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남자의 세계
“일곱 살 차이요? 와- 차장님, 능력 있으시네-.”
아까부터 내가 왜 계속 웃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뭐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없고 웃고 싶지도 않은데, 그냥 이유 없이 헤벌쭉,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꼭 등신처럼.
“아이고, 입이 다물어지질 않네. 큭큭큭-.”
“얼마나 좋아, 노총각이-. 진짜, 난 차장님은 결혼 안 하실 줄 알았는데.”
그냥 못할 줄 알았다고 해, 자식아.
“사모님 되실 분도 직장 다니시겠네요? 요새는 맞벌이가 필수니까.”
별걱정을 다하고 앉았다.
“응, 지금 회사 다녀. 애기 생기기 전까지는 맞벌이해야지.”
그런데 그 마지막 문장에, 그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아니, 차장님,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애 태어나면 혼자 버시게요? 누가 외벌이합니까, 요즘 세상에.”
“당연하지-. 박차장,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애 태어나면 진짜 장난 아냐, 돈이 얼마나 드는데. 둘이 살 때랑 비교가 안 된다니까. 애 낳을 생각 있으면 더 목숨 걸고 끝까지 맞벌이 사수해야 된다, 내 말 명심해. 뭐 자선 사업도 아니고, 왜 평생 등골 빠지게 혼자 고생하려고 그래?”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웃음으로 때웠다. 크게 동조할 수도, 달리 반박할 수도 없어서.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나 자신을 위한 삶에서는 결혼도 엄청난 손해라고 생각했었는데, 결혼 후 경제적인 부분도 나 혼자 책임진다? 그건 아버지와 반대 방향으로 걷겠다던 나의 인생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등골이 빠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내 자아도 빠져버린 내 모습을 상상하니 부르르, 몸이 떨려온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 딱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내 유년기의 어머니 모습이 왜 자꾸만 떠오르는 걸까. 학교에서 돌아오든 밖에서 놀다 오든 늘 배가 곯지 않았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살펴주었던 어머니. 넘어져 다친 상처를 봐줄 때, 얼굴에 묻은 흙을 침을 묻힌 옷소매로 닦아줄 때, 혼자 늦은 저녁을 먹는 내 앞에 앉아 있어줄 때, 배탈이 나서 끙끙대면 밤새도록 내 배를 쓸며 곁을 지켜줄 때, 늘 내가 필요할 때 어머니가 있었고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겐 그저 당연했었다. 만약 그 당연한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텅 빈 집에 혼자 돌아와 다친 무릎을 혼자 씻고, 배가 고파 작은 손으로 냉장고를 혼자 뒤져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니, 그건 싫다, 절대로. 내 자식이 그렇게 크는 건.
... 모르겠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갑자기 모든게 귀찮고, 다 후회된다. 무엇보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이런 스트레스를 나에게 안기는 저들의 오지랖이 정말 싫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엔 저럴 거고..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사람들은 너무 말이 많다. 이런저런 조언이랍시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고, 그러면서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이한 착각들을 한다. 싫다. 평생 남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의 횟수를 인당 몇 회로 제한했으면 좋겠다. 저나 잘할 것이지, 제 앞가림이나 잘할 것이지...
속으로 한참 씩씩거리다 보니, 왜 이렇게 성이 나는지 스스로도 좀 의아해졌다. 그러다 나중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내가 그들의 말을 무시하지 못해서였다.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동조하지도 반박하지도,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 때문이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이쪽은 포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저쪽도 놓칠 수는 없다는 식으로. 말만 많고 하나도 앞뒤가 맞지 않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완전히 비겁하지도, 완전히 용감하지도 못하면서 어느 쪽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그런 인간이 바로 나였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고 누구보다 나에게 실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