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개를풀며"를 읽고
책을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ㅡ 와우 씨, 국어영역 독서 과학지문 여섯시간 내내 푸는 것 같아
였다.
이 책을 사기 얼마 전 나는 EBS에서 세계적 석학들의 강연을 방영한 <그레이트 마인즈>시리즈에서 리처드 도킨슨의 강연을 봤다. 두 편 합쳐서 한 시간 내외였던가.
영상은 무척 재미있었고, 설명도 쉽게 이해되었다.
그러다보니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많이 봤던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익히 많이 들었고, 과학적 배경지식이 많이 부족한 내 입장에서는 섣불리 도전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오 책이 바로 이 <무지개를 풀며>.
전문서적의 경우 번역이 누구인가에 따라 또 체감 난이도가 달라지기도 하기에 번역가를 확인해보니 유튜브채널에서 익숙해진 최재천 샘이 있지 않은가!!!
그 정도의 정보 전달력을 가지신 분이고, 책도 여러 권 쓰셨으니 직역체의 비문은 없겠지?
과학이 자연적 현상들을 법칙과 이론으로 풀어내면서 그에 대한 상상력을 잃어버렸다고 한탄한 '존 키츠'의 시 내용을 제목으로 정한 이 책은 초반에는 과학이 시적 상상력을 파괴(?)한다는 오해에 대해 설명을 한다.
우리가 대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알아갈수록 세상에 대한 상상의 폭은 더 넓어질 수 있고, 더 정확한 시선을 가지게 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그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상상'은 사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언제 쓰는지 생각해 본다면 공상과 상상이 어떻게 다른지 체감이 된다.
또, 리처드 샘이 논의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가는지를 보면서 '과학적 사고'가 철학적 사고와 참 닮았다는 생각도 했다.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끊임없이 던지는 '왜'와 '어떻게'의 연속은 책장이 넘어갈수록 따라가기 힘겨워하는 나를 너무도 지치게 했지만 결국 어떠한 진리를 밝히기 위한 질문은 공통적으로 같구나 싶었다.
내세운 가설이나 전제를 검증하는 과정 중 하나만을 잡아채 결론처럼 왜곡하거나 의미를 잘못 부여하면 오류가 되고, 그러한 오류가 사회적으로 퍼지면 바로 잡기 어렵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학생 때 빨간 펜으로 그어져 있던 내 수학시험지의 서술형 문제의 답안이 생각났다.
아! 그 때 문제풀이 과정 한 군데 틀렸다고 그렇게 점수가 깎였던 건 내게 과학적 오류의 무서움을 알려주기 위한 거였나?
- 맞다, 과알못이 읽기에는 리처드샘이 너무도 신나하며 제시하고 있는 게 글자 너머로 여실히 느껴지는 이 책의 많은 과학적 사례들과 설명은 정신을 많이, 아주 많이 피곤하게 한다.
중반으로 가면 유사과학이나 비과학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과학적인 척 하며 내세우는 이론들이 어째서 과학이 될 수 없는지 설명도 해 준다.
'가이아'라는 표현이 가진 과학적 오류와 허점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음악이나 자연 현상을 과학이라는 스펙트럼으로 풀어헤쳐도 그 아름다움이나 감동에는 변화가 없으리라 설명하기도 하는데...
예전에 봤던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는데, 두 주인공 중 한 사람은 수학자 한 사람은 물리학자였다. 이미 학문적으로 검증이 끝난 공식에 대해 다른 방식의 검증에 도전하는 친구 X에서 주인공은 묻는다. 이미 검증이 끝난 공식에 왜 다른 검증이 필요하냐고.
그 때 X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그 검증은 아름답지 않잖아."
그 때부터 아, 과학을 하는 분들의 '아름다움'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이구나, 싶기는 했다.
물론 사람이 '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불안정보다 안정, 불규칙보다 규칙, 반비례보다 비례 쪽의 비중이 크다고 하니 자신이 발견한 과학적 원리의 그 질서와 규칙을 바라보면 전율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리처드 샘이 1과 0으로 수렴된 미시 세상을 설명하면서 결론, 0과 1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경탄에 마지 않는 결론을 내릴 때는
- 네? 정말요? 왜죠?
싶었다.
하지만 낯선 단어가 툭툭 튀어나오고, 하나의 가설을 반박하거나 지지할 때 나오는 과학적 사례들과 설명, 인용된 책들, 그 내용에 대한 설명, 그 설명에 대한 리처드샘의 생각,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이론과 사례들에 대한 설명.......
뒤로 갈수록 점점 지쳐가면서 머리가 너무 아팠다.
- 실제적으로 두통이 너무 심했다. 밤에는 열도 났는데 이 책 때문은 아니고 감기, 몸살이 왔던 듯 하다.
그리고 점점 지쳐가면서, 번번이 설명의 핵심을 놓쳤다.
그래도 밑줄 친 부분이나 메모가 다른 책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을 보면 나름 재미는 있었던 것 같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도 많았고,
예를 들면 '캄브리아기의 생물 화석들이 많다고 해서 생명체가 그 때 가장 많았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생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같은 이야기들이다.
가시적인 증거물에만 집중하다보면 감춰진 그 원류를 놓치게 된다는 것.
우리가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맥락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야 하듯
과학 역시 가시적인 증거들 전후에 연결될 수 있는 맥락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는 것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우연'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또 다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았겠으나
아쉽게도 나의 지적 소양은 이 책에 비해 부족했다.
- 뭐 책을 아무리 읽어도 퇴적작용보다는 풍화작용이 더 열심히 일어나는 나의 머리 속이다 보니...
그래도 이과니 문과니 따위와 관계없이
학문적 연구를 하는 것에 있어서 그 근본은 같구나.
그 결과들을 받아들이는 자세 역시 같아야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이 책에서도 번역의 오류라 할 수 있는 비문들이 보여서 안타까웠다.
우리 말에서는 주어, 목적어 관계로 해석해야 하는 것을 관형어, 주어로 번역되어 있는 비문도 있었고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맞지 않는 문장들도 보였다.
왜.....외국에서 유학하신 분들은 원서를 읽으면 국어의 통사구조는 잊게 되는 걸까...
편집부, 뭐 하는 거지?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