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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음 Nov 01. 2024

11화, 죽음의 우물

첨벙-

우물 앞에 도착하자마자 두더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살고 싶으면 뛰어내려!”

가장 먼저 도착한 소리가 굳은 얼굴로 구멍 안을 바라봤다.

말하는 두더지가 물 위에 둥둥 뜬 채로 여유롭게 유영을 하며 말했다.

“어차피 떨어질 거 밧줄에 꽁꽁 묶여 떨어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우습지만 맞는 말이야.”

소리는 크게 숨을 들이켜더니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첨벙-

뒤처지는 파랑이와 속도를 맞추며 뛰던 번은 그 모습을 보자 빠르게 우물로 달려왔다.

“소리야! 괜찮아?”

소리가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번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뒤따라 구멍 속으로 몸을 던지려 할 때였다.

뒤이어 도착한 파랑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나, 난 못해! 진짜 못해! 나 수영 못한단 말이야!”

“미쳤어? 두더지들한테 잡히면 진짜 끝장이야” 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의 옷을 잡아끌었다.

“이거 놔! 차라리 두더지들을 설득하는 게 나! 이건, 이건 그냥 미친 짓이라고!” 파랑이가 소리치며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두더지들을 마주하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떡해! 난 진짜 죽기 싫어! 죽기 싫단 말야!”

소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두더지에게 물었다.

“다시 올라갈 방법은 없겠죠?”

“없어.”     


위쪽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두더지들은 어느새 그들을 포위한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에 번이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팔목을 세게 잡아끌었다.

“나한테 꼭 붙어있어!”

번이 파랑이를 품에 안자 놀란 파랑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을 마칠 세도 없이 파랑이의 몸이 구멍 안으로 쏙 하고 빨려 들어갔다.

“으에에에에엑!” 파랑이의 괴성이 동굴 안을 울렸다.

첨벙-

“사, 살려줘! 어푸! 나 죽어! 어푸!” 물에 빠진 파랑이가 발버둥을 치자 그녀를 붙잡고 있던 번이 눈살을 찌푸렸다.

“발버둥 좀 그만 쳐! 이 뚱보야!”

그리고 역시나 효과는 확실했다.

번의 말에 화가 난 파랑이가 발버둥을 멈추고 그를 노려봤다.

“너 자꾸! 나 그렇게, 부를 거야? 나 엄연히 정상이야! 정상이라고!”

“네가 발버둥 치니까 나까지 가라앉잖아! 진짜 죽고 싶어서 이래?”

파랑이의 발버둥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러자 두 사람의 몸이 물 위로 떠올랐다.

파랑이가 자신의 등뒤에 꼭 붙어 있는 번을 향해 원망스러운 듯 소리쳤다.

“날, 잘도 죽이려고 했겠다?”

이에 번이 황당한 듯 소리쳤다.

“네가 날 죽이려 한 게 아니고? 눈이 있으면 봐, 넌 지금 물에 잘만 떠있어! 하지만 저 위에서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우리 둘 다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버렸겠지. 수박으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를 불쌍한 너를 구해준 나에게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탓을해?”

“난 너한테 도움 받은 적 없어!” 파랑이가 빼액 소리쳤다.

“사막에서도 이곳에서도 널 구한 건 나야!”

번의 말에 파랑이가 몹시 당황한 듯 얼굴을 굳히더니 심호흡을 하며 이내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건, 네가 아니라 이 녀석 때문이지.”

파랑이가 자신의 허리를 휘감고 있는 번의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 이 팔은 내거 아냐?” 번이 짧게 숨을 들이키며 말하자 파랑이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렇게 말하지 마, 불쾌해지려고 하니까! 난 지금 네 팔에 하나의 인격을 부여해 다른 생명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파랑이가 번의 팔을 톡톡 두어 번 두들기며 말했다.

“고마워, 정체 모를 팔아?”

번은 정말이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파랑이를 바라보았다. 말문이 막혀 버린 번의 입에선 더 이상 어떤 말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리는 꽤 가깝게 붙어있는 두 사람을 보며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져서 다행이야”

소리의 중얼거림을 듣고 말하는 두더지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저 둘은 몹시 서로를 싫어하고 있어. 그건 오늘 처음 본 나도 느낄 수 있지.”

