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탐정단 밴이 속도를 높여 인천으로 달려갔을 때 ….
인천 바닷가 절벽, 호화 주택 1층 응접실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응접실은 넓은 공간이었다. 성인 50명 편히 앉거나 쉴 수 있었다.
응접실 한가운데 고급 원목 의자가 있었다. 총 12개였다. 그 의자에 12명이 나란히 앉았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지씨 집안사람이었다. 지단길 박사와 동생들, 그들의 먼 친척들이었다.
지씨 집안 사람들은 안색이 모두 창백했다. 모두 병을 앓고 있는 거 같았다. 끔찍한 유전병에 걸려 몹시 아픈 거 같았다.
“콜록! 콜록!”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지단길 박사가 자지러지게 기침했다. 상태가 점점 심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동생들이 안절부절못했다.
“오빠!”
“오빠, 괜찮으세요?”
지단길 박사가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말했다.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괘,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아직 죽지 않아. 바이오클린을 처방받으면 살 수 있어.”
오빠의 말에 동생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둘이 서로 쳐다봤다. 그리고 웃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둘은 활짝 웃었다. 그건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보고 지단길 박사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리는 산 거죠?”
“지박사님. 말씀해주세요”
“형님! 어서 말해주세요.”
지씨 가문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그들이 지단길 박사를 쳐다봤다.
지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살았습니다. 바이오클린이 대성공했습니다. 염증 수치가 획기적으로 떨어졌습니다. … 이제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단길 박사의 말에 먼 친척들이 기쁜 나머지 손뼉을 쳤다. 그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모든 힘을 다해 버텨왔는데 … 드디어 그 끝이 왔군요.”
“이제 살았네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지씨 집안 사람들이 말을 마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을 억제제를 먹으며, 몇 년을 간신히 버텼다.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벌써 저세상으로 떠났다.
지씨 집안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 그렇게 기적을 기다렸다.
이 기적은, 청천의 교주 궁인이 약속했던 기적과 같았다.
궁인은 신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기적을 행하기 바로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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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다.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겁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지상 낙원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그건 바로 여러분이 고대한 궁극의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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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저택에 궁인이 강림한 것 같았다. 궁인이 약속한 기적이 곧 펼쳐질 거 같았다.
기적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무르익어갔다. 지씨 집안 사람들이 바이오클린을 애타게 기다렸다.
응접실에 지씨 집안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의자 뒤에서 지씨 집안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권재훈 박사와 최슬기 연구원, 비서 고창석과 요리사 고영수였다.
그들이 환한 표정으로 말을 나눴다.
“정말 잘 됐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병마에서 벗어나야죠.”
“오늘 의학계에 한 획을 긋는 날입니다.”
“박순후 박사님은 언제 오시죠?”
그때!
“삐리릭!”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고창석 비서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 통화하다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기쁜 미소를 지으며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그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박순후 박사님. 지단길 박사님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이 열리자,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셋은 박순후 박사와 배기원 조수, 박동철이었다. 배조수가 한 손에 서류 가방을 들었다. 검은색 가방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온 셋이 모인 사람들을 보고 함빡 웃었다.
박순후 박사가 들뜬 목소리로 고창석 비서에게 말했다.
“이제 축제를 시작합시다. 바이오클린의 눈부신 성능을 보여줄 때입니다.”
“맞습니다. 박박사님. 축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창석 비서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가 몸을 돌렸다. 모인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박순후 박사님이 오셨습니다. 이제 바이오클린 처방이 곧 시작될 겁니다.”
“오! 드디어!”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제 살았습니다.”
“지단길 박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맞아! 우리 조카가 우릴 살렸어.”
지씨 집안 사람들이 지단길 박사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지박사가 크게 웃었고 말했다. 희망이 생기자, 기운을 차린 듯했다.
“바이오클린은 제 공로가 아닙니다. 모든 건 아버지 연구 자료 덕분입니다. 그 자료가 없었다면 바이오클린을 완성할 수 없었습니다.”
지단길 박사가 고단했던 연구 과정을 되짚으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연구 자료 중 빠진 게 있었습니다. 도둑이 자료를 훔쳐서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연구가 난항에 빠졌습니다. 난해한 퍼즐에 막혀 연구가 지체됐습니다. 그때 정말 초조했습니다. 바이오클린이 좌초될 것만 같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러다 천만다행으로 도둑맞았던 디스켓 5개도 회수했습니다. 도둑이 거액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큰돈을 썼지만, 확보한 디스켓 5개 덕분에 난해한 퍼즐을 풀 수 있었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지씨 가문 사람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지단길 박사가 험난한 연구 과정을 이겨내고 바이오클린을 완성했다. 그들이 모두 손뼉을 쳤다.
지박사가 박순후 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이오클린 연구 책임자, 박순후 박사님은 아버지 뒤를 이어서 수십 년간 연구에 매진하셨습니다. 박박사님 공이 정말 큽니다.”
지씨 집안 사람들이 박박사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박순후 박사님이 정말 큰일을 했군요. 역시 지남철 박사의 조수답습니다. 천재의 조수가 큰일을 해냈어요!”
“맞아요. 박순후 박사님 정말 환영합니다. 어서 우리를 살려주세요.”
지씨 집안 사람들이 기쁜 나머지 환호성을 질렀다. 희망이 넘치자 아픈 것도 잊어버린 거 같았다. 그 소리가 응접실에 크게 울렸다.
“하하하! 별말씀을 ….”
