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연구원들이 유강인을 쳐다봤다. 그들의 두 눈에 냉철하기 그지없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 냉철함은 아주 날카로운 칼과 같았다. 칼끝이 범인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연구원들이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잠시 유강인을 바라보던 권재훈 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제가 볼 때 … 유강인 탐정님은 탐정보다 과학자에 더 어울릴 거 같습니다. 유전자 설계 쪽에 일하셨다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셨을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최슬기 연구원이 맞장구쳤다.
배기원 조수도 동의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역시 소문대로군요. 유강인 탐정님이 사물과 사건의 정수를 꿰뚫어 보는 눈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허언이 아니군요.”
그 말을 듣고 황정수가 신이 났다. 마치 자기가 칭찬받은 듯 높은 어조로 말했다.
“그럼요! 우리 탐정님은 정곡을 한 번에 찌릅니다. 그래서 악인들이 꼼짝도 못 해요. 한 번 콕 찔리면 무척 무척 아프거든요. 수지, 그렇지?”
황수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황정수의 말에 틀림이 없었다.
유강인이 술을 쭉 마시고 잔을 내려놨다. 그가 성이 난 어조로 말했다.
“바이오클린 임상실험에 …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네에? 그,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지단길 박사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소장님, 우경임상실험센터를 아시죠?”
“거기는 …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바이오클린 임상실험을 담당했죠?”
지박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
“임상실험은 … 여러 군데에서 진행했습니다. 우경임상실험센터도 그중의 한 곳입니다. 연구 진행은 3급 비밀이라 이 이상 언급은 곤란합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비밀은 지키셔야죠. 그런데 우경임상센터에서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그걸 간파했습니다.”
“불법이라고요? 그게 뭐죠?”
“우경임상실험센터에서 불법 임상실험을 자행했습니다. 그래서 세 명이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네에?”
지단길 박사가 깜짝 놀랐다. 몸을 떨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 일을 전혀 모른다는 몸짓이었다.
동생들, 연구원들,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요리사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단길 박사가 급히 출입문을 바라봤다. 출입문 앞에 박동철이 서 있었다.
박동철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서둘렀다. 유강인에게 걸어와 말했다.
“강인아!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는 예의를 지켜야 하는 자리야. 근거 없는 말은 하지 마.”
유강인이 더욱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경임상센터 센터장을 확인한 결과, 최숙자였습니다. 최숙자는 용궁 보살입니다. 무당이 임상실험센터 센터장이었습니다.”
“네에? 그, 그럴 리가?”
지단길 박사가 처음 듣는 소리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용궁 보살 최숙자의 정체는 … 사람의 피로 제사를 지내고 치료제를 만드는 혈마였습니다. 피에 굶주린 귀신인 혈귀를 숭배했습니다.
최숙자는, 바이오클린 기원에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임상실험에도 관여했습니다.
그 임상실험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극악한 짓이었습니다. 소장님! 이 사실을 아셨나요? 아니면 몰랐나요?”
A급 태풍과도 같은 유강인의 질문이었다.
귀빈실에 거센 비바람이 몰려오는 거 같았다.
지단길 박사가 입을 열지 못했다. 순식간에 입이 착 붙어버리는 거 같았다.
유강인의 질문은 한마디로 놀라웠다.
사건의 정곡을 단번에 찌르는 말이었다.
그렇게 괴로운 정적이 흘렀다. 1분 후.
“휴우~!”
수석 연구원 지정혜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정색하고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 연구소는 불법을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불법이 있다면, 그건 계약한 곳이 문제입니다.
우리 연구소랑 우경임상실험센터를 연결 짓지 마세요!”
“맞아요! 수석연구원님이 말씀이 맞아요. 유강인 탐정님, 제발 억측은 자제해주세요.
사건은 수사를 통해 그 진상이 드러날 겁니다. 범죄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한 우리 연구소는 무죄입니다!”
홍보팀장 지수미가 언니를 거들었다.
유강인이 자매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자매가 힘을 합쳐 인광 연구소를 옹호했다.
