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인생
追憶에 눈을 뜨며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먹거리로 추억을 꼽는다 했다.
우리들은 노래에서도 추억의 팝송이란 말을 듣곤 한다.
추억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를 비롯해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나날보단
훨씬 짧게 주어진 사람들이라 생각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추억의 '팝송'이란 제목에 공감을 할 것이다.
이런 음악과 추억과의 연관성을 지어보려고
마누라와 난 서울까지 방송 녹화를 보기 위해 올라가곤 했었다.
물론 이젠 그 프로그램마저도 사라져 추억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음악과 추억에 관한 연관성을 맛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시절
감기몸살로 결석을 하고
집에 혼자 누워 라디오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흘러나왔던
당시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온종일 몇 번 반복해서 청취한 적이 있다.
향후 성인이 되어서 어쩌다 그 노래를 접하게 되면
예전에 아팠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TV와 같이 영상매체를 접하기 힘들고 라디오 같은 음성으로 전달받던 시절
웃지 못할 나만의 생각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초등학교 시절이었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 여자 가수의 음성이 너무 고와서
목소리로 그 가수의 모습을 상상하여 아주 예쁘고 맘씨도 착한 사람이라 생각을 했고
이런 사람은 우리 형에게 시집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수년이 지나 그 가수를 TV에서 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동떨어져 실망을 한 적도 있다.
라디오 연속극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 주인공의 음성이 너무 좋아
이 사람은 아주 멋지게 생긴 사람이라고 추측했지만
후일 우연한 기회에 화면에서 접한 그 성우의 얼굴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더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사물, 영화, 음악 등 이러한 매체들을 통해
자신의 좋은 기억이던 나쁜 기억이던
옛날의 추억을 되살려 생각해 내는 기능이 있는 것 같다.
늙어서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란 말을 한다.
이 말은 살아온 이력이 얼굴의 주름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웃고만 살아온 사람들은 웃는 형태의 주름이 잡히고
평생을 찡그리고 살아온 사람은 그 형태로 주름이 자리한다.
사람이 자라고 왕성하게 활동을 할 땐
음식을 섭취하고 살지만
늙거나 병들어 긴 소풍을 떠날 날이 멀지 않은 사람들이 먹는 것은 아름다운 추억일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날의 즐거운 기억을 회상하며 남모르는 미소를 머금은 채
인생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먼 소풍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해서
북한 지역에서 총상을 입고
남하하여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비롯해서
예전의 일을 회상하는 것을 즐겨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게임은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라 했다.
아마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러했겠지만
당시 나로선 아버지가 앞으로의 불투명하지만 닥쳐 올 미래에 대한 언급은 없고
추억의 장만 펼치는 것이 싫기만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삶이 짧으리라고 예측을 하셨는지
그리 많은 추억의 보따리를 푸셨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 간다.
늙어갈수록 추억이 양식임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먹는 식성도 변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우엉잎이나 호박잎을 쪄서 쌈을 하거나
상추 또는 배추쌈을 싸 먹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지만
지금은 나에겐 밥도둑이 된 것을 보면.
그리고 깻잎이나 쑥갓 같이 진한 향의 채소는
그 향이 거북스러워 먹질 않았지만
지금은 그 향으로 인해 그 채소를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해야 산다고 한다.
그런 맥락인지는 몰라도 나도 세월의 흐름 속에 많이 변한 것 같다.
돌이켜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삶이 짜증 나고 때론 힘이 들어도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짧은 찰나에 불과하니
항상 긍정적 맘으로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늘 지니고 다녀도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똑같이 옹달샘의 물이라도
뱀이 마시고 가면 독을 만들어 내고
꿀벌이 마시고 가면 달콤한 꿀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있다.
처음 가는 길은 길게 느껴지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보단 짧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듯이
되돌아보는 인생의 여정은 결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난 이제 인생의 마지막 장을 살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젠 나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하고 싶다.
