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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58_마석, 악마가 되다

by woodolee Feb 25. 2025

마석이 집으로 향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걸음을 멈췄다.


길에 오뎅을 파는 점포가 있었다.


“오뎅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마석이 오뎅 한 뭉치를 사서 품 안에 고이 넣었다. 오뎅은 그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오뎅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기와 질투심이 남달랐다. 그 힘을 바탕으로 남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22년 전 신우랑 자치가 시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짓는 신우가 미웠다. 그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다.


마석에게 있어 세상은 적들로 가득 찼다. 정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에게 아군은 단 두 사람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남은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마석이 집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오뎅이 식지 않도록 품에 소중히 안고 집으로 향했다.


마석 상회에 불이 난 뒤, 명동 일대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촌장이 20여 년 전, 간도에서 살았는데 마을 사람을 무고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마석을 볼 때마다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최사장님이 일본군 앞잡이였대요.”


“젠장! 뭐야!”


마석이 두 눈에 불이 들어왔다. 아버지를 욕하는 사람들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소문은 다 사실이었다.


그는 이웃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의 허물이 바로 아들인 자기의 허물이었다.


소문이 발 없는 말처럼 점점 퍼져 갔다. 결국, 그는 이사를 결심했다. 명동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작은집을 얻었다.


새로 장만한 집에 마석이 도착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마석이 방문을 열고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몸져누워 있었다. 한쪽 눈을 깜박이며 아들을 반겼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오뎅을 사 왔어요.”


마석이 품에서 오뎅을 꺼내 흔들었다. 다행히 오뎅이 식지 않았다.


어머니가 기쁜지, 한쪽 입술이 흔들거렸다.


마석이 포장을 풀고 오뎅 국물을 숟가락에 담았다. 조금씩 어머니에게 국물을 먹였다. 어머니가 국물을 흘리자 손수건으로 일일이 흐르는 국물을 닦으며 어머니를 챙겼다.


어머니가 오뎅 국물을 잘 먹자, 마석이 환하게 웃었다.


그가 생각했다.


‘어머니가 빨리 쾌차해서 일어나시면 더할 나위가 없겠어. 말도 할 수 있게 되면 금상첨화고.’


잠시 후, 마석이 빈 그릇을 치우고 어머니의 대소변을 처리했다. 이윽고 혼자 마루에 나와 앉았다.


내일은 헌병대에 또 가야 했다. 신우의 활약으로 경찰 넷이 큰 봉변을 당했다. 사안이 큰 만큼 수사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종로 경찰서에서 수사가 미진하자, 사건이 헌병대로 이첩됐다. 이에 마석은 종로 경찰서가 아니라 헌병대에 출석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었다.


헌병대 수사관들인 마석에게 집요하게 캐물었다.


“카야마 선생, 괴한과 무슨 관계지요? 계속해서 만났나요?”


헌병대 수사관들이 신우의 행방을 수시로 캐물었다. 마석은 사실대로 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랐다.


신우를 도우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차마 어길 수 없었다. 그리고 피범벅이었던 신우와 죽은 덕대와 기철, 누렁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마석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수사관들이 의심쩍은 눈초리로 마석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휴우~!”


마석이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에게는 이 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약속했던 전투기 헌납 건도 해결해야 했다. 쌀집 화재로 막대한 재산이 순식간에 타버렸지만, 땅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전투기를 헌납하려면 그 땅을 당장 팔아야 했다. 그래서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너무나도 아까웠다.


중매인이 실실 웃으며 말한 게 떠올랐다.


“카야마 선생님, 별수 없습니다. 반값에 땅을 파셔야죠”


중매인이 조롱하듯이 웃어댔다.


“으으으~!”


마석이 복잡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그저 어머니와 함께 멀리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마석이 아침밥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오전 일과를 마치고 헌병대로 향했다.


헌병대 중사가 마석을 취조실로 데려가더니 문초를 시작했다. 장시간의 문초해도 별다른 성과가 없자, 이번에는 헌병대 대장이 직접 나서서 그를 집요하게 추궁하기 시작했다.


