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심봉사는 말 그대로 봉사야.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앞을 보지 못했어. 어둠 속에 살아온 인물이야.
그러다 딸 심청의 도움으로 눈을 떴어. 마지막에 기적을 경험한 인물이야’
유강인이 생각을 이었다.
‘그렇다면 … 녹색 잔은 분명 아니야. 어둠을 상징하는 검은색 잔이나 빛을 상징하는 투명한 잔 둘 중 하나야. 빛과 어둠 속에서 골라야 해.’
유강인이 검은색 잔과 투명한 잔을 뚫어지게 내려다봤다. 그러다 고개를 끄떡였다.
심봉사를 상징하는 음료는 그 음료밖에 없었다. 유강인이 주저하지 않고 검은색 잔을 들었다.
병아리 2, 배기원이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웃었다.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병아리 2에게 말했다.
“심봉사는 오랜 세월 어둠 속에 살다가 간신히 눈을 뜬 사람이다. 심봉사를 상징하는 음료는 … 당연히 검은색 잔이다!
투명한 잔은 그가 눈을 뜬 이후다. 심봉사라는 말이 뜻하듯이 그를 상징하는 건 어둠이다.”
“하하하, 과연 그럴까?”
병아리 2, 배기원이 유강인을 흔들었다. 간사한 미소를 지었다.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검은색 잔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쭉 마셨다.
꿀컥! 꿀컥! 음료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검은색 음료를 마시고 있을 때
원창수 형사가 열린 옥상 문 사이로 계속 밖을 살폈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중얼거렸다.
“유탐정님이 뭘 마시는 거지?”
그 옆에 있는 정찬우 형사가 급히 말했다.
“선배님이 뭘 마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별일이 있나요?”
“별일은 없는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계속 지켜봅시다.”
두 형사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조수 둘은 기동대 경찰과 함께 저택 밖에 있었다. 둘이 모니터를 주시했다.
모니터에서 보이는 영상은 유강인의 배지에서 송출하는 영상이었다.
황수지가 황정수에게 말했다.
“탐정님이 음료를 마신 거 같아요. 잔이 반 이상 줄어들었어요.”
“별일은 없고?”
“네, 없는 거 같아요.”
“앞에 테이블이 두 개나 더 있네? 테이블마다 잔이 세 개씩 있어. 지금 대체 뭘 하는 거지?”
“보아하니 무슨 내기를 하는 거 같아요.”
“내, 내기라고? 지금 지수미씨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 설마, 지수미씨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하는 거야?”
“아, 그런 거 같네요.”
“세상에!”
조수 둘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둘은 현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큰일이 벌어진다는 걸 간파했다.
“아주 잘 먹었다. 콜라가 맛있네.”
유강인이 검은색 음료를 반 이상 마셨다. 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놨다.
“크하하하!”
병아리 2, 배기원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옥상에 퍼졌다.
10초 후, 웃음소리가 그쳤다. 병아리 2, 배기원이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좋다! 잘했다. 첫 번째는 원래 쉽기 마련이지. 몸풀기에 불과해. 두 번째부터가 진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다른 문제들도 그리 어렵지 않아.”
“그래? 그럼, 다행이군.”
유강인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병아리 2를 무섭게 노려봤다.
병아리 2, 배기원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하는 건 생사를 건 퀴즈다. 그런 퀴즈에 풀 수 없는 문제를 낼 수는 없지. 그건 공정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거든 …
너는 내 호적수니. 그만큼 예우를 해준다. 유강인, 다음 테이블로 와라!”
“알았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 다음 테이블로 향했다. 그가 테이블 앞에 섰다.
테이블 위에 잔 세 개가 있었다. 검은색 잔, 고동색 잔, 투명한 잔이었다.
병아리 2, 배기원이 입을 열었다.
“그래, 약속을 지키마. 네 친구 윤호는 인천 가인구 XX 지하 창고에 있다.
거기로 가라! 늦게 가면 과다 출혈로 죽을 거다. 서둘러야 할 거야.”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서둘러 무전을 날렸다.
“정형사! 인천 가인구 XX 지하 창고에 내 친구 윤호가 있어. 어서 구하러 가!”
“네! 알겠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무전을 받고 이 사실을 서울청 형사들에게 알렸다.
“오우! 일이 잘 풀리고 있군.”
무전을 듣고 원창수 형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됐다는 듯 손바닥을 쓱쓱 비볐다. 유강인이 일을 잘 처리하는 게 분명했다.
원형사가 열린 옥상 문 사이로 계속 바깥 상황을 살폈다. 밖의 상황은 여전했다. 유강인이 병아리 2와 계속 대치했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병아리 2, 배기원이 입을 열었다. 다음 문제를 냈다.
“두 번째 퀴즈를 내겠다. 심청을 상징하는 잔을 들고 반 이상 마셔라!”
“심청을 상징하는 잔이라고?”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고개를 내려 잔 세 개를 쭉 살폈다.
잔은 검은색 잔, 고동색 잔, 투명한 잔이었다.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심청을 상징하는 색을 고르라는 건데 … 대체 어느 색이지? 검은색은 어둠이고 투명은 광명이야.
고동색은 뭐지? 딱 봐도 코코아 같은데 … 이런 젠장!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니야!’
유강인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번 문제는 첫 번째 문제보다 훨씬 어려웠다.
병아리 2, 배기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 단호함이 있었다.
“앞으로 생각할 시간을 1분만 주겠다. 1분 만에 풀지 못하면 네 친구는 죽는다.”
유강인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급히 심청전을 되새겼다. 심청전에 답이 있을 게 분명했다.
효성이 지극한 심청은 어머니를 잃고 눈이 먼 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공양미 300석을 바치면 아버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스스로 제물이 되어 팔려갔다.
