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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빈 Oct 18. 2024

【소설】 완벽한 복수 (1)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하버드와 MIT가 있는 보스턴이기에 이곳은 늘 관광객과 학생들로 북적인다. 그 바쁘게 오가는 인파 속에서 태석은 새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회가 밀려왔다.


3년 전, 처음 이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그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낡은 백팩 하나에 꿈만 가득했던 가난한 유학생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값비싼 수트에 명품 구두를 신고 손에는 수제 가죽가방을 들고 있다. 마치 남성잡지의 모델처럼 말이다. 그런 그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취감이 혈관을 타고 돌았다.  


태석은 흔히 말하는 흙수저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고는 부모가 항상 돈 문제로 싸웠던 것.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재혼했다. 그때부터 태석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민감한 사춘기 시절, 사촌들과 친구들은 태석을 비웃고 업신여겼다. 그들의 시선과 말은 대못처럼 그를 찔렀고 그것은 그의 마음에 단단한 군살로 남아버렸다.


그래서 태석은 진작에 깨달았다. 이 세상에 자신은 혼자고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세상과 싸울 방법을 찾았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깎아가며 공부에 모든 걸 쏟았다. 공부만이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기에 태석은 세상에 대항하기 위해 그것을 갈고 닦았다.


다행히 그의 두뇌는 남들보다 명석했다. 호감가는 외모 역시 그가 목표하는 길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한국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독하게 하버드에서 3년을 보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태석은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 학위, 인맥, 직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 그녀.


태석은 자신의 약혼녀를 떠올렸다.


그랬다.


오늘의 출국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었다.


이곳 보스턴에서 만난 그녀와의 결혼은 태석이 꿈꾸던 모든 것을 가져다 줄 열쇠가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원했던 삶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완성되었다.  


결국 그는 해낸 것이다.


어느덧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구 앞. 자신의 인생이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표식이었다. 그는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안주머니에서 여권과 탑승권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휴대폰이 진동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을 보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번호였다. 태석은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벨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잠시 간의 망설임 끝에 태석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여보세요?”

— 최태석 씨?

“…그렇습니다만?”

— 이해연 씨 아시죠?


예기치 못한 이름에 태석의 얼굴이 굳었다.


— 여긴 병원입니다. 이해연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위독한 상태예요. 당신을 찾고 있으니 지금 빨리….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석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대폰 전원도 꺼버렸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다.


받지 말았어야 했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기 때문일까? 태석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이해연.

이른바 그의 연인이었던 여자.


유학시절 내내 함께 생활했던,

심지어 그의 아이까지 가졌던,


그가—

사랑, 했었던 여자.


...하지만 이미 다 과거의 일이다.


— 대한항공에서 최태석 승객을 찾습니다. 지금 바로 게이트 52번으로 가셔서….


파이널 콜을 알리는 소리. 태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서 서둘러 탑승해야 한다.


그런데 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태석은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암흑 속에 두 갈래의 길이 보였다. 하나는 그가 3년 동안 준비해온 미래로 향하는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발, 한발.


그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곳을 향해.


그렇게 걷기 시작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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