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초록색 액체로 뒤덮인 탱자 밴드 멤버들과 배포는 청명천에서 그것을 대충 씻어내고, 화성에서 타고 왔던 자율주행차에 올라 출근 지옥이 된 명성 시내를 빠져나왔다. 최적의 길로 신속하게 화성으로 모셔놓겠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드라이버 로봇의 말과는 달리 차는 거북이 주행만 했다. 차량으로 빽빽이 늘어선 도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출퇴근 시간에 버스 몇 대만 운영하는 화성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품을 하던 라인이 앞길을 막고 있는 차들을 보며 불만스레 말했다.
“진짜 여긴 딴 세상이네. 우리만 에너지 절약에 목매고 사는 거 아니야?”
졸린 눈으로 핸드폰을 보던 배달이 말했다.
“아, 아니야. 명성도 가끔 전력 부족 때문에 저, 정전이 된대. 어젠 광기동도 정전됐잖아. 아, 아직 복구가 아, 안 됐대.”
밤새도록 머거리병에 걸린 주민들이 얼마나 확성기를 들고 시끄럽게 떠들어댔을지 생각하니 절로 귀가 따가웠다.
어서 화성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거북이처럼 움직이기라도 하던 차가 완전히 멈춘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드라이버 로봇이 말했다.
“사고로 인한 정체가 지속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1분 1초가 급할 때 하필 사고라니….
꽉 막힌 도로를 보며 답답해하던 혜성은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중년의 얼굴을 한 배포는 헤드셋을 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건지 생각에 잠긴 건지 이해가 안 될 만큼 고요한 얼굴이었다. 라인과 배달도 지쳤는지 졸고 있었다.
혜성도 밤을 새워서 지쳤지만 억지로 눈을 부릅뜬 채 날카로운 정신을 유지하려 애썼다. 인간 우주를 구하기 위해 정신을 차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볼까지 꼬집으며 밀려오는 졸음을 떨쳐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거의 멈춘 차의 보닛 위로 커다란 비닐 더미가 뚝 떨어졌다. 차가 흔들리며 졸던 라인과 배달이 번쩍 눈을 떴다. 옆 차, 뒷차, 앞차의 보닛. 차량 사이의 공간과 도로 곳곳에 그 알 수 없는 비닐 더미가 쉴새 없이 떨어졌다. 신기하게 그것을 쳐다보던 라인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명성은 다르네. 아침부터 이런 깜짝 선물 이벤트도 하고. 뭐가 들었는지 뜯어봐야지!”
다른 사람들도 계속 차에서 내렸다. 막 손잡이를 잡고 내리려는 라인을 눈을 감고 있던 배포가 제지했다.
“그냥 둬라.”
라인이 멈칫하는 사이 옆 차의 운전자가 거대 비닐을 뜯다 비명을 질렀다. 거대 비닐 안에선 한글 상표가 선명한 페트병과 유리병을 비롯해, 라면 봉지, 소시지 비닐, 아이들 기저귀, 컵라면 용기, 아이스크림 막대기 같은 것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뜯은 비닐에서도 모두 한국산인 게 확실한 쓰레기가 들어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쓰레기 더미는 도로 곳곳을 블록처럼 점령했다. 차들은 교통사고가 아닌 쓰레기 사고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더는 차 안에 있을 수 없는 탱자 밴드 멤버들과 배포는 악기와 짐을 챙겨 나왔다. 차와 쓰레기 더미가 어지럽게 널린 도로는 아수라장이었다. 배포가 물끄러미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찬란들의 쓰레기 탈출 작전이 성공한 것 같군.”
어리둥절하게 혜성이 물었다.
“네? 찬란들이 이 일을 벌였다고요?”
“어제 광기동의 정전도 찬란들과 그 친구들이 일으킨 거야. 광기동에 사는 유명인사들이 수시로 오라지의 자택에 드나들며 모베오를 구입해서 순간 이동을 한다는 제보를 받았거든. 역시 랑바린에서 모베오를 반출한 기업이라 그런지 모베오를 꽤 보유하고 있었어. 너흰 지금 쓰레기가 순간 이동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 거란다.”