가장이란 무거운 책임감과 짐을 벗어던지고 살고 싶지만
아직도 가족의 짐을 지고 가야 하는 현실이 힘들게 느껴진다.
내가 주말 농장을 해 보는 것은 답답한 나의 숨구멍이다.
밭에다 씨앗이나 모종을 심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보람이다.
이 보람은 내가 가족을 부양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보람을 대신하는 것이다.
남들은 모종이나 씨앗에 투자한 비용에 비하면 손해라고 하지만
이윤 득실을 떠나 나에겐 큰 보람과 위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그리고 보다 철저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해 온 나의 인생에도 많은 실수가 숨어있다.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자면
어릴 적 신발은 검정 고무신이었는데
등교할 땐 깨끗한 고무신을 신고 갔는데
돌아올 땐 다 헤憶에 눈을 뜨며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먹거리로 추억을 꼽는다 했다.
우리들은 노래에서도 추억의 팝송이란 말을 듣곤 한다.
추억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를 비롯해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나날보단
훨씬 짧게 주어진 사람들이라 생각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추억의 '팝송'이란 제목에 공감을 할 것이다.
이런 음악과 추억과의 연관성을 지어보려고
마누라와 난 서울까지 방송 녹화를 보기 위해 올라가곤 했었다.
물론 이젠 그 프로그램마저도 사라져 추억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음악과 추억에 관한 연관성을 맛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시절
감기몸살로 결석을 하고
집에 혼자 누워 라디오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흘러나왔던
당시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온종일 몇 번 반복해서 청취한 적이 있다.
향후 성인이 되어서 어쩌다 그 노래를 접하게 되면
예전에 아팠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TV와 같이 영상매체를 접하기 힘들고 라디오 같은 음성으로 전달받던 시절
웃지 못할 나만의 생각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초등학교 시절이었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 여자 가수의 음성이 너무 고와서
목소리로 그 가수의 모습을 상상하여 아주 예쁘고 맘씨도 착한 사람이라 생각을 했고
이런 사람은 우리 형에게 시집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수년이 지나 그 가수를 TV에서 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동떨어져 실망을 한 적도 있다.
라디오 연속극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 주인공의 음성이 너무 좋아
이 사람은 아주 멋지게 생긴 사람이라고 추측했지만
후일 우연한 기회에 화면에서 접한 그 성우의 얼굴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더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사물, 영화, 음악 등 이러한 매체들을 통해
자신의 좋은 기억이던 나쁜 기억이던
옛날의 추억을 되살려 생각해 내는 기능이 있는 것 같다.
늙어서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란 말을 한다.
이 말은 살아온 이력이 얼굴의 주름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웃고만 살아온 사람들은 웃는 형태의 주름이 잡히고
평생을 찡그리고 살아온 사람은 그 형태로 주름이 자리한다.
사람이 자라고 왕성하게 활동을 할 땐
음식을 섭취하고 살지만
늙거나 병들어 긴 소풍을 떠날 날이 멀지 않은 사람들이 먹는 것은 아름다운 추억일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날의 즐거운 기억을 회상하며 남모르는 미소를 머금은 채
인생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먼 소풍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해서
북한 지역에서 총상을 입고
남하하여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비롯해서
예전의 일을 회상하는 것을 즐겨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게임은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라 했다.
아마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러했겠지만
당시 나로선 아버지가 앞으로의 불투명하지만 닥쳐 올 미래에 대한 언급은 없고
추억의 장만 펼치는 것이 싫기만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삶이 짧으리라고 예측을 하셨는지
그리 많은 추억의 보따리를 푸셨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 간다.
늙어갈수록 추억이 양식임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먹는 식성도 변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우엉잎이나 호박잎을 쪄서 쌈을 하거나
상추 또는 배추쌈을 싸 먹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지만
지금은 나에겐 밥도둑이 된 것을 보면.
