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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9. 2024

오뚝이를 가지고 간 아이,
오뚝이처럼

1부. 흐름에 맡겨진 나의 흔적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엄마는 안 계시고 대신 오뚝이가 나를 맞았다. 저 오뚝이만 보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그땐 유치원이 끝나면 선생님께서 준비물을 알려주시곤 했다. 문방구는 걸어서 가기에는 거리가 있어서 아빠가 퇴근하고 저녁을 드신 후 봉고차를 타고 엄마도 함께 문방구로 향했다. 주인아줌마는 무엇을 사러 왔냐고 물었고,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무슨 무슨 기요” 하고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 ‘그게 뭐지’라는 반응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왔다. 사실 준비물의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마지막 음절만 들었는데 다시 묻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물어본다는 건 너무 떨리는 일이었다.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선생님 주변에 있는 것을 보면 부러웠지, 그렇게 해 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선생님이 다가올 때면 이미 심장은 쿵쾅거렸다. 안 그래도 나오지 않는 말은 더욱 입 주변에서만 맴돌았다. 가게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분주해진 주인아줌마는 “기로 끝나는 물건은 오뚝이밖에 없어요.”라고 하시며 밖에 진열해 놓은 물건들을 가게 안에 넣기 시작하셨다. 더 고민할 새 없이 오뚝이를 사서 나왔다.

  유치원으로 걸어가는 동안 오뚝이는 내 걸음걸이에 추임새를 넣으며 힘차게 울렸다. 조심히 걸어도 소리가 나길래 그냥 평소대로 걸었다. 내 요란한 소리와 다르게 아이들의 가방은 조용했다. 아주 조심조심 걸어왔나보다 생각했다. 준비물을 꺼내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다들 사물함으로 향했다. 가방에서 오뚝이를 꺼내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친구는 동그란 렌즈에 손잡이가 달린 물건을 꺼냈다. 왼쪽에 있는 친구도 크기만 차이가 났지 같은 물건을 가지고 왔다. 준비물은 ‘돋보기’였던 거다. 나는 되도록 소리가 나지 않게 오뚝이를 가방에 담았다. 온 가족이 출동하여 준비했지만,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은 아이가 되었다. 이 상황도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말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시뮬레이션만 몇 차례 돌리다가 늘 상황은 종료되었다. 용기 내서 말했다면 준비물을 잘 못 가지고 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초등학교 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장기 자랑을 하는 일이 잦았는데, 앞에 나와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웃기는 말을 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럽기만 한 게 아니라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앞에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다음번에 할 사람!”이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나가지도 않을 거면서 손에 땀이 났다. 당연히 손을 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연습했다.

  어느 날은 사고를 쳤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고 교탁을 앞에 놓고 서 있었다. 그리고 불렀다. 그것도 팝송을. Richard Marx의 Now and Forever를 혀를 굴려 가며 끝까지.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박수를 받았다. 나도 놀랐지만, 친구들은 더 놀랐다. 적어도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건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그 후로 나는 용기 내서 발표하는 날도, 고민만 하다 못 하는 날도 있었고,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시도’라는 단어는 잊지 않았다. 만약 발표로 성적을 평가하는 경우처럼 하고 싶지 않아도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면 거울 앞에서 연습하고 길을 가면서도, 꿈에서도 연습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잘하고자 하는 마음과 노력이, 시도가 긴장과 두려움을 넘어서고 있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14년간 유치원 교사로 일했고, 지금은 강사로 일하고 있으니까. 교사와 강사 모두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내 역할을 다한다. 그 순간만큼은 성향은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또 달라진 게 있다면 내성적인 내 모습을 조금은 편안하게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언제나 될 때까지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까. 결국 해내는 사람이니까.


  비록 그날 잘못 가지고 간 준비물이었지만 오뚝이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넘어질 일이 올 테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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