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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의 중요성

발레의 기초, 바르게 서기



아무리 근사한 셔츠를 입어도 단추를 하나 엇갈려 줄줄이 밀려서 채우면 말짱 꽝이다. 뭐 요즘이야 겉과 속의 경계가 모호하고 일부러 단추를 엇갈려 채우는 셔츠 디자인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이 경우는 지극히 포멀한 정장 셔츠에 관한 거다. 온갖 맵시를 뽐내며 포토존에 서있는데 찍히는 자신은 잘못 입은 옷 상태를 몰라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펼쳐진다. 이럴 때 옛 어르신들의 격언인 ‘첫 단추가 중요한 거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취미발레 클래스를 처음 수강하던 날을 떠올려보자. 소싯적에 발레 좀 했던 사람들이 무용실로 컴백한 경우 말고, 성인이 돼서 난생처음으로 발레 슈즈를 신고 바 앞에 섰던 날을 생각해보라. ‘운동 좀 해볼까?’ 또는 ‘좀 우아한 춤 좀 배워볼까?’라는 소심하면서도 야심 찬 마음으로 섰다가 1번 포지션부터 무너지고, 플리에라는 말도 안 되는 동작에 엉거주춤 온갖 웃긴 자세를 취하던 날을… 바 워크가 진행될수록 진정 슬랩스틱 몸 개그도 모자라서 선생님이 말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외계어가 난무하던 동작 용어들… 센터 워크로 가면 한술 더 뜬다. 앙쉔느망이 시작되면 진짜 이건 무슨 중국의 소수 민족 언어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감히 비유하자면 대형병원 의사들이 회진 돌 때 분명히 환자는 난데 자기들끼리 모르는 말로 한참 떠들다가 나한테는 한마디 무심하게 띡~ 던져주는 상황이랄까? 마치 모르는 언어로 나 똑바로 쳐다보며 내 얘기를 하고, 아무것도 아닌 척하며 말해주는 아주 묘한 기분과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많은 발레 학원 선생님들은 성인 발레 학원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몇 번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서서히 따라오도록 지도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생님의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발레를 시작하기로 했다면 이 첫날의 마음가짐과 첫인상은 상당히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는 첫날 아무것도 몰라도 마냥 신나기만 했었다. 그 설렘이 강했기에 지금까지 발레 관련 글을 쓰고 일을 하는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남, 설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발레 클래스에 들어서는 첫날 그 어떤 동작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앞사람 쳐다보며 헐랭이 춤추듯 허우적거리다 나오면 제대로 된 첫 단추를 채운 것이 아니다. 첫날은 그저 바로 서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앞에서 아무리 현란하고 화려한 동작으로 온갖 춤사위를 펼치더라도 현혹되지 말고, 조급한 마음도 가지지 말자.

바른 1번 포지션으로만 설 수 있으면 된다. (완벽함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의 바른 자세다) 제발 되지도 않는 180도 발 모양 만든다고 골반의 위치를 틸트(tilt) 시키고 무릎과 발목을 뒤트는 행동도 하지 말고, 몸의 양쪽 밸런스가 어느 정도 잘 맞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뭐? 야심 차게 발레를 시작하는데 첫날 겨우 서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하며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발레 클래스의 첫날 몸에서 기억한 첫 단추가 당신의 남은 인생의 발레 라이프에 춤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다. 어쩌면 첫날의 <올바로 서기> 자세는 셔츠의 첫 단추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첫 단추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진짜 첫 단추를 채우는 순간은 발을 뻗는 첫 움직임, 턴듀가 아닐까 싶다. (사실 플리에도 정말 어려운 동작이다)


모델 : Magdalena Matějková,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8 김윤식)


허리와 골반의 위치를 바르고 자연스럽게 놓고, 동시에 갈비뼈를 닫아야 한다. 척추와 골반에 아무리 집중을 해도 갈비뼈가 헤벌레 하게 열려 있으면 절대로 어려운 동작을 소화할 수 없고, 이것이 습관이 되면 흉곽이 다 벌어지고 가슴판이 원하지 않게 커지는 일이 생긴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어떤 것을 하는가? 그렇다. 물에서 천천히 걸어보라고 시킨다. 물에서의 몸의 움직임을 온몸으로 인지하고, 두뇌에 각인시키는 거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처음 배우는 것은 손가락 번호를 익히고, 피아노 앞에 바르게 앉아서 건반에 손을 올릴 모양을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손 모양 잡기는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다. 클라리넷을 처음 배우면 리드만 낀 마우스피스로 올바르게 호흡하고 소리 내는 연습만 한다. 관악기는 그냥 소리를 내는 것보다 어떤 호흡으로 악기를 부느냐에 따라 더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운지법이 아닌 악기를 잡는 법을 배운다. 바이올린도 첫날에는 악기에 대한 것과 악기를 잡는 법과 보잉 하는 활의 위치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이와 같이 운동이나 악기 레슨 첫날의 이미지 트레이닝은 상당히 중요하다.



물론 성인발레 클래스도 다양화되면서 초급자 레벨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내가 조사한 바로는 대부분 성인 취미발레 전문 학원이 여전히 부족한 편이라서 많은 레벨이 합쳐진 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가르치는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부담 없이 마음 비우고 하라고 하지만, 앞사람이 나보다 훨씬 높은 레벨의 사람일 경우는 그게 되질 않는다. 그래서 첫날의 이미지 트레이닝보다 조급한 마음의 허우적거림과 신남과 흥분된 마음만 가지고 끝내기가 쉽다. 그리고 첫날의 이 신나는 기분은 다음 단원에서 이야기할 진짜 중요한 과정으로 가는데 생각 없이 마구 달려가기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실 성인 취미발레의 경우 많은 선생님들은 천천히 가르쳐주려고 해도 학생들의 마음이 조급하게 달릴 때가 많다. 처음부터 절대 달리지 말라. 제대로 알아야 달릴 수 있다.