말하는 두더지의 말에 소리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전 파랑이와 번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켜봤어요. 물론 엄마 뱃속에서. 그래서 그 누구보다 쟤들을 잘 알아요.”

두더지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희는 모두 머리에 큰 하자가 하나씩 있는 건가?”

이에 소리가 표정을 굳혔다. 재수 없는 두더지 같으니라고.

“그러는 그쪽은 말을 좀 예쁘게라도 하면 어디 몹시 거북한 병에라도 걸렸나 봐요?”

소리의 말에 그가 코웃음을 쳤다.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아마 네 말을 저 두더지들이 들었다면 순식간에 저들의 발에 밟혀 처참히 뭉개졌을걸?”

“아, 네. 그러시겠죠” 오만한 두더지 같으니라고!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를 흘겼다. 하지만 그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 건 사실이기에 소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눌렀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나가면 되죠?”

우물 위, 잔뜩 흥분한 채 발을 굴러대는 두더지들을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아, 네들 살아나갈 확률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겠는데?”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쿵! 쿵! 쿵!

동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놀라 두더지를 바라봤다.

“여기가 아니고 저기야.”

말하는 두더지가 수면 위 구멍을 가리켰다.

잔뜩 독이 오른 수많은 두더지들이 눈을 번뜩이며 구멍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파랑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거 공포물이냐고……!”


“얘, 얘들아 침착해. 어차피 쟤들은 이 우물을 무서워한다고 했잖아. 이곳에 들어 올리는 없어. 그, 그렇죠?”

소리가 사색이 된 친구들을 진정시키며 말하는 두더지에게 물었다.

“그래.”

세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두더지는 수영을 잘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파랑이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난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하지만 네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저들은 자신들이 수영을 할 줄 아는지 모를뿐더러, 이곳에 들어오면 죽는다고 알고 있지. 내가 이곳은 죽음의 우물이라고 세뇌시켜 놨거든. 그래서 뛰어내리지는 않을 테지만 선택은 저들의 몫이지.”

세 사람은 어딘가 이상한 말에 그를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쟤들이 이곳에 뛰어내릴 수도 있다는 거야?” 파랑이의 말에 두더지가 여유롭게 헤엄을 치며 말했다.

“그래, 저들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 몸을, 극악무도한 거짓말쟁이인 너희가 우물에 빠뜨렸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사막의 모래두더지들은 당한 건 배로 갚아주려는 족속들인데 아마 어떻게든 너희를 응징하려 하겠지.”

그의 말에 세 사람이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다음말에 그들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난 재들의 왕 두더지거든.”

세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허세부리 기는, 제일 쫄다구 같이 생겨가지고?”

그러자 번이 파랑이에게 눈치를 줬다.

“올파랑, 네 말에 충분한 일리가 있어. 하지만 일단은 쟬 자극하지 마. 어쨌든 지금으로선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은 저 두더지 녀석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니까. 하지만 네 말대로 쫄다구 하나를 위해 저 놈들이 죽음의 우물에 뛰어들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도 되겠어.”

두 사람의 시시덕 거리는 모습에 두더지가 얼굴을 찌푸렸다.

“다 들려, 이 모지리들아. 그냥 확 죽게 내버려 둬?”

말하는 두더지가 위협적으로 이빨을 드러내자 그들이 험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도 저들이 날 포기했으면 좋겠어. 날 잊고 새로운 왕을 뽑는다면 좋겠는데…….”

말하는 두더지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두더지들을 바라봤다.

“이런,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결론 지은 모양이야. 좀 의외인데?”

두더지가 “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감동받은 표정 집어치워! 그, 그래서 뭔데! 쟤들이 이 밑으로 뛰어내리기라도 한다는 거야?” 번이 외쳤다.

“그, 그럼 우리가 저 두더지 놈 때문에 위험해졌다는 거네?”