병아리 1은 지정혜, 지수미 자매와 최슬기 연구원 중 하나였다.
유강인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정황상 병아리 1은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지단길 박사의 최측근이었다. 그 점으로 보면 병아리 1은 최슬기 연구원보다는 자매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컸다.
유강인이 자매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그 아래, 목을 바라봤을 때!
‘응!’
유강인이 움찔했다.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떡였다.
자매 중 한 명의 살 색깔이 심상치 않았다. 목을 움직였을 때 블라우스 안에 감춰졌던 살이 살짝 보였다. 그 살은 창백하지 않았다. 얼굴과 목덜미 살은 백지처럼 창백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그렇군. 한 명이 화장했군. 핏기가 없어 보이는 화장했어. 아프지 않은데, 아픈 척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그 사람이 바로 병아리 1이야.
병아리 1의 정체가 드러났어. 자매 중 한 명이야. 아픈 척을 한다는 말은 유전병이 없다는 말과 같아. 이는 지씨 집안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말과 같아.
그래! 자매 중 한 명은 아버지 지남철 박사의 핏줄이 아니야. 그래서 지박사가 딸을 실험체로 사용한 거야. 실은 자기 딸이 아니었던 거야. 법적으로만 딸이었던 거야.
그 딸이 병아리 2와 손잡은 거야. 지씨 집안을 무너트리기 위해! 이건 저주이자 복수야!’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병아리들의 정체가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병아리 1은 지단길 박사 동생 중 하나였다. 그녀는 지남철 박사의 핏줄이 아니었다. 그래서 철저히 이용당했다. 이에 복수를 다짐한 거 같았다.
병아리 2는 바이오클린 연구원 중 하나였다. 배기원 조수, 권재훈 박사 둘 중에서 한 명이었다. 병아리 2는 이번 사건의 배후 조종자였다. 기적을 꿈꾸는 광인이자, 피에 굶주린 또 다른 혈귀였다.
병아리 3은 오진주였다. 하인 김덕길의 후손이었다. 김덕길과 딸은 주인집 딸을 살리기 위해 희생됐다. 후손인 오진주도 납치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에 그녀는 복수의 화신이었다.
병아리 4는 경비 팀장 박동철이었다. 박동철은 병아리 2의 전령이었다. 무슨 약점이 잡혔는지 병아리 2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유강인을 끌어들이고 병아리 2의 뜻을 전했다.
생각을 정리한 유강인이 황수지에게 귓속말했다.
“수지, 지남철 박사 자식 중 한 명이 친자식이 아니야. 자매 중 하나일 거야. 그녀가 바로 병아리 1이야.
우동식 형사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 병아리 1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해.”
“네에?”
황수지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자두처럼 두 눈을 크게 떴다. 앞에 있는 자매를 바라보다가 아! 하며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우동식 형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흘러갔다.
유강인이 바이오클린의 실체를 폭로하자,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졌다. 사람들이 아무런 말 없이 술과 음료를 마셨다.
“음!”
유강인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 현재 시각을 살폈다. 현재 시각은 저녁 7시 40분이었다.
“그럼, 일어나겠습니다.”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단길 박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몸이 불편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닌 거 같았다. 지박사가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법을 중시했습니다. 불법적인 일은 결코,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연구 윤리는 연구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우리는 … 아버지가 남기신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바이오클린을 만든 거뿐입니다.
기적의 약을 만들기 위해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런 일 있었다면 제가 모든 걸 책임지겠습니다.
먼저 우경임상실험센터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지단길 박사님 그리고 동생분들.”
유강인이 공손히 인사하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조수 둘이 그 뒤를 따랐다. 박동철이 출입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지단길 박사가 떨리는 눈망울로 쳐다봤다.
탐정단과 박동철이 귀빈실에서 나갔다. 박동철이 귀빈실 문을 공손하게 닫았다.
유강인이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박동철을 바라봤다. 박동철과 유강인은 오랜 인연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났고 명덕산 사건 이후 친구로 지냈다.
박동철이 침을 꿀컥 삼켰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다.
