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의 흔적을 말하기 전에
네가 잘 모라서 그래 1.
내가 뭘 모른다는 거지?
대체 내가 뭘?
똑바로 얘기를 안 하고 얼버무리며 하는 말
"네가 잘 몰라서 그래...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야!"
잘 알려 주던지...
화나지 않게 미리 언질을 주던지...
설명을 해주고 오해라고 말을 하던지...
정말 속상해...
지연이는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애가 탄다.
들은 말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해수와 소미는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이다. 너무 친해서 서로 함부로 대하는 바람에 언제부터인가 서로 미워하고 뒷담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점점 사이가 벌어져서 별일 아닌 것에도 화를 벌컥 내는 원수 같은 사이가 되었다.
서로 비난하며 다른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전하게 되었고 그 말은 눈덩이처럼 커져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소문이 되었다. 그 소문을 듣게 된 지연이가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소문의 이야기를 했다가 해수와 친한 문채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문채는 해수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며 상상하는 이야기에 화가 난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사람들은 소문을 즐긴다. 소문의 당사자는 무척 고통스러울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깃거리로 올려놓고 즐기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잊는다. 소문의 진의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재밌을 뿐이다. 그러다 그 소문이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소문이면 정색을 한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아끼는 사람의 소문에만 화를 내는 걸까?
남의 말이라고 해서 진의도 파악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스트레스 푸는 장난감처럼 그 소문을 가지고 놀다가 싫증 내듯이 버린다.
나쁜 소문에는 그냥 침묵할 수는 없는 걸까?
오해.
일부분만 듣고 판단하는 심각한 오류.
병아리똥만큼만 알면서 전부 다 아는 것처럼 구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네가 잘 몰라서 그래 2
친구들끼리 파스타집에 갔다.
한 친구가 맛있다며 추천한 곳이다
"음~ 맛있다. 여기 맛있는 집이네"
"에이, 네가 잘 몰라서 그래. 마곡역에 가면 진짜 맛있는 집 있어. 여기는 그냥 그래."
추천해 준 친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젠장....'
"야! 이 정도면 괜찮지. 적당히 해라"
한 친구가 눈을 찔끔거리며 핀잔을 준다.
솔직함과 상대를 위한 과장된 말!
이게 참 어렵다.
솔직한 게 옳은 걸까? 배려의 말이 옳은 걸까?
난 솔직히 음식맛보다는 분위기 맛집을 좋아한다.
물론 맛이 탁월하면 허름하고 분위기 별로여도 찾아가서 먹기도 한다.
그러나 맛이 크게 나쁘지 않으면 긍정적인 말을 한다. 맛있다고
한 친구의 솔직함과 나름 철학이 있는 맛평가는 못 말린다.
면발부터 시작해서 소스의 첨가물까지 맛의 세기부터 본연의 재료맛까지...
유식하기 짝이 없는 그 친구는 내가 산뜻하게 올려놓은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그렇지만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는 제법 매력적이다. 진심으로 듣게 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애써 장소를 섭외한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 솔직해지는
"네가 잘 몰라서 그래."는 사양하고 싶다.
반쪽만 본 얼굴로
전부를 안다고 말하지 말아요.
길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로
나무 전체를 안다고 말하지 말아요.
작게 흘러온 소문 한 자락으로
온 마음을 부풀리지 말아요.
바람이 전한 붉은 속삭임에
온 숲을 붉게 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모두 퍼즐의 한 조각
한 페이지에 그려진 작은 그림,
전체를 품은 그림책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계속 써내려 가야 해요.
오해는 낯선 땅에 씨앗처럼 흩어져
뿌리내리기 쉽고,
말 없는 동정도, 오해 없는 이해도
모두 입맞춤처럼 조심스러워요.
반쪽의 흔적이 보이거든
내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아직 모르는 반쪽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침묵해 보아요
그 침묵의 섬세함 속에서
우린 서로를 지켜내고,
반쪽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진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