그리고 깻잎이나 쑥갓 같이 진한 향의 채소는
그 향이 거북스러워 먹질 않았지만
지금은 그 향으로 인해 그 채소를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해야 산다고 한다.
그런 맥락인지는 몰라도 나도 세월의 흐름 속에 많이 변한 것 같다.
돌이켜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삶이 짜증 나고 때론 힘이 들어도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짧은 찰나에 불과하니
항상 긍정적 맘으로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늘 지니고 다녀도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똑같이 옹달샘의 물이라도
뱀이 마시고 가면 독을 만들어 내고
꿀벌이 마시고 가면 달콤한 꿀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있다.
처음 가는 길은 길게 느껴지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보단 짧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듯이
되돌아보는 인생의 여정은 결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난 이제 인생의 마지막 장을 살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젠 나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하고 싶다.
가장이란 무거운 책임감과 짐을 벗어던지고 살고 싶지만
아직도 가족의 짐을 지고 가야 하는 현실이 힘들게 느껴진다.
내가 주말 농장을 해 보는 것은 답답한 나의 숨구멍이다.
밭에다 씨앗이나 모종을 심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보람이다.
이 보람은 내가 가족을 부양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보람을 대신하는 것이다.
남들은 모종이나 씨앗에 투자한 비용에 비하면 손해라고 하지만
이윤 득실을 떠나 나에겐 큰 보람과 위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그리고 보다 철저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해 온 나의 인생에도 많은 실수가 숨어있다.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자면
어릴 적 신발은 검정 고무신이었는데
등교할 땐 깨끗한 고무신을 신고 갔는데
돌아올 땐 다 해진 신발을 끌고 오곤 했었다.
검정 고무신이란 것이 생김새가 모두 비슷한지라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애들은 신발 관리가 잘 되는 것 같은데
난 좀 무뎠던 것 같다.
신입사원 시절
울산에 근무할 땐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술을 마시고 길을 건 너다 넘어져
달려오던 택시에 깔려 죽을 뻔했던 일,
실제 울산근무시절
타 부서에서 근무하던
술을 무척 좋아하는 직원이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단명한 적이 있다.
명절이면 그 집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쌀을 가져다준 적이 있기 때문에 기억에 더 남는다.
어쩌다 서울 본사출장을 가면
지하철노선 환승을 할 땐
환승역 구내에서 환승이 이루어지는 것을 모르고
개찰구로 나와서 다시 표를 구입해서
교통비를 이중으로 지불하면서 탔던 일,
회사 창립기념일인 줄 모르고
혼자 출근해서 출근시간이 지나도 마무도 출근하질 않자
직원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다 망신당한 일,
회사 내에서
실내화로 신고 있던 슬리퍼를 퇴근 시 아무런 무심코 신고가다 정문을 지나서야 인지하고
갈아 신고 퇴근하던 일,
횟집에서 회식도중 마셨던 잔을 닦아 건네주고
술을 따라주고선 안주인 회를 초장에 찍어
깻잎에 싸서 먹는다는 것이 잔을 닦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냅킨에 싸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
어깨가 결려 파스를 붙인다는 것이
파스에 붙어 있는 비닐을 제거하지도 않고
파스를 붙여 다니다가 다음 날 새로운 걸로 교체하려다 발견했던 일,
온라인으로 휴대폰 액정 보호필름을 구매해서
손수 부착한다는 것이
액정 필름 뒤면에 붙어 있는 비닐을
휴대폰 액정에 붙이고
필름은 휴지통에 버려버리고
액정 보호필름이 너무 잘 긁혀 나중에서야
이 일을 발견했던 일,
코로나19로 인해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이 거부감 없는 탓인지
출근해서 커피를 한 잔
손에 들고선 입에 가져가니
입엔 마스크가 가려져 있고
귀가 간지러워
닦아 보려고 면봉을 꺼내
귀에다 넣었더니
음악을 듣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혀 있던 일 등
많은 실수를 동반하고 살았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