“카야마 선생! 그들하고 계속 왕래가 있었나요?”


헌병 대장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마석을 계속 압박했다.


마석이 서둘러 답했다.


“아닙니다.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22년 만에 그들을 처음 봤습니다.”


마석이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어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헌병대 별채에 나타나 여러 명의 헌병 대원을 해치고, 헌병대 총사령관의 수양 따님을 납치했습니다.

인상착의를 보니 카야마 선생의 부친을 해친 자와 같다고 합니다.”


헌병 대장이 어제 일을 거론하며 마석을 매섭게 추궁했다.


“뭐, 뭐라고요?”


그 말을 듣고 마석이 깜짝 놀랐다. 신우가 다나카를 찾아갔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


마석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자, 헌병 대장이 뭔가를 눈치챘다. 그는 노련한 수사관이었다.


“빨리 말 하시오. 이렇게 신사적으로 대하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오!”


헌병 대장이 마석의 눈을 쏘아보며 거칠게 말하기 시작했다. 마석이 서둘러 답했다.


“그게 그자와 22년 전에 악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자가 찾아와서 난동을 부린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저도 피해자입니다.”


마석은 신우가 경성에 온 목적을 알고 있었다. 바로 촌장을 만나고 부모의 원수를 찾아서 복수하는 거였다. 그는 사실대로 말해야 했지만, 불길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들이 온 목적을 정녕 모른단 말이오?”


“…….”


마석이 답하지 못했다.



철썩! 철썩!



따귀 소리가 들렸다. 헌병 대장이 마석의 뺨을 후려쳤다. 뭔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마석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악!”


마석은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따귀 세례에 화들짝 놀랐다. 왼쪽 뺨이 붉게 물들었다.


“아이고, 미안하오. 내가 사과하리다. 내가 심했소. 욱하는 마음에 ….”


헌병 대장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겉으로는 미안한 척을 했지만, 눈초리에서 의심이 불꽃이 일었다.


마석은 빨갛게 부어오르는 왼쪽 뺨을 오른손으로 부여잡고 찍소리도 못했다. 그의 뒷배가 돼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받쳐 오는 서러움을 참으며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시간의 문초를 끝났다. 몹시 지친 마석이 헌병대 밖으로 나왔다.


“이제야 살 거 같다.”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취조실에서 벗어나자, 마석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이내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가 걸음을 옮겼을 때, 갑자기 메스꺼움을 느꼈다. 길에서 헛구역질하다가 구토하고 말았다. 입에서 쓰디쓴 위액이 쏟아져 나왔다. 구토라기보다는 서러움을 토해냈다.


속을 다 게워내고 정신을 차린 마석이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향했다.


한참 뒤, 집에 다다랐을 때 집 앞에 웬 사람들이 서성였다. 이에 급히 집을 향해 달려갔다.


“저기요, 누구십니까?”


마석이 사람들을 보고 급하게 물었다.


“우리는 관에서 나왔소.”


“아! 그러세요. … 무슨 일로 오셨나요?”


관에서 나왔다는 말에 마석이 주눅이 든 듯 말꼬리를 흐렸다.


“전투기 헌납 건으로 왔소이다. 연락이 없어 이렇게 직접 찾아왔소.”


“그렇군요.”


마석이 고개를 떨구며 답했다.


“빨리 약속한 금액을 헌납하시오. 전쟁에서 이기려면 각계각층의 성금이 절실히 필요한 때요.”


마석이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저희가 그동안 낸 것도 있으니, 이번은 좀 봐주시면 안 됩니까? 절반으로 깎아주시면 바로 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란 말이오. 반값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요.”


관원들이 마석을 호되게 질책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마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관원들의 위압적인 태도에 다시 속이 메스꺼웠다. 이에 다시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더럽게 쓰리!”


“뭐 이런 자가 다 있어. 황당하군!”


