024

뜨거웠던 CC, 상주가 되다

‘가족들의 슬픔이 너무 깊어 별도의 조문은 받지 않습니다.’     


스물셋, 스물넷,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자우림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내 나이 스물세 살부터 25년을 사랑해 온 남자가 나의 딸의 상주가 되어 빨간 눈으로 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 네 식구, 가족 명단에서 딸이 스스로를 삭제했다.     


내 인생은 네가 떠남으로 끝났다고 이 슬픔만큼 어두운 장례식장에 앉아 되뇌인다. 조문을 안 받는다고 해도 올 수 있는 관계가 있다. 위로받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우리 부부의 시작을 알고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함께 해준 대학동창들이 눈물을 쏟으며 나를 안는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스물셋이던 그때, 우리의 시작이 떠오른다. 타임슬립하는 영화처럼 인생이 박살 난 시점에, 가장 꿈 많고 두려움 없었던 우리의 기원을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교환학생제도가 없던 시절, 호주로 내돈내산 어학연수를 떠났다 1년 만에 복학한 학교생활은 적응이 쉽지 않았다. 부적응자로 어색하게 학교를 후비고 다니다 키 크고 멀끔한(그 당시 내 눈엔) 한 살 많은 복학생 선배인 남편을 알게 되었다. 당시 갓 유행하기 시작한 롱패딩을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타는 말없는 공대 오빠가 내 눈엔 꾀나 멋있어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 오토바이를 빌려 처음 타본 건데, 콩깍지가 제대로 씐 내 눈에는 비트의 정우성 인냥 멋지게 보였다. 거기다 내 맘을 눈치챈 후배 녀석이 생일선물이라며 남편을 ‘1일 노예’로 쓰라고 벌인 이벤트 덕에 우리의 연애는 밀당 없이 시원하게 이루어졌다. 그 길로 내내 붙어 다니며 졸업과 취업, 미래까지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 평소 노래를 부르던 5월의 신부의 원을 이루며 4년 열애의 결실을 맺었다.   

   

신혼을 적당히 알콩달콩 보내고 4녀 1남을 둔 아들바라기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득남 미션까지 한방에 해냈다. 둘째를 딸까지 낳으며 거 참 살맛 나는 인생이다 했다. 남편은 결혼 전 몇 가지 약속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해외에 나가 넓은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약속대로 남편은 주재원으로 두 번 나가게 되어, 아이들은 인생의 반을 해외에서 보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중간중간 투닥거리기도 하고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삶을 뒤흔들 만큼의 위기는 아니었고 잘 극복해 왔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하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이제껏 차곡차곡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쌓아 왔던 가정이란 성은 막내의 죽음이라는 파도 한방에 모래성처럼 부서졌다.      


사랑으로 키운 아이는 결국 다 잘된다는 말은 거짓이다. 사랑으로 키워도 아이는 죽을 수 있다. 결국 다 잘 된다는 아이 속에 들어가길 바랐던 우리 아이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딸은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에 힘들었고 삶이 두려웠다고 했다. 늘 곁에 있었지만 아이가 의지할 부모가 되지 못했다. 열심히 온 맘으로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아이에게 닿지 않았다. 병을 알게 되었지만 낫게 하지는 못했다.    

 

‘나의 세상이었던 가족, 사랑해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내 사랑이 떠났다. 내 세상도 사라졌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딸을 잃은 상주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품고 너의 엄마로 산 시간이 내 생애 최고의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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