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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라임 Dec 28. 2024

검은 페이지

바람은 나의 손은 씻겨주었고 밝은 햇빛은 눈을 깨물었다. 홀리는 바다의 소리는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물 위에는 진주가 반짝였다. 너무나 환해 간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나? 아니, 딱히 멋진 풍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 시간이 멈추길 바랐다.


 해변가 주변을 살살 걸어 다녔다. 중간중간 발이 따가워 바다에 들어도 갔다. 그러다 유난히 빛나는 조개껍질이 보였다.

그 조개껍질은 푸른빛과 함께 어딘가 엉성한 모양을 띄고 있었다. 동그랗기도 하고 뾰족하기도 하고 이상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간직하고 싶어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내가 왜 바다를 왔지.. ”


 아무 이유 없이 온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단순한 대피소가 아닌, 아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으니까.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은 엄청난 잔소리를 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순간은 무엇도 방해할 수 없었다.


날 위해 해변에 있는 모든 것이 말해주었다. 힘내라고, 잘하고 있다고. 행복했다. 아무 대가 없이 날 믿어주는 그 말이었으니까. 거기서 흘러나온 순수한 아이의 웃음은 무엇보다도 기뻐 보였다. 이 순간은 나의 삶에 있어 가장 밝고 아름다운 일탈의 한 장이었다. 그리고 그 페이지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

.

.

8시 30분, 15분가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여니 익숙한 집의 향이 날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게 해 주었다. 날 반기려는 잔소리를 들을 줄 알고 바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 유온아~ 어디 있어?”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요함이 너무 깊었다. 1층을 둘러보는 중 2층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몸을 돌려 2층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지? 도둑이라도 들었나? 고양이가 들어온 건가?... 려온 정신 차려.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냐.. ’


 별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실제로 일어날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2층 문을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거실에 퍼져 있는 피비린내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거실엔 피가 흥건했고 그리고 그 옆엔 여동생이 사늘이 누워있었다. 나의 가족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참혹한 흔적들만이 방안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설마. ”


 동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발에 피가 물었는지 모른 채로 처벅처벅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동생 얼굴을 만지니 마네킹처럼 굳어있었고 따듯했던 날들은 잊은 듯 차가워져 있었다.

동시에 무서워 에게서 도망쳤다.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던 나의 발걸음은 이제 절망과 함께 무거워졌다.  


 “119.. 112... 어디에 전화를.. 아니 아닌가. 뭐야 어디에 전화를..”


 나의 떨리는 손은 전화번호조차 누를 수 없었다. 겨우 112를 눌렀을 땐 이미 10분이 지난 후였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집은 차디찬 죽음의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왜 내가 없던 그 순간에…”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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