“헐…… 아저씨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꽤 됐지. 찬란들끼리는 서로 뇌파로 소통할 수 있거든.”
혜성이 입을 쩍 벌렸다.
“뇌파로 소통한다고요? 텔레파시로?”
“그래. 건강한 찬란들끼린 아무리 멀리 있어도 소통 가능해. 지난번에 일어난 튼크의 대화재가 한반도에서 무분별하게 수출된 쓰레기 때문이라는 건 너희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 잿더미가 된 그곳에 여전히 쓰레기는 수출되고 있어. 찬란들은 더는 사태를 관망할 수 없다고 여기고 가족 친구들과 힘을 합쳐 명성으로 잠입했어. 튼크에 있는 한반도의 쓰레기는 대부분 명성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야. 쓰레기는 지금 이국땅에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거야.”
한반도에서 쓰레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명성이다. 쓰레기 더미는 끊임없이 명성의 거리로 떨어졌다. 으리으리한 위용을 드러내며 명성의 도로를 주행하던 최신 전기차에선 쓰레기에서 나온 오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쌓인 쓰레기 더미로 도로는 완전히 마비됐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다 대부분 차에서 빠져나왔다. 멈춘 차량과 거기서 내린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도로 위로 쓰레기 더미는 계속 떨어졌다. 일부 쓰레기는 비닐이 완전 뜯어져 하늘에서 우박처럼 쏟아지기도 했다. 출근을 위해 정장을 쫙 빼입은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 폭탄에 맞아 꼬질꼬질해졌다.
쓰레기로 도로가 막혔기에 지하철 주변이 붐볐다. 그러나 이내 지하철 출구에서도 사람들이 계속 뛰쳐나왔다. 지하철 선로 곳곳에서도 쓰레기 더미가 떨어져 열차가 중지된 것이다. 시내는 온통 쓰레기와 쓰레기에 경악하는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출근 지옥에서 쓰레기 지옥이 된 명성엔 여전히 눈에 시뻘건 빛이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명성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명성에서 보물찾기’ 전파 수송신기가 설치되어 있는 갓타워에도 폐철근이 떨어지며 문제가 생겼기에 게임을 멈추라는 문자가 계속 날아왔다. 그러나 눈이 시뻘겋게 된 유저들은 황금신 갓파더가 곧 보물을 내려줄 거라며 흥분했다. 전파 수송신 문제로 그들이 붉은 렌즈를 끼고 보는 현실이 평소보다 더 왜곡돼 보였다. 유저들은 갓파더가 보물을 내려보내고 있다며 떨어진 쓰레기 봉지를 풀어헤치면서 안 그래도 어지러운 거리를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붉은 지휘봉을 든 경찰들이 그들에게 제발 쓰레기를 풀지 말라며 다가왔다. 유저들의 눈에 지휘봉을 든 경찰의 모습은 꼭 피 묻은 망치를 든 타락한 토르처럼 보였다. 보물을 먼저 찾기 위해 늘 경쟁하던 유저들은 오랜만에 힘을 합쳐 타락한 토르를 에워쌌다. 그중 배가 툭 튀어나온 중년 아저씨의 손에는 떨어진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듯한 살이 나간 우산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엑스칼리버를 든 자신이 타락한 토르를 무찌르겠다며 경찰에게 돌진했다. 겁먹은 경찰은 죽기 살기로 유저들 사이를 뚫고 줄행랑쳤다.
원강 고수부지 근처에선 한 유저가 보물을 찾았다며 난리를 피웠다. 그가 찾은 건 노란색 바나나 모양의 유아용 변기였다. 바나나 변기 주변엔 아기용 기저귀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다른 유저는 그 버려진 아기 기저귀를 꽉 끌어안더니 금덩이를 찾았다며 소리를 질렀다.
