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었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피했다.

말을 꺼내기엔 너무 늦어버린 마음의 시간

by 강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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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왜 일이 그렇게까지 커졌는지.


물론, 경윤이가 화난 이유는 안다.

근데… 그 정도였나? 싶다.



전날까진 좋았다.

같이 있었고, 같이 웃었다.


경윤이가 발표 때

애플워치 없으면 불안하다 했던 게 떠올라

말없이 챙겨줬다.


경윤이는 고맙다고 했고,

난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퇴근길 통화.

“내일 일찍 나가야 해서 쉴 거야.”


그래서 난 술 약속 얘길 안 했다.

굳이 쉰다는 사람한테

꺼낼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내겐 불필요한 말 생략이 곧 ‘배려’였다.


근데 그게… 경윤이에겐

배려 없음으로 보인 거다.



모임 중에 경윤이에게 톡이 왔다.

“모해. 나 잔다.”


읽었다.

답장은 안 했다.

그냥 이제 자나보다 했다.


그런데 점점 경윤이는

다그치기 시작했다.


“모하냐고“

“아 빨리, 전화해.”

“톡을 읽었음 답을 남기던가.

전화를 받던가.

못 받음 톡을 남기던가

콜백을 하던가.

이게 또 뭔 상황인거니.

정말 알다가도 모르겐네. ㅠ

잠이 확 달아나게 진짜. ㅠ

나 자야 해.

빨랑 연락해. ㅠ“


점점 불안해하고

심각해지는 경윤이에게

톡으로 설명하긴 귀찮았다.


‘좀 있다 전화로 말하지 뭐.’


근데 전화가 계속 울렸다.

‘지금 받으면 싸움 나겠지…’


그 순간, 차단을 눌렀다.

일단 싸움은 피하고 보는 게 나았다.



집 가는 길,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전화를 걸었다.


근데 경윤이는 이미 화가 한참 나 있었다.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나오니

경윤이 드라이기가 사라져 있었다.


… 다녀갔구나.


조금 웃겼다.

‘그거 하나 가져간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러면서도 알았다.

화났다는 신호.


근데 솔직히 이해는 안 된다.

그냥 연락이 안 되면

좀 기다려줄 수도 있잖아.

왜 그렇게 계속 전화를 하고,

급기야 집까지 다녀갔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믿음을 못 준 건가?

그게 잘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부담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부재중 전화 25통.

내가 건 거였다.


기억은 흐릿했다.

술에 취했으니까.


무의식적으로라도

경윤이에게 전화해야 한다

생각한 걸까.


그리고 도착한 긴 톡.

단단한 이별 통보.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읽었다.

하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다.


뭐라고 해도 안 통할 거 같았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속으로만 말했다.

‘그래, 그만하자.’



겉으론 무심해 보인다.

근데 속으론 계속 생각한다.

그 밑엔 불안이 깔려 있다.


그래도 한쪽 마음은 이랬다.

‘진짜 끝일까? 또 풀리겠지.

늘 그랬으니까.’


근데 정말 안 풀리면?

그땐 내가 연락하지 뭐.

아니, 근데 하기 싫다. 귀찮다.


사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이너마더가 포돌이에게


포돌아,

그날 필요한 건 사실 딱 한 줄이었어.


“나 지금 술자리 와있어.

미리 말 못 해서 미안.

집에 가면서 연락할게.”


그 한 줄이면 충분했어.


만약 그 이후에도 경윤이가

계속 재촉하며 전화했다면,

그때 차단해도 괜찮았어.


관계는 완벽한 설명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야.

서툴더라도 ‘설명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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