발레를 오래 하면 잘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느 정도 오래 하면 발레 하는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발레를 하고 싶다면 첫날의 첫 단추에 소홀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글로 인해 누구의 잘못을 판단하려는 의도가 아닌 나 자신이 겪은 일을 객관화해서 들려주고픈 마음이다.

이미 발레를 오래 한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차근차근 자신의 몸과 당연히 해왔던 동작을 면밀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 단추 잘못 채운채로 줄줄이 단추를 잠그고 있는 일을 벌이고 있지 않는지 이번 기회에 냉철하게 돌이켜보자.






**전문가의 한 수 


감수 : 최세영 (독한 윤여사도 쩔쩔매는 무림의 진짜 고수가 나타났다)

"주제 : 발바닥 소생술, 소중한 당신의 종자뼈"



발레의 기초, 바르게 서있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앞으로 10화에 걸쳐서 펼쳐질 <전문가의 한 수> 코너는 절대 급하거나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루하고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건강하고 온전하게 발레를 하고 차곡차곡 쌓고 싶다면 이 코너의 팁을 간과하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 거울 앞에 1번 포지션으로 서보자. 자… 여기서 우리가 생각했던 발레리나다운 자세를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자세로 서보라. (처음부터 양발을 180도 벌리겠다는 이따위 생각은 버리자. 180도 벌린다고 발목 틀고, 무릎 뒤트는 동작은 반칙으로 간주하겠다)  정면에서 봤을 때 좌우대칭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은가? 그렇다면 좌향좌든 우향우든 90도 몸을 돌려서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인체를 통과하는 중력선(Line of gravity) (출처 : Google 이미지)

귀, 어깨, 고관절, 무릎, 복숭아뼈 앞쪽으로 라인(중력선_Line of gravity)이 연결되는지 살펴보라. 만약 자연스러운 중력선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당신의 몸 어느 한 부분의 중심은 깨져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라인이 정리가 되게 서있다면 이 상태로 가만히 눈을 감고 약 1분 동안 부동의 자세로  서있어 보기를 권한다.


이때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발바닥 엄지발가락 하단에 위치한 종자뼈(sesamoid bone)이다. 평상시에 서 있을 땐 종자뼈와 새끼발가락 아래쪽, 발뒤꿈치를 연결하는 역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무게중심이 실려야 건강하게 보행을 하는 위치다. 그러나 발레를 할 때 우리는 항상 를르베, 업을 서야 하는 운명(?)이기에 엄지발가락 하단 발바닥에서 볼록 나와 있는 종자뼈에 집중을 해야 한다. 1번 포지션으로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보면, 예상을 뛰어넘는 발바닥의 자극 또는 통증이 느껴질 것이다. 이것은 발바닥의 아치를 세우기 위한 족저근(plantar)을 제대로 사용하는 신호다.

일상 생활 중 종자뼈(sesamoid bone)의 하중에 집중하자 (출처 : Google 이미지)

발레를 배우다 보면 가지는 환상 중의 하나가 기초 레벨을 무시하고 다음 단계로 진도를 빼는 경우다. 이 매거진을 접한 이상 우등생 월반을 할 생각은 버리길 바란다. :) 우리가 흔히 발레를 배우면서 저질렀던 잘못된 것이 빠른 진도 빼기와 테크닉을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무너뜨린 경우이다. 이것은 우리 몸에게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같은 행위다. (나 역시 그래 왔음을 소심하게 고백한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엄지 쪽에 힘을 싣지만, 아치를 들어 올릴 욕심으로 여전히 은근슬쩍 새끼발가락 쪽에 힘을 실으면서 아치를 들어 올린다면 과감히 반칙으로 간주하겠다. 당장 엄지 쪽의 아치가 형성되지 않더라도 우선은 당신의 소중한 엄지발가락 쪽 종자뼈에 집중하길 바란다. 이것을 잘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발바닥을 바닥에 잘 붙이고, 서서히 드미 포인으로 서보도록 하자. (자… 또 여기서 바로 중간 과정 없이 를르베 업으로 발딱 서버리면 옐로카드. 끌까지 를르베 업을 하는 것은 드미 포인의 과정이 익숙해진 다음에 하도록 하자)

이 동작에서 주의할 점은 서서히 를르베를 할 때 발바닥과 발가락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두발로 서면서 오직 발등에만 힘을 주고 밀어내면 안 된다.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양쪽 발 를르베의 높이와 한발 를르베를 할 때 동일한 높이가 구현되어야 한다. 특히 한 발로 설 때 지지하는 다리의 무릎을 끝까지 폈는지 체크하도록 해보자. 드미 포인의 를르베가 정확하고 익숙해진 다음 완전한 를르베 업을 서야 한다. 과정 없이 결과만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단계별로 진행해보자.

이것은 비단 발레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당신의 발바닥 근육을 제대로 소생시켜야 건강하게 몸을 사용할 수 있다. 앞으로 10화에 걸쳐서 다양하게 신경 써야 할 신체 부위에 대한 팁을 일상생활에 적용시키면 된다. 우선 바르게 서고 걷는 것부터 고쳐보자. 작지만 이 중요한 기초들이 모여서 당신이 더욱 행복한 움직임으로 발레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모델 : Alina Nanu,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8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이론 감수 : 최세영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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