파랑이가 울상을 짓자, 말하는 두더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말은 바로 해. 나 덕분에 아직까지 그 쓸모없는 목숨이 붙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문제의 상황은 곧바로 찾아왔다.

두더지들은 동굴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온 힘을 다해 발을 굴렀다.

동굴이 세차게 진동하며 잔물결이 일기 시작하더니 세 사람의 머리 위로 모래와 작은 돌덩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쟤, 쟤들 왜 저러는 거예요!”

소리가 두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소리쳤다.

“이건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곳을 무너뜨리고 다 같이 죽을 생각인가 봐.” 그가 무심히 답했다.

그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두더지는 침착하게 두 팔을 뻗어 유유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용감한 제군들의 선택을 잊지 않겠다.”

“저거 진짜 또라이 아니야!” 파랑이가 질리다는 듯 외쳤다.

“도, 동굴이 무너진다고? 그럼 여기 있는 모두가 위험해질 뿐 아니라, 너도 위험 해지는 거야, 어서 저 두더지들한테 멈추라고 해!”

번의 말에 두더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위험 해지는 건 네들 뿐이야. 그리고 그 머리라는 걸 달고 있으면 생각이란 걸 하는 게 어때, 두더지들의 의사소통 법이 뭔지 그새 잊은 거야? 여긴 물속 안이야. 발을 구를 수 있는 지면이 없다고?”

말하는 두더지가 그들과 멀어지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나라면 그렇게 소리칠 시간에 최대한 구멍과 멀어지겠어. 머리가 박살 나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아, 물론 네들의 선택은 그저 두고 볼일이지. 참고로 모래 두더지들의 손과 발은 아주 힘이 세고 튼튼해. 네들 머리 위 동굴이 당장 무너져 내린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두더지가 물속으로 몸을 감추는가 싶더니 금방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니 날 따라서 무사히 물 밖으로 나온다면, 절대 이 은혜를 잊지 말도록!”

말을 마친 두더지가 다시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세 사람은 멍하니 두더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저 두더지 새퀴가 지금 은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게 맞지?”

파랑이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하지만 큰 돌덩이가 물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들의 분노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어, 어서 움직여!”

세 사람이 열심히 손을 저으며 구멍과 멀어졌다.

그때였다. 열심히 발을 구르던 두더지 한 마리가 발을 헛디뎌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두더지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생각보다 똑똑했던 두더지는 곧 이 구멍 속 물이 자신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소리가 불안한 듯 물장구를 멈췄다.

“괘, 괜찮아. 한 마리일 뿐이야, 다행히 쟤네 말 못 하잖아. 그러니 다른 두더지들이 이곳에 뛰어내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

“치이이이이익!”

“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엄마아아아아아아!”

두더지의 입에서 나오는 괴상한 울음에 세 사람은 기겁했다. 

수많은 두더지들은 동료의 소리를 듣자 일제히 행동을 멈추더니 모두 구멍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순진해 보이던 검은 눈동자들이 지금 이 순간, 밤의 저주보다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두더지들은 곧 물속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일사불란하게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파랑이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두, 두더지는 말 못 한다며 이 망할 두더지 새캬!”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욕지거리가 동굴 안을 가득 매웠다.

   

허우적거리던 두더지들은 빠르게 헤엄을 터득하더니 곧 물속이 제 집인 양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두더지 너, 우리를 갖고 논거였어! 지금이라도 뭐라 말 좀 해봐!” 파랑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두더지를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자 숨을 들이켰다.

“망할 두더지 어디로 튄 거야!”

“아까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어? 들어간 지 꽤 된 거 같은데?”

번의 말에 순간 소리의 뇌에 번뜩 그의 말이 스쳤다.

'그러니 날 따라서 무사히 물 밖으로 나온다면, 절대 이 은혜를 잊지 말도록!'

“날 따라서……? 설마!”

소리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물속 안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참소리!” 파랑이가 놀라 소리쳤다.