엉망진창 웃지 못할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 이 쓰레기 난장판 속을 걸어 다니면서도 배포는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쉬었다 가자며 원강변으로 내려가더니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쓰레기봉투 위에 앉아 느닷없이 도피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려 불쾌한 얼굴로 걷고 있던 사람들과 쓰레기를 맞아 억울한 거지꼴이 된 사람들이 하나둘 도피 피리 소리를 듣고 몰려들었다.
혜성도 도피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저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서 룬아를 구하러 화성으로 돌아가고 싶어 조급하던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도피 피리 소리가 전해주는 평화가 잠시 쓰레기 지옥이 된 현실을 잊게 해주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앵콜을 외쳤다. 배포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만 흘렸다. 배포가 앵콜곡을 연주할 뜻이 없어 보이자 사람들은 아쉬운 얼굴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유독 키가 크고 윤기 있는 기다란 수염과 장발에 병뚜껑 세 개를 이어붙인 안대를 한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남아 외국인은 끝까지 남아있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배포를 숨 막힐 듯 껴안았다. 겨우 배포를 품에서 풀어준 그는 탱자 밴드 멤버들이 지고 있는 악기를 보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했다. 배포가 씩 미소 지었다.
“이제 진짜 완전히 잊힌 모양이네, 아무도 못 알아보네. 샥을……”
‘샥’이라니 참 특이한 이름이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딱 한 명 알긴 한다. 6년 전에 해체한 전설의 그룹 ‘티피’의 드러머가 샥이었다. ‘티피’의 왕팬인 배필은 그들의 머리카락을 합쳐 만든 장발 가발까지 갖고 있었다. 설마 그 샥은 아니겠지. 혜성은 혹시나 해서 쳐다봤다.
티피로 활동 당시 샥은 짧은 스포츠머리였다. 저렇게 머리를 기른 적이 없었다. 샥이 기다린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저 먼 곳을 응시하며 씩 웃었다. 그러자 왼쪽 앞니에 있는 네잎클로버가 보였다.
맙소사! 앞에 있는 사람은 진짜 전설의 밴드 티피의 멤버 샥이었다!
혜성은 쓰레기 지옥에 있는 것보다 티피의 멤버인 샥과 함께 있는 게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배포가 다시 입을 굳게 다문 샥을 보며 말했다.
“샥의 클로버를 보다니, 너희는 정말 대단한 행운아들이야. 이 녀석 좀처럼 웃지 않잖아.”
샥은 강변에서 명성에서 보물찾기 유저들이 버려진 아기 기저귀를 금덩이로 인식해 미식축구 못지않은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며 웃었던 것이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힌 혜성은 샥에게 티피 해체 후 어떻게 지냈는지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를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샥은 티피의 멤버 중 자신과 인디언 로세는 찬란이고 백인 멤버 가든은 찬란의 친구였고 흑인 멤버 놀런은 누나가 찬란이었다고 했다. 그들이 티피를 결성한 건 지구를 살리는 노래를 세상에 들려주기 위해서였는데, 지구보다 자신들에게 집착하는 팬들이 많아 괴로웠다고 한다. 멤버들 모두 언제쯤 은퇴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해늘이 남긴 악기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단 걸 알게 됐다. 뜻하지 않은 과한 인기에 지쳐가던 멤버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고 티피는 해체됐다. 멤버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해늘이 남긴 전설의 악기를 찾아다녔다.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 해체하고 죽은 듯 사라져 버린 티피 멤버들의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얘기하던 샥이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의 손엔 혜성의 주머니에 있는 것과 같은 꽃돌이 있었다. 샥은 해늘의 악기가 동시에 연주되면 전 세계 곳곳의 꽃돌 안에 있던 우주화의 싹이 발아한다고 했다. 꽃돌들은 모두 연결이 되어 있기에 다른 게 발아가 되면 나머지도 자연스레 발아한다. 발아한 싹이 자라 우주화가 지구 전역에 피면 지구는 회복된다. 혜성은 룬아가 준 꽃돌 안에 있는 씨앗의 진짜 정체를 알고 놀랐다.