마석이 구역질을 계속하자, 관원들이 기겁하고 자리를 피했다. 더럽다고 계속 중얼거렸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으름장까지 놨다.


관원들이 사라지자, 마석이 힘없이 고개를 들고 냉수를 찾았다. 헌병대 앞에서 구토해서 그런지 구역질해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찬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겨우 정신 차렸다.


잠시 마당에서 바람을 쐬다가 어머니 생각에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으으으!”


방에 누워있는 어머니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마석과 관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다 엿들은 거 같았다.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애써 옆으로 돌리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일본인한테 대들지 말라고 타이르는 거 같았다. 어머니의 눈에서 흰자가 크게 보였다. 크나큰 두려움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어머니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 마석은 쓰디쓴 절망감을 느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머니는 온몸이 마비되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허우적대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걱정에 사시나무 떨듯이 두려워했다.


마석은 겁먹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맥이 탁 풀려버렸다. 허무하게 숨을 거둔 아버지와 고통과 두려움의 끝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머니를 보면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냥 이 더러운 세상! 한바탕 뒤엎어 버리고 싶었다.



마석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어머니 곁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결국, 해가 뜨고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이 밝아 왔다. 그는 충혈된 눈을 크게 뜨고 밖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 공기가 시원했다.


마석이 걸음을 옮겼다. 찬바람을 맞으며 동네 뒷산으로 올라갔다. 산길은 험하지 않았다. 아주 순탄했다. 산길과 달리 그의 마음은 첩첩산중이었다.


30분 후 정상에 오른 마석이 마을을 내려보았다. 서민들이 사는 기와집과 부자들과 일본인들이 사는 신식 가옥이 보였다.


“아주 시원하군.”


마석이 움츠렸던 가슴을 폈다. 광활한 대지와 도도히 흐르는 강을 보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저 멀리 보이는 사람과 차들이 마치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모든 것이 발아래였다.


해가 저 멀리에 보였다. 찬란한 아침 햇살이 경성을 수 높았다.


마석이 저 멀리 떠오른 해를 보면서 혼자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신이 나를 저버렸다면, 내가 신이 되면 되지!

한번 재미있게 놀아보지 뭐! 하하하!”



마석이 씩 웃었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한동안 계속됐다.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한 남자의 얼굴을 비췄고 얼굴에서 웃음꽃이 만연했다.


한바탕 공연이었다. 마석이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춤사위를 덩실덩실 두리둥실 마음껏 펼쳤다.


고통을 잊자, 새로운 자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아침 9시가 되었다.


마석이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산에 오를 때와는 달리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흐흐흐!”


마석이 연신 웃음을 흘렸다. 번뜩이는 눈빛으로 마치 사냥감을 찾는 승냥이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활보했다.


‘그래! 신우한테 엄청난 힘이 있지. 그 녀석은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놈이야. 믿을 수 없는 힘을 가졌어.

그 녀석을 이용해서 한바탕 재미있게 놀아보자.

다나카 헌병대 총사령관님! 한 판 붙어봅시다. 하하하!’


마석이 꿀컥 침을 삼키더니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이내 수화기를 들더니 아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수십 명이 집 앞으로 모이자, 마석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이신우와 정명호라는 자가 있습니다.

간도 구산 마을이 고향인 자들로 경성에 와있습니다. 지금 그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둘을 찾은 분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현상금이 얼마죠?”


“현상금은 … 5천 원입니다!(현재 시세 5천만 원에서 6천만 원)”


마석이 거액을 현상금을 내걸었다.


“우와!”


“대단하다!!”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다.


마석이 신우와 명호의 인상착의 설명했다.


“알겠습니다. 당장 찾겠습니다.”


“어서 찾으러 가자!”


“갑시다!”


마석이 말을 마치고 앞장섰다. 그 뒤를 많은 사람이 뒤따랐다.


마석이 신우와 명호를 찾기 시작했다. 그에게 계획이 있었다. 머리가 비상한 만큼 놀라운 계획이 있었다.



한바탕 세상을 뒤엎을 계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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