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숨을 쉬어야만 살 것 같아서
"뛰다가 창 밖으로 나갈 것 같아요!"
같은 직장 동료인 Y가 내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던진 말이다.
퇴근 후 운동만큼 귀찮은 것도 없지만, 또 운동만큼 내 모든 걸 해소할 수 있는 분출구는 없었다. 직장을 옮기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지역도, 사람도, 일도 익숙해졌지만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업무 스트레스란 아무리 극복하려고 해도 극복되지 않았다. 가끔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 때문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왜 그렇게 한숨을 자주 쉬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 한숨을 내쉬어야만 결국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런 시기에 나는 러닝을 더 좋아했고, 무수한 호흡법에 대해 접했다. 누군가는 코로 호흡해야 한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두 번 들이마시고 한 번 내쉬는 게 맞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달리며 내뱉는 숨이 시원했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가 좋았다.
퇴근 후 트레드밀에 올라 뛰거나 공원에서 뛸 때, 달리기 자체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행복하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달리기는 내게 꽉 막힌 숨을 내보내는 수단이었다. 직장인 중 담배를 통해 답답한 숨을 내보내는 것처럼, 내게 달리기가 그런 의미였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어찌 보면 나에게 달리기는 매우 건강한 담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 항간에 누군가는 달리기가 마치 명상과 같다고 한다. 명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달리기는 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달릴 때면 하루 동안 쌓인 잡념과 케케묵은 먼지 같은 생각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낮에 공원을 감싸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감탄스럽고, 찡그릴 수밖에 없는 햇빛이 반갑다. 그리고 밤에는 저녁 식사 후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발걸음 소리가 좋았다. 사람들의 느린 발걸음 속에 담긴 잔잔한 이야깃거리가 들릴 때면 빽빽하던 나의 회사생활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숨을 쉬게 해주는 명상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 삶을 호흡했고, 그 발걸음들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