“가, 강인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유강인이 대답 대신 박동철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동철아, 너는 … 이번 사건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뭐, 뭐라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바이오클린 개발을 위해 … 많은 사람이 희생됐어. 그 역사가 60년이 넘었어. 바이오클린의 기원은 혈귀를 모시는 혈마, 최숙자의 약이야.
그 약은 아주 오랜 시간, 대를 이어서 전수됐어. 혈귀비법안에 그 약을 만드는 방법이 있었어.”
“정말이야?”
“응! 그 약 때문에 지씨 집안 하인 일가가 봉변을 당했어. 아버지와 어린 딸이 죽었어. 부인이 남은 딸을 데리고 도주했어. 60년 전 일이야.”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후 기적의 약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이용당하고 버려졌어. 우경임상실험센터가 대표적인 곳이야. 사이비 종교와 결탁해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어.”
“난 전혀 몰랐어.”
“그래? … 좋아. 네 말을 믿을게.”
유강인의 말에 박동철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간곡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말했다.
“동철아, 사실대로 말해줘. 병아리 2가 … 누군지 알아?”
“뭐? 병아리 2?”
박동철이 깜짝 놀랐다.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그가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 말할 수 없어.”
“그렇구나!”
유강인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나를 부른 사람이 누구지? 지단길 박사에게 나를 부르자고 한 사람이 누구야?”
“그건 ….”
“어서 말해줘.”
“그건, 나야.”
박동철이 고개를 떨구고 답했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정황상 박동철은 병아리 2에게 약점이 잡힌 거 같았다. 그래서 꼭두각시놀음을 하는 거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강인이 박동철에게 말했다.
“동철아, 혹 불법에 관여한 게 있어? 아니면 양심에 꺼리는 일이라도?”
박동철이 화들짝 놀랐다. 급히 답했다.
“그런 건 전혀 없어! 나는 그냥 ….”
“시키는 대로 움직인 거야?”
박동철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구나! 그러면 다행이고.”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그래도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갔다.
박동철이 유강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탐정단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박동철이 힘없는 얼굴로 귀빈실 문을 열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 안에 정적이 다시 흘렀다.
탐정단이 건물에서 나왔다. 유강인이 빠른 걸음으로 야외 주차장으로 향했다.
탐정단이 보이자, 강력반 밴에서 형사 둘이 내렸다. 두 형사가 유강인의 안색을 살폈다.
“선배님, 다행이네요. 탐정님한테 별일 없는 같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거 같군. 유탐정님 말씀대로 파티는 별거 없었어.”
두 형사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유강인이 형사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가 낮으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비상입니다. 인천 북부경찰서와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는 긴급 출동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CCTV 통제센터와 미행팀은 병아리 3, 궁녀 오진주의 행방을 뒤쫓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원창수 형사가 답을 하고 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김형사! 비상이야! 강력반 전원 대기야!”
“네, 알겠습니다.”
“서울청 정찬우 형사님한테도 이 사실을 알려!”
“네! 바로 전하겠습니다.”
원창수 형사가 전화를 끊었다. 그때!
삑!
문자 한 통이 왔다. 유강인한테 온 문자였다. 유강인이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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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 그동안 재미있었다. 이제 우리 악연을 끝낼 때가 됐다. 맛있는 양갱을 먹으며 너를 기다리마.
네 놈이 멍청하지 않다면 나를 따라오겠지. 그렇지 않으면 네 친구들은 죽은 목숨이야.
친구들이 보고 싶지? 그래서 사진을 같이 보냈어. 친구들을 구하고 싶으면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
너를 보고 싶은 병아리 2가. …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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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이!!”
유강인이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문자에 사진이 첨부됐다.
사진을 열자, 두 사람이 보였다. 두꺼운 밧줄에 꽁꽁 묶였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얼굴에 피멍이 가득했다.
둘은 유강인의 친구, 윤호, 진호였다.
“병아리 2! 네 놈을 반드시 끝장내겠다!”
유강인이 두 주먹을 뿔끈 쥐고 소리쳤다. 그 소리가 야외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