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사소해서 어려운 것들은 우리를 빛나게 해준다.

by 유영운

- 제목: 이처럼 사소한 것들

- 저자: 클레어 키건

- 장르: 짧은 소설

- 분량: 131쪽

- 독서 기간: 2024년 12월 29일 (하루)

- 별점: ⭐️⭐️⭐️⭐️⭐️

- 한 줄 평: 사소해서 어려운 것들은 우리를 빛나게 해준다.

- 읽게 된 계기: 가장 좋아하는 최은영 작가님이 동작가의 <푸른 들판을 걷다>의 추천사를 쓰신 것을 보고 관심이 가 읽게 되었다.


아래의 내용부터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책 속 문장 (이북 기준으로 실제 책과 페이지 번호가 다를 수 있습니다.)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하는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p.24

강한 타격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아일린과 같이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혔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걸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끝내 펄롱은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것을 그냥 넘기지도 말로 풀어내지도 못했다. p.46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공장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p84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펄롱으로 하여금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p.93

강을 건널 때 검게 흘러가는 흑맥주처럼 짙은 물에 다시 시선이 갔다. 배로강이 자기가 갈 곳을 안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기 고집대로 흘러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간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p.97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중략)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 속에서는 두려움이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p.99-100


- 줄거리

세 가지 이야기. 수녀원에서 학대를 받는 아이를 고민 끝에, 그리고 따라올 고통을 감내하면서 구해내는 펄롱의 이야기가 큰 축이라면, 어머니를 구했던 미시스 펄슨의 이야기와 펄롱이 아빠임을 알지 못했던 네드의 사랑을 알아보는 이야기를 통해 펄롱이 받았던 사랑과 그래서 가능했던 펄롱이 베푸는 사랑을 짐작해볼 수 있다.


- 느낀점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를 학대하거나 힘에 굴복해 모르는 척하는 위선을 펄롱의 시선으로, 그의 죄책감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결국 양심을 따랐을 때 펄롱이 느끼는 뭔지 모를 기쁨이 이 책을 빛내주는 것 같다. 올바른 삶은 힘들거야. 그치만 충분히 가치가 있어. 억지로가 아니라 기쁘게 그렇게 살아낼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이 소설의 첫 문단의 묘사가 내용에 대한 암시라는 옮긴이의 글을 읽으며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단숨에 읽을 만큼 짧은 소설이었는데, 어쩌면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다시 읽는다면 묘사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조금 찬찬히 그리며 펄롱의 심리를 따라가보면 좋겠다.


IMG_3582.HEIC 비행기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두꺼운 책이 부담스럽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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