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임신 중기

by chacha

초심을 잃었다.


임신의 꽃인 임신 중기로 접어들자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임신 초기에 조마조마했던 모든 순간들이 아련해지기 시작했고 마음을 조금 편히 가지려 했다.


나는 입덧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신은 꼭 이럴 때 시련을 하나씩 주는 것일까 12주가 되자마자 내 일상은 체하고 토하는 것뿐이었다.


또 먹고 싶은 음식은 빵, 떡, 라면, 피자, 햄버거와 같은 소화 안 되는 것들이었고 먹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고 체해버리기 일쑤였다. 하루 종일 가슴팍을 두드리다 보면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만 해도 토가 쏠려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소화제를 처방받아먹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비싸다는 유산균을 먹기 시작한 18주가 돼서야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식욕이 생기니 몸무게가 절로 늘었다. 스무 살 초반부터 지금까지 매일이 다이어트였는데 20주가 지나니 이미 6-7kg가 늘어있었다. 매일 만보씩 걷고 주 3회 요가에 틈틈이 자유수영도 했지만 먹는 양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동통해진 얼굴과 펑퍼진 엉덩이와 아들배의 콜라보로 거울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임신만 되면, 안정기만 되면, 하고 바라던 마음이 이젠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기울었다.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의 절반을 달려왔다고 생각하니 이제 출산과 육아에 관심이 생겼다. 나는 육아 백과사전을 구입했고 남편도 베이비페어를 가보자며 먼저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리고 세 가족이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새 가족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너무나도 작고 좁았다. 오를 데로 오른 서울 집값에 우리는 떠밀려가듯 경기도로 이사를 결정했다. 덜컥 계약금을 내고 나니 남편의 고향이었으나 나에게는 연고도 없는 그곳이 우리 집이 되어버렸다.


이사는 출산 이후가 되겠지만 벌써부터 모든 것이 아쉬웠다. 2년째 다니고 있는 요가 클래스, 걸어서 갈 수 있는 성내천과 올림픽공원, 수서에 사는 친구들의 집에서도 멀어진다는 것이 아쉬웠다. (사실 그렇게 멀리 가진 않지만;)


임신과 출산으로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는 것 같아 나는 걱정과 설렘 그 어디에 서있었다. 감성적인 나와 달리 남편은 아기가 생기고 나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생긴 것 같았다.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했고 꼼꼼하게 계획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또 각자의 방식대로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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