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곳은 저승세계이다. 사실 이승에 있을 때는 저승이란 게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죽어서 떡하니 저승에 있는데도 저승을 믿지 않는 건 이상하니 이제는 내가 저승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내가 저승에 온지 꽤 된 것 같다. 일단 죽고 나니까 갑자기 이상한 데로 와 있었는데 검붉은 와인의 색과 비슷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나같이 죽은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웠다.
죽은 사람들을 구별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정신이 딴 곳을 향해 있거나, 울부짖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가끔은 매우 차분한 죽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옷으로 구별할 수 있긴 했다. 한 줄로 들어선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진정되어 보였다. 나도 그 줄 끄트머리에 합류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줄은 확실히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확실히 저승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반 정도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나머지 반은 줄을 서 있는데도 줄은 끝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줄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줄의 끝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곳에 서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자신이 천국에 가거나 환생하길 기도하는 사람과, 또 다른 죽음이 기다릴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반응은 상반되었지만 그들이 바라는 건 같았다. 이 줄이 빨리 줄어들어 자신의 차례가 오는 것이었다. 나도 그걸 바랐다.
저승은 마치 허허벌판 같았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지구를 그냥 동그란 회색 구로 조각해놓은 느낌이랄까? 땅은 매우 딱딱했고 칙칙한 빛깔이었다. 구조물이라고는 사람들의 줄 끝에 있는 저 거대한 건물밖엔 없었다. 벽의 모양은 뾰족뾰족했고 지붕은 나무를 통째로 얹어놓은 듯했다. 딱 보았을 때 들어가고 싶은 인상은 아니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줄어들고, 줄어들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양갈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나를 건물 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여러 명의 죽은 사람들이 종이에 무언가를 써 내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욕심에 가득찬 것 같기도, 슬픈 것 같기도 했다. 그 여자는 나를 빈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곳에 데려가더니 종이와 연필을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친절하게
“이 종이에 당신이 다음 생에서 가장 바라는 걸 딱 한 가지만 적어 넣으세요.”
말하고서는 다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설명하길 반복했다. 주변 사람들은 보니 설명을 듣자마자 ‘돈’이라고 큼지막하게 적은 채로 바로 종이를 내미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여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의 끄트머리로 그들을 안내한 다음 어떤 문 안으로 그 종이를 든 채 들어가라고 했다.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들어갔고 몇초 후 그들은 사라져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였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미루고 그 할머니가 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참을 무언가를 썼다가 지우길 반복하더니 하나의 단어를 쓰고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단어는 ‘건강’ 이었다. 할머니는 종이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종이를 집어 든 손에는 굳은살이 곳곳에 박혀 있었고, 나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저 종이와는 관계없이 원하는 것을 이룰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음으로 내 옆에 앉은 것은 다름 아닌 어린아이였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이곳에 있는 것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큰 글씨로 또박또박 ‘건강’ 이라고 적고선 옆에 있는 내게 말했다.
“할머니가 누가 뭐래도 건강이 최고랬어요.”
그러고선 나한테 한번 씩 웃고는 종이를 들고 쫄래쫄래 뛰어갔다. 그 뒷모습이 어딘지 슬퍼 보였다.
나는 종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돈을 쓴다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고, 건강을 쓴다면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종이 위에 꾹꾹 글자를 적어 내렸다. 연필을 조심히 내려놓고 다시 그 여자에게 갔다. 그 여자는 종이를 확인하고는 저 문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어디에선가 태어났다.
여자는 문을 열었다. 문 안에서는 종이가 팔랑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
안녕하세요 alive 입니다. 비록 미세한 오묘함에서 2화밖에 연재를 하지 못하였지만 미세한 오묘함에서의 저의 연재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연재하는 책을 더 집중적으로 쓰기 위해서 아쉽지만 여기서 끝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미세한 오묘함의 연재는 블루라임님이 이어갈 예정입니다. 여기서 끝내게 되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