꽃돌 안의 씨앗을 발아시키긴 위해선 전 세계 흩어져 있는 33종의 전설의 악기를 모두 찾아야 했다. 그중 배포가 찾은 해늘의 악기는 도피 피리와 완함이었다. 이제 남은 악기는 두 개다. 샥은 한반도에 남은 전설의 악기를 찾으러 왔다가 찬란들의 쓰레기 순간 이동 작전 소식을 듣고 돕고 있었다. 이 일을 마치면 그는 다시 마지막 해늘의 악기를 찾으러 한반도를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혜성이 배포에게 물었다.
“혹시 남은 악기가 도피 피리에 그려진 짝이라고 하는 봉이 그려진 악기를 말하는 건가요?”
배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다에 빠진 와징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못 찾은 악기야.”
랑바린의 와징도 해늘의 악기라는 게 놀라웠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라인이 샥과 배달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물었다.
“근데 아저씨나 샥도 어렸을 때 우주석을 불렀어요?”
라인의 말을 배포의 텔레파시를 통해 전해들은 샥이 고개를 끄덕였다.
샥의 고향도 튼크였다. 그는 19살 때 점점 마을에 쌓이는 국제 쓰레기들로 오염되는 강을 보호하기 위해 우주석을 요청했다. 튼크로 떨어진 우주석은 암흑 에너지의 방해로, 그만 욕심 많은 튼크 시장의 손에 들어갔다. 시장으로부터 우주석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앞니가 부서졌다. 다시 우주석을 찾긴 했지만 이미 암흑 에너지에 물든 튼크 시장의 손에 들어간 우주석은 에너지가 많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다시 찾은 우주석을 가슴에 품은 다음, 오염된 강에 던졌지만 강은 일부만 정화되었다. 잠시 정화되었던 튼크의 강과 숲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오는 쓰레기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다.
혜성이 샥을 보며 안도했다.
“우주석을 빼앗기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걸 빼앗겼더라면 어쩌면 티피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요!”
배포의 텔레파시를 통해 혜성의 말이 샥에게 전달되었다. 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포는 누구에게도 요청한 우주석을 빼앗기지 않고 천도산 화산 폭발을 막았어. 대단하지 않니?>
그저 시중에 떠도는 황당한 설인 줄 알았던 천도산 폭발설이 진짜 사실이었다니…….
혜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배포가 아련한 얼굴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우주석으로 천도산 폭발을 막은 것도 다행이지만 그때 우주석을 부르지 않았다면 아내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내가 요청한 우주석이 천도산에 막 떨어졌을 때 한 씩씩한 아가씨가 천도산 일대에만 사는 희귀 동식물들이 걱정된다면서 찾아왔어. 그땐 곧 폭발할 것 같다는 예측이 무성한 천도산에 아무도 얼씬도 안 할 때였거든. 천도산 어딘가에 떨어진 우주석을 찾으러 다니다 집사람의 손에 있는 우주석을 발견했지. 집사람은 찬란은 아니었지만 밝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우주석의 에너지는 오염되지 않고 그대로였지. 난 집사람한테서 우주석을 찾아서 가슴에 품은 다음 빼내서 맑디맑은 영롱 속에 던졌어. 천지가 요동을 치며 천도산 전체가 찬란한 빛에 휩싸였지. 우주와 천지가 만난 조화로 인해 그 일대에는 쌍무지개 잠시 떴단다. 그리고 불을 품고 있던 천도산은 잠잠해졌지. 그런데 집사람이 그 모든 걸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내 정체를 계속 물으면서 귀찮게 쫓아다녔어. 할 수 없이 찬란이란 걸 밝혔어. 집사람은 다른 사람과 너무 다른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챙겨줬어. 그렇게 사랑이 시작됐지.”
흥미롭게 듣던 라인이 배달을 보며 말했다.
“우와! 천도산의 폭발을 막은 뒤 아줌마를 만나 배필 언니와 달이를 낳은 거네요! 무슨 신화 속 주인공 같다. 근데 찬란은 늙었다 젊었다 하잖아요. 우주석만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는 건가요?”
배포가 웃었다.