심청을 공양미 300석에 산 사람들은 뱃사람들이었다. 용왕을 달래기 위해 제물이 필요했다.
심청은 공양미 300석을 바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그렇게 심청은 뱃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인당수에 갔다. 심청은 인당수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바다에 몸을 내던졌다.
바다의 왕, 용왕은 제물인 심청을 살렸다. 환대한 후 지상으로 돌려보냈다. 심청은 연꽃 배를 타고 지상으로 돌아왔다.
지상으로 돌아온 심청은 황제가 아내, 황후가 되었다. 이후부터는 해피엔딩이었다.
맹인 잔치에 참석한 심봉사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딸을 만나고 심청의 바람대로 결국, 두 눈을 뜨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아! 그렇군.”
유강인이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주저하지 않고 고동색 잔을 들었다. 그리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심청은 용왕의 도움으로 살았다. 연꽃 배를 타고 지상으로 돌아왔다. 심청은 한마디로 연꽃 같은 사람이다.
흙탕물 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빛났다. 연꽃은 흙탕물에서 오히려 더 잘 자란다.
따라서 답은 고동색 잔이다! 심청은 더러운 흙탕물에서 연꽃처럼 빛나는 고귀한 사람이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고동색 잔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잔을 쭉 들이켰다. 코코아를 깔끔히 다 마셨다. 소매로 입을 닦고 말했다.
“참 맛있군. 내가 좋아하는 코코아야. 병아리 2, 고맙다. 맛있는 음료를 대접해 줘서.”
정의를 갈구하는 용기가 유강인에게 지혜를 줬다. 그 지혜가 빛을 발했다.
병아리 2, 배기원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답했다.
“역시 유강인이군. 똑똑해.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 이 맛에 너를 상대하는 거야.
특별히 고양이 표 브랜드를 골랐다. 고양이 표 코코아를 네가 좋아한다고 들었다. 맛있다니 기분이 좋군.”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잔말 말고 진호는 어디에 있어?”
“진호는 윤호 근처에 있다. 윤호가 갇힌 곳, 옆 건물이다. 옆에 있는 건물은 단 하나다. 찾기 쉬울 거다.”
“알았다.”
유강인이 급히 무전을 날렸다.
“정형사, 진호는 옆 건물에 있어. 어서 찾아가!”
“알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퀴즈만 남았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마지막 문제를 내라! 보기 좋게 맞혀주마. 네 덕분에 배가 부를 지경이다.”
“하하하! 너무 자만하지 마라. 마지막 테이블로 와라!”
“알았다.”
유강인이 마지막 테이블로 향했다. 그가 테이블에 놓인 잔 세 개를 살폈다.
검은색 잔과 붉은색 잔, 황금색 잔이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유강인이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두 눈을 천천히 떴다. 두 눈이 어느 때보다 맑았다.
병아리 2, 배기원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 문제를 냈다.
“마지막 문제는 네가 아니라 지수미가 음료를 마신다. 너는 잔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뭐, 뭐라고?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흐흐흐!”
병아리 2, 배기원이 웃음을 흘리며 두 손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홍보팀장 지수미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응?”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병아리 2가 인질을 풀어줬다.
주저앉은 지수미가 휘청거렸다. 몸을 가누지 못했다.
‘혹 속임수가?’
유강인이 급히 사방을 살폈다. 사방은 고요했다. 파도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화려한 조명만 빛났다.
그때!
“으으으~!”
지수미가 두 손으로 목을 꽉 부여잡았다. 무척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뭔가를 급히 토해냈다. 그건 검은 피였다.
“거, 검은 피!”
다시 등장한 검은 피를 보고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흐흐흐!”
병아리 2, 배기원이 차가운 웃음을 흘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주사기였다. 아무것도 없는 빈 주사기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강인이 당혹감에 몸이 굳어버렸다.
병아리 2, 배기원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옥상에 올라온 후, 지수미에게 검은 피의 저주를 내렸다. 지수미도 지남철 박사의 자식이다.
오빠 지단길처럼 저주를 피할 수 없다. 약효는 먹는 약보다 느리게 설정했다. 하지만 효과는 먹는 약보다 10배나 강하다.”
“뭐, 뭐라고? 이놈이!”
유강인이 솟구치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으으으~!”
지수미가 신음을 내뱉고 바닥에 맥없이 쓰러졌다. 두 눈이 달걀프라이처럼 풀렸다. 의식을 점점 잃어갔다.
상황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병아리 2, 배기원이 소리쳤다.
“잔 세 개 중에 치료제가 있다. 바로 기적의 약, 바이오클린이다.
마지막 문제를 풀고 그 잔을 지수미에게 먹여라! 그러면 지수미는 살 수 있다. 네 스스로 기적을 보여라!”
“헉!”
유강인이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지막 음료는 자신이 아니라 홍보팀장 지수미가 먹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지수미가 죽을 수 있었다. 그것도 유강인 품에서 죽을 수 있었다.
병아리 2, 배기원이 씩 웃었다. 웃음이 소름 끼쳤다. 사람을 시험하고 지옥으로 이끄는 악마의 웃음이었다.
3초 후
병아리 2, 배기원이 마지막 문제를 냈다. 아주 차분한 목소리였다.
“심봉사 부인은 뺑덕어멈이다. 뺑덕어멈은 아주 유명한 자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뺑덕어멈을 상징하는 잔을 찾아라! 이게 마지막 문제다. 잘 풀기 바란다. 이건 진심이다. 흐흐흐!”
유강인이 문제를 듣고 급히 고개를 내렸다. 잔 세 개를 살폈다.
잔은 세 개였다.
검은색 잔과 붉은색 잔, 황금색 잔이었다.
이 중에 기적의 약, 바이오클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