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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에마 Oct 31. 2024

풀과 두려움, 그 속의 성장

두려움과 함께 자라는 글쓰기


올해 5월, 텃밭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나는 모든 게 마냥 좋았다. 모종을 옮겨심기만 하면 작물이 무럭무럭 자랄 줄 알았다. 작물을 잘 키우기 위해 책과 동영상을 참고하고 이웃 텃밭지기에게 물어보며 정성을 들였지만 결과는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풀은 어찌나 잘 자라든지, 뽑아도 자라는 속도가 작물보다 빨라 힘에 부쳤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날, 풀을 제거하다가 그만 영글어 가는 작은 수박 줄기를 잘랐을 때는 좌절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바보 같았던 실수 이후 나는 작물들을 더 세심히 돌보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서툴렀다. 흙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어 작물을 수확하는 작업은 생애 첫 경험이라 계속 실수를 했고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곁가지를 자르고, 진딧물 퇴치를 위해 천연 살충제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되어 나만의 노하우가 쌓여갔다.     


글쓰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처음엔 한 문장, 한 문장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읽을 만한 글이 완성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글을 쓰고 그것을 대면할 때면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혹시나 비판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따라붙었다. ‘내가 이 글을 써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글쓰기를 망설이게 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김장용 배추 모종을 심을 때도 비슷했다. 배추 모종 8 포기를 심고 벌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보호망을 씌워주었을 때만 해도 잘 자랄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뒤 벌레가 배춧잎을 갉아먹어 빈 줄기만 남은 배추를 보고 속상함과 실망이 컸다.     


나는 보호망을 걷어내고 손으로 벌레를 잡으며 애썼지만, 상황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한 문장을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지고 좌절이 더해져 두려움이 밀려왔다. 글을 잘 쓰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고, 배추를 잘 키우려 노력했지만 실패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내 자신감을 무너뜨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안전하고 익숙한 상황에만 머무르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작물 키우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열망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지금 당장은 실패로 가득 차 보였지만, 나도 언젠가는 이 텃밭을 제대로 일구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놓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풀과 작물의 공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고, 큰 용기를 얻었다. 풀을 제거하지 않고 함께 자라는 작물이 오히려 더 튼튼해진다는 글을 읽으며, 나도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자라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풀들 속에서 자라는 작물들처럼 나도 두려움 속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텃밭에서 풀과 작물의 공존은 마치 글쓰기를 시작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도 같다. 풀은 작물의 성장을 방해할 것 같지만, 풀과 함께 자란 작물은 오히려 더 강하게 자란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의 두려움은 방해처럼 느껴지지만, 이 두려움과 함께 나아가면 더 단단한 글을 써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풀과 함께 자라는 작물은 더 튼튼한 뿌리와 줄기를 가진다. 두려움 속에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써 나가는 과정 역시 글쓰기에 대한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한다. 처음엔 잘 쓰고 싶다는 욕심만 가득했지만, 두려움을 마주하며 글을 써 나가다 보면 더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 단단한 줄기처럼 글쓰기도 점점 견고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풀을 이기고 자란 작물은 그 맛과 향이 더욱 진하다. 글쓰기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두려움을 견디며 써 내려간 글은 누구의 흉내도 아닌 나만의 진정성으로 가득하다. 두려움 덕분에 더 깊이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되며, 두려움을 넘어서 얻은 문장들은 더 깊은 풍미를 가진다.     


풀과 함께 자란 작물은 싱싱함을 오래 유지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두려움과 싸워 얻은 글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랫동안 남을 자산이 된다. 때로는 수정할 때 그 과정을 떠올리며 글을 다듬고, 처음 쓴 글처럼 생명력을 불어넣게 된다.     


풀은 해충을 막는 방어막 역할도 한다. 두려움은 글쓰기를 방해하는 해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막이 되어준다. 두려움이 없다면 글은 쉽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두려움 덕분에 나는 글에 더 집중하고 끝까지 지켜내게 된다.  

   



처음엔 풀을 제거해야 건강한 작물이 자란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글쓰기를 하면서도 두려움을 없애야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풀과 두려움이 있기에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풀을 통해 작물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듯, 두려움 덕분에 글쓰기는 깊어지고 내면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쓰기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흔들려도, 틀려도 괜찮다. 두려움과 함께 나아가며 조금씩 자라난다. 글은 쓰면 쓸수록 나의 모습이 묻어나는 단단한 기록으로 변해 간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고, 마침내 나만의 색깔과 이야기를 가진 글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두려움은 처음엔 방해물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자라난 글이야말로 더 진솔하고 깊이 있는 나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글쓰기가 과정 그 자체로도 의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풀과 두려움, 그 속에서 자라나는 글과 나 자신을 믿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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