“우리도 사람이라고 그랬잖니. 청정한 자연에서 몸을 충전하고, 되도록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오염되지 않는 음식을 먹고, 좋은 소리를 듣고, 좋은 생각만 하고 살기 때문에 일반 인간들보다 건강하게 산단다. 찬란의 평균 수명은 120살이야.”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대부분 죽기 직전에는 병이 들어 병원에서 생을 마친다.
건강하게 살다 죽는 찬란이 정말 부러웠다.
“진짜 우리 같은 사람도 찬란의 능력이 잠재돼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찬란이 될 수 있죠?”
배포가 차분히 말했다.
“우선 그것부터 고쳐야 해. 넌 지금 하나뿐인 네 삶을 부정한 채 찬란의 삶을 동경하고 있잖아. 누구의 삶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 안의 순수한 생명성을 사랑하고 그걸 꽃 피우려 노력해야 해.”
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이 샥의 안대를 보더니 물었다.
“샥은 지구의 눈과 감응하는 찬란인가 봐요.”
샥의 병뚜껑 안대 밑에 있는 왼쪽 눈은 병든 지구의 눈과 감응하기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티피로 활동할 때도 그는 한 번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샥은 지구의 고통을 함께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하며 회색 가루가 든 작은 봉지를 배포에게 건넸다. 그것은 룬아와 사이언을 순식간에 화성으로 이동시켰던 해늘의 아토 ‘모베오’였다. 어제 오라지의 자택 지하에 있는 모베오는 거의 다 빼돌려 튼크의 쓰레기를 명성으로 이동시키는 데 썼기에 그 정도밖에 줄 수 없었다. 배포가 손에 있는 모베오를 보며 말했다.
“두 명만 이동할 양이라고 하는구나.”
잠자코 있던 배달이 말했다.
“아, 아빠랑, 혜, 혜성이 먼저 가. 어, 어서 가서 룬아를 구해야지!”
혜성이 격하게 배달을 껴안았다.
“고맙다! 친구!”
배포가 발밑에 굴러다니는 요구르트병을 주워서 원강변에서 깨끗이 씻더니 물을 떠 왔다. 그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화성의 흙이 든 봉투를 꺼낸 다음, 건반 가방을 껴안은 혜성의 한 손을 꽉 잡고선 요구르트병에 든 물에 회색의 모베오와 붉은빛의 화성의 흙을 넣고 흔들었다. 물로 인해 모베오와 화성의 흙이 섞이며, 손을 잡은 배포와 혜성은 번개처럼 슉 사라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바로 앞에 있었던 사람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리자 라인은 얼떨떨했다. 꼭 귀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라인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하늘에서 허술하게 묶인 쓰레기 뭉치가 떨어졌다. 배달이 라인을 밀어내고 그걸 대신 맞았다.
쓰레기 뭉치 속에서 주사기, 피 묻은 붕대, 소독용 솜, 다 쓴 링거팩 같은 게 배달의 몸 위로 계속 쏟아졌다. 놀란 라인은 샥과 힘을 합쳐 의료 쓰레기를 걷어냈다. 핏덩이와 섞인 실리콘 보형물에 목이 눌려있던 배달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정신 차려! 내 대빵 책임지기로 했잖아!”
라인의 애절한 외침에 배달은 겨우 눈을 떴다. 기진맥진해 있는 배달을 이대로 계속 걷게 할 수는 없었다. 라인은 배달을 업고 다시 도로 위에 멈춰 있는 화성에서 렌트한 자율주행차까지 갔다. 라인은 배달을 차에 눕혀 놓았다.
샥은 드라이버 로봇에게 쓰레기가 비교적 적은 길을 알려준 후 둘과 헤어졌다. 쓰레기에 맞아 축 늘어진 배달을 보니 라인은 절로 눈물이 나왔다. 어서 이 쓰레기 지옥이 된 명성을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신 오고 싶지 않았다.
<총 21화, 완결까지 원고가 나와 있지만 교정을 좀 더 봐야 해서 일단 여기까지 공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