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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이 Oct 08. 2024

아빠의 이야기 15

아빠의 인생

歷史에 눈을 뜨며






이젠 노년의 방황이 시작된 것 같다.


방황의 불쏘시개 역할은 마누라가 한 것 같고 급기야 난 집을 떠나 살고 있다. 



매일 술로 살아보니 체중만 줄어드는 것 같다. 


지금 사는 의미? 


여태까지 가장으로서 소명감으로 살아왔으나 

이젠 그 소임도 다하고 퇴역  후 조금 더 편안한 삶을 누릴 것 같지만 

지금의 상황은 내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치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삶의 가치나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도무지 찾지를 못하고 있다. 



오늘도 술은 내 뱃속을 가득 채운다. 



채운 술 양만큼이나 내 맘속의 증오의 불길은 더 타오르고 원망의 골은 깊어만 간다. 



이 글은 취중에 느꼈던 감정을 즉흥적으로 적어본 것이다. 



맘이 편치 않고 주위에 대한 불만이 은연중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은 20**년 9월 20일(월요일 추석하루 전) 이젠 어머니집으로 온 지 며칠이 지났는지 감각이 없다. 


큰 누나는 아파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산송장처럼 누워만 지내야 하고 

나도 허리가 아파 불편한 몸으로 어머니의 끼니 챙기기와 뒷수발을 들어야 한다. 


오늘은 공휴일이라 작은 누나가 도와주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물론 큰 누나가 아프고 나서는 평일 저녁에도 작은 누나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제 많이 내리던 가을비는 잦아들고 있고 내리는 비를 보며 막걸리 잔을 거푸 비우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이젠 막걸리 한 병에도 정신이 흐릿해진다. 


하지만 흐려져만 가는 정신 속에서도 또렷해지는 것은 나의 처지와 앞으로 의 나의 길에 대한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나갈 방향의 길은 시작도 끝도 찾을 수 없고 이내 다시 흐릿해진다.  


내가 가족을 위해 고생이나 모자람이 없이 살게 하려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은 내 생각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정말로 슬픈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아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는 것이 오히려 맞는 표현이다. 


화장실 가는 어머니의 지팡이 소리마저도 귀에 거슬리고 매사가 짜증스럽게만 생각된다. 


정말로 난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행복해보질 못했단 것이 또다시 실감 난다. 


난 술 마시는 횟수가 잦은 것도 내가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원만한 대인 관계유지인 동시에 

젊었을 때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함이었다면 

삶의 힘든 것을 잊어버리기 위한 진통제가 되는 셈이다. 


이것은 근원적 치료가 되질 못하는 진통제의 오남용 같은 것으로

간이 탈이나 의학에서 생검법이라 불리는 간 조직마저 떼내어 검사를 했었고 

10년 가까이 금주를 해야만 하는 대가를 치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나를 이렇게 취하게 해주는 술은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같이 느껴진다. 









사람은 날이 더워지면 옷자락을 풀어헤쳐 몸을 드러내고 

추워지기 시작하면 옷깃을 여미며 

생각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책을 가까이하게 되고 

짙어가는 가을밤에는 많은 생각으로 갖가지의 수를 놓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둘째 삼촌내외부터 셋째 삼촌 내외, 아버지의 땅을 빼앗아 가서 원망스러웠던 막내 삼촌내외마저도 세상을 떠났고 


처 부모와 한때는 월배땅에서 홍부자로 별명 되었던 외삼촌도, 이모까지도 역사 속으로 떠났다. 


이젠 머지않아 어머니도 역사 속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나 또한 지금 살아서 숨 쉬고 있으니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지만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존재다. 


먼저 떠나신 분들의 삶이 그렇듯이 내 삶도 떠나면 책에는 나오질 않는 역사가 될 것이다. 


길을 가다 장례차를 보면 무심코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상징적 의미 외에는 별다른 감정이 와닿지 않는다. 


똑같은 생과사의 이별을 두고도 어떤 이는 슬퍼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슬퍼하지 않는다. 


슬퍼하는 것은 떠난 이와의 소중한 추억과 죽음에 의미가 담겨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계는 어떻게 맞춰 나가야 할 것인가? 


나 자신에게 반문을 해본다. 


시간은 빌릴 수도,  살 수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질 수도 없다고 했으니 

인생의 제2막에는 시간의 소중함을 전제로 한 이정표가 필요할 것이다. 


퇴직 후 재취업으로 2막을 기대를 가지고 시작해 봤지만 내가 맛본 것은 실망감이다. 


워런버핏은 에너지, 지능, 성실성을 갖춘 사람을 고용한다고 했다. 


성실성이 없으면 자신의 지능과 넘치는 에너지로 인해 오히려 파멸을 맞게 된다고 할 만큼 성실성을 강조했지만 나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성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성실성은 

동기부여란 명제와 반드시 조합이 되어야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의 가치관도

모든 걸 평가하는데 기준이 되는 잣대도 바뀌는 법이다. 


일례로 예전에는 사냥을 잘해서 먹거리를 제공해 주는 사람을 영웅이라 칭했지만 

현재는 같은 행위임에도 동물 학대 내지는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감자는 고구마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고구마는 감자를 제치고 웰빙 식품으로 자리를 잡았고 

들기름도 참기름의 그늘에 있었지만 

고구마처럼 웰빙 식품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 

오늘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나 영화가 있다면 

언제까지 지속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인생은 항상 역전이 가능한 게임이나 마찬가지이다. 


참기름과 들기름에 대해 한 번 더 언급을 하자면 

참기름은 고소한 향으로 인해 인기가 있지만 

막상 먹어보면 향은 있으되 맛을 덜하다. 


하지만 들기름은 향은 덜하나 

맛도 참기름보단 낫고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이다. 


사람도 향만 있고 맛은 떨어지는 존재보단 

들기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사람의 가치를 평가할 때도 외모와 배움의 정도가 우선되던 때가 있었지만 

세상살이의 때가 짙어질수록 

권력이나 경제력에 힘이 실리고 

주름이 늘어 가면 건강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 섭취도 필요하지만 좋은 추억을 많이 지니고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지막 자산은 추억이다. 


그것도 좋은 추억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 부자가 되는 셈이다. 


이러니 추억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탁월한 지능을 가졌다 해도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매사에 열심히 노력을 경주해 봐도 

효과는 젊은 시절보단  미미하겠지만 

나는 이제부터라도 마음이 끌리고 하고픈 일을 찾아 즐겨 가면서 추억 부자의 길을 걸어 볼 작정이다. 


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빠르단 말을 되새겨 보며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는 나의 시간에 많은 추억열매를 주렁주렁 엮어 볼 참이다. 


그것도 맛난 열매로... 그리고 많이... 나의 글은 내가 눈을 감지 않는 한 탈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는 동안은 나만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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