물속 안에서 주변을 살피던 소리의 눈이 커졌다. 혹시 숨겨진 비밀 통로라도 있는 걸까 싶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확실히 더 멋졌다. 소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푸아! 콜록, 콜록! 얘들아, 이 밑에 수중 수레가 있어! 그걸 타고 빠져나면 돼”

“수중 수레라고?” 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치자 파랑이가 질색하며 말했다.

“정신 차려! 우리가 물고기도 아니고 물안에 있는 수레를 어떻게 타? 우린 아가미가 없다고!”

“물안에 수레가 있는 건 확실해?” 번이 재차 묻자 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두더지가 그랬어. 자길 따라서 밖으로 나온다면 은혜를 잊지 말라고! 그 두더지 저 밑에 있는 수레를 타고 이미 빠져나간 게 틀림없어!”

“빠져나가기도 전에 숨 막혀 죽을 거야!” 파랑이의 말에 소리가 고개를 저었다.

“진정해, 파랑아. 걘 자기애가 엄청나.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 위인이 절대 못된다는 말이야. 분명 수렛길은 안전하게 밖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야.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냥 수레에서 내리면 돼! 시간이 없어! 저들의 관심이 다시 우리에게 꽂히기 전 어서 움직여야 돼!”

세 사람은 신이 난 듯 물장구를 치는 거대한 생명체들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아마 두더지들이 처음 느껴보는 물의 감촉과 수영의 참맛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세 사람은 이미 저들의 날카로운 손톱에 머리통이 깨져 버렸을 것이다.

소리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가장 먼저 물안으로 들어갔다.

“소리야, 참소리!”

파랑이가 기겁하며 자신의 머리칼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번이 파랑이를 힘 있게 끌어당겼다.

“올파랑, 우리도 가야 돼. 숨 크게 들이마셔!”

“뭐, 뭐? 자, 잠깐만! 꼬르륵!”

물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소리는 수레에 올라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위쪽을 쳐다보자 코를 막고 눈을 질끈 감은 파랑이와 그녀의 옷깃을 잡은 채 끌고 내려 오는 번이 보였다.

소리는 번에게 하나 남은 뒤쪽 수레를 가리켰다. 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레를 살피니 바로 앞에 우뚝 솟아있는 긴 막대가 있었다. 소리는 거침없이 막대를 앞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곧 수레가 진동하며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조금씩 빨라지며 물의 저항을 이겨내기 힘들자, 소리는 몸을 움츠린 채 온 힘을 다해 수레의 양쪽 끝을 꽉 부여잡았다.

다행히 얼마가지 않아 예상했던 데로 수레가 위쪽으로 기울며 지상으로 몸체를 내밀었다.

“푸아! 콜록, 콜록, 처음부터 물아래 수레가 있다고 친절히 설명하면 어디가 덧나냐고!”

소리가 짜증스럽게 외는 동안, 수레는 별탈없이 동굴 안을 부드럽게 지났다.

하지만 무사할 거라는 희망도 잠시, 코너를 지나 보이는 광경은 그녀의 멘탈을 뒤흔들었다.

“아, 안돼!”

수렛길이 끊겨있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앞이 절벽이라는 것과 눈이 잘못된게 아니라면 허공을 뚫고 위로 올라가는 거대 폭포였다.

이 절망적이고 말 같지도 않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수레가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의자에 스프링이 툭 튀어나와 소리의 몸을 물기둥 쪽으로 내던졌다.

소리의 몸이 허공을 향해 떠오름과 동시에 수레는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미련 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소리는 가까워져 오는 물기둥에 눈을 질끈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허업!"

촤아아아악!

공기로 한껏 부풀려져 빵빵해진 얼굴을 하고 소리가 힘겹게 눈을 떴다.

캄캄한 어둠과 빠른 물살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조금 전 보았던 이상한 물기둥에 의해 아마도 위로 올라가고 있을 거라는 사실뿐이었다.

아니, 실은 방금 전 보았던 그 사실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물이라니, 머리가 이상해져서 헛것을 본 것이 틀림없다.

그럼 이대로 죽는 건가?

그 순간, 두려움이 차오르며 소리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정말 죽기 싫은데, 숨이 모자란 거 같기도 하고…….

소리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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