박순후 박사가 씩 웃었다. 배기원 조수가 함께 자신만만하게 걸었다.
둘이 응접실 오른쪽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 작은 방이 있었다.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 팀장 박동철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실실 웃었다. 기적을 기다리는 구경꾼 같았다.
지씨 가문 사람들이 기쁜 표정으로 말을 나눴다.
“조수님 서류 가방에 바이오클린이 있겠죠?”
“네, 그럴 겁니다.”
“이제 정말 살았어요.”
지씨 가문 사람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박순후 박사를 기다렸다.
3분 후 박순후 박사와 배기원 조수가 방에서 나왔다. 손에 약병과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드디어!”
지씨 집안 사람들이 침을 꿀컥 삼켰다. 기적이 곧 시작될 거 같았다.
박박사와 배조수가 지씨 집안사람들 앞에 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적이 벌어지기 전 고요 같았다.
박순후 박사가 슬쩍 웃었다. 그가 약병과 주사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이게 바로 기적의 약, 바이오클린입니다! 여러분은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처방은 사흘 동안 진행됩니다.
먼저 약을 드셔야 합니다. 약을 드시고 푹 자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준비 과정입니다.
두 번째 약을 드시고 반나절 후 마지막 처방인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축하주를 드신 후 약을 드세요. 축하주는 무알콜입니다. … 비서님!”
“알겠습니다.”
고창석 비서와 고영수 요리사가 같이 움직였다. 형제가 주방으로 가서 음료수병과 쟁반을 들고 나왔다. 쟁반 위에 와인잔이 있었다.
고비서가 와인잔을 돌렸다. 음료수로 잔을 채웠다. 음료는 포도 음료였다.
음료가 준비되자. 박순후 박사가 크게 외쳤다.
“먼저 축하주를 마십시다. 오늘은 기적을 행하는 날입니다. 수십 년간 연구가 드디어 빛을 발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지남철 박사님이 이 모습을 보셨으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 그 점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박박사 말을 마치고 와인잔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와인잔을 들었다.
박순후 박사가 다시 크게 외쳤다.
“기적을 … 위하여!”
사람들이 모두 복창했다.
“기적을 위하여!”
“기적을 위하여!”
“바이오클린 만세!”
사람들이 포도 음료를 마셨다. 그렇게 바이오클린의 성공을 축하했다.
“하하하!”
“하하하! 음료 맛이 정말 좋네요.”
“맞습니다. 천상의 맛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손뼉을 마구 쳤다. 그렇게 그 기쁨을 나눴다. 이제 바이오클린을 영접해야 했다.
박순후 박사가 약병 뚜껑을 열었다. 드르륵! 뚜껑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약병이 등장하자,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이제 됐다.”
지단길 박사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하늘을 나는 천사를 본 듯한 미소였다.
바로 그때!
“억!”
지단길 박사가 비명을 지르고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몸을 마구 떨었다. 손가락 사이로 찐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건 검은 피였다.
“헉!”
검은 피가 응접실 바닥에 떨어졌다.
“검은 피!”
“아이고!”
사람들이 검은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급히 말했다.
“빨리 바이오클린을 처방해야 해요! 지박사님이 위험하세요!”
“맞아요! 지금 기뻐할 때가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박순후 박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배기원 조수가 서둘렀다. 알약 하나와 물컵을 들고 지단길 박사를 향해 걸어갔다.
지박사가 자리에 앉아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동공이 풀리기 시작했다. 동생들이 그를 급히 간호했다. 옷 단추를 풀고 응급조치했다.
“홍보팀장님!”
배조수가 물컵과 약을 홍보팀장 지수미에게 건넸다.
“윽!”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배기원 조수가 휘청거렸다. 강풍에 휘날리는 갈대 같았다. 그가 맥없이 쓰러졌다.
“배, 배조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악!”
“윽!”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자리에 쓰러졌다. 속절없이 쓰러지는 게 고목이 쿵! 하며 넘어가는 거 같았다.
“으으으~!”
사람들 입에서 고통이 새어 나왔다. 타이어에서 공기가 빠지는 거 같았다.
잠시 후 모든 사람이 바닥에 쓰러졌다.
비명으로 가득 찼던 응접실이 조용해졌다. 마치 아무도 없는 거 같았다.
그렇게 정적이 흘렀다. 참혹한 정적이었다.
그때 치직! 하며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 흐흐흐! 멍청한 놈들! 오늘 기적은 없다. 너희에게 줄 건 기적이 아니라 검은 피의 저주다.
그게 김덕길의 뜻이다. 그리고 궁극의 도를 깨달은 궁인, 병아리 2 나의 뜻이기도 하다.
크하하하! 마지막을 즐겨라. 바로 죽지는 않을 거다. 고통을 느끼면 천천히 죽을 거다.”
소리가 뚝 그쳤다.
밤이 깊어갔다.
컴컴한 밤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미약한 초승달이 인천 바닷가를 비췄다. 그 빛을 받으며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탐정 유강인이었다.
유강인이 바닷가 절벽 호화 주택 앞에 서 있었다. 그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검은색 코트를 입었다. 긴 코트가 바람에 휘날렸다.
유강인이 오른손을 들었다.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네모난 물체를 꺼냈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소형 무전기였다.
코트에 동그란 배지가 달려 있었다. 전방을 촬영하는 초소형 카메라였다.
출동한 경찰은 호화 주택 근처 숲속에 있었다. 조수 둘도 마찬가지였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닷가 저택을 성난 표정으로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