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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해 Dec 03. 2024

나는 다정한 이웃사촌이 되기로 했다.

윗집에 사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

 나길치다. 오른쪽으로 가야 할 길을 왼쪽으로 가고, 위로 올라가야 할 길을 거꾸로 내려간다. 심지어 게임 속에서도 길을 잃어 RPG 게임은 하지 않는다. 에 목적지가 이는데도 정신을 차리면 딴 곳에  있다. 공간지능의 발달 유무를 따지기 전에 주의력의 문제였다고  반성해 본다.    


 길치에도 좋은 점 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를 위해 상냥한 친들은 약속장소를 우리 집 근처로 잡아주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호의를 호의호식 받아먹던 절은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을 내렸다. 을 잘못 기 전에 방향을 잡아주는 지도앱은 임 속 마법 아이템 같다. 내비게이션 어플 개발자분에게 이 기회를 빌어 인사를 드린다. 


 지인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운전면허시험에도 손을 . 사실 운전만큼은 평생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이었다. 사람을 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자전거처럼 대로 멈출 수도, 두고 가버릴 수도 없으니 이 얼마나 불온한 탈 것인가.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편리함을 가장했다가 벌 받기 딱 좋은 물건이라는 생각에 오랜 시간 기피.      


 그러나 남편 승선 후 방치될 자동차의 고장 위험 울며 겨자 먹기로 장에 입성했. 그리고  번의 기능시험과 번의 주행시험 끝에 빛나는 면허증을 손에 넣었다. 아이를 재우고 몰래 나와 남편의 갈굼을 받으며 연습하기를 한 달. 이제는 혼자서 운전한 지 1년이 되어간다.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차에게 "그러다 들이박아요." 하고 말을 건넬 만큼 도로 위 사정에 익숙해.         


 면허를 따고 나니 세상이 보행자와 운전자나뉜다. 걸어서 10분 거리도 차를 타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은 둘 다 게으르다는 얘기다. 다양한 도서관에 가서 아이책을 잔뜩 빌려올 수 있게 된  운전의 기쁨 중 하나였다. 또 다른 글쓰기 수업을 발견한 새로 지어진 도서관에서였다.         


 그곳의 조망은 무척 아름다웠다. 곱게 접힌 폴딩도어 너머 초록색 둔덕과 키 큰 나무들이 한 폭의 유화럼 놓여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대형 카페를 옮겨놓은 모습에  금치 못했다. 게다가 어린이 도서는 신간이 많아 표지가 매끈매끈했다. 책을 찾으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글쓰기 강좌를 알리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참 작문에 열을 올리는 중이라 신청일을 확인하고 등록에 성공했다. 나를 위한 수업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수월했다. 로운 길을 개척한 기분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자동차는 나만의 이동노래방이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있. 하지만 그날은 음악에 너무 심취했나 보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잘못 들었다. 첫날부터 지각하게 생겼구나. 10년 넘게 묵은 길치의 되살아난 것 같아 초조했다. 울상을 지으며 본관을 향해 달려갔다.


 문 앞에 도착하고 시계를 확인했다. 딱 1분 전.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둥글게 만든 책상에 앉아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양이 걸음으로 빈자리를 확보했다. 앳된 모습의 선생님은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처럼 보였다. 화면 자료에서부터 준비를 많이 해오신 게 느껴졌다. 내가 수업운이 좋구나. 호흡을 가다듬고 슬쩍 앉아있는 사람들을 곁눈질했다.   


 런데, 아주머니다.  


 아랫집 그녀대각선 자리에 앉아있었다. .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기분전환일까, 자료 모으기의 일환일까. 나를 봤을까. 늦게 들어와 주목을 끌었으니 당연히 봤겠다는 생각에 상을 찌푸렸다. 이건 서로가 적은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하는 수업이다. 과연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을까. 수업을 취소하지는 않으려나. 차라리 내가 먼저 취소할까.


 귓가에 윙윙 잡음이 일었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의 반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올라간 박수만큼 껄끄럽고 피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혹시 나를 보고 있나 확인하고 싶었다. 이 망할 호기심이여. 요란한 눈동자가 바닥을 쓸었다. 발목까지 오는 검은색 원피스에 커다란 흰 꽃이 그려진 화려한 옷이 보였다. 둥글게 만 머리가 단정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이 이지적이었다.


 선생님은 우선 필명을 짓기를 권하셨다. 학생들은 공들여 숙제를 마쳤다. 무슨 정신으로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발표시간이 되자 우리는 돌아가며 이름을 공유했다. 드디어 그녀 차례가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녀도 나도 글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건 어떨까 싶었다. 말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필명 아래 흘러나와, 서로를 이해할 작은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루미나리에입니다.


 빛으로 꾸민 축제를 뜻하는 단어를 말하는 그녀의 음성이 낯설. 이런 소리였. 아니, 분명 좀 더 월이 묻어는데.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찬히 시간을 들여 대의 얼굴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아주머니보다 다. 조금 더 생생하고 조금 더 고상하고 조금 더 아름다웠다. 스스로 빛을 내는 그분은 아랫집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긴장이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어떻게 이런 일 있을 수 있을까. 루미나리에님의 옆모습은 정말 아랫집 그녀를 쏙 빼닮있었다. 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 도였. 맥 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녀의 소개가 끝나고 치는 박수에는 힘이 없었다. 행운동전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실망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다.


 재계약 이후 주머니 아직 우리 집에 올라온 이 없다. 이제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 거짓말이다. 여전히 내 수면양말은 밑창이 고, 남편과 아들에게 조심 걷기를 당부한다. 잘못해서 휴대폰이라도 바닥에 떨어뜨리면 압정을 밟은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따끔. 그녀는 언제든 올라올 수 있고 언제든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글쓰기라는 길잡이 통해 내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잃었던 온기를 되찾았다. 만약 그녀가 다시 찾아온다면 꽉 차버린 이 이야기의 2부를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예민함 뒤에 감춰진 사연을 풀어가며 예상치 못한 우정을 쌓아갈지도 모른다.


 언젠가 아랫집에 초대받아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건네받은 머그잔을 감싸고 마주 앉은 우리의 모습을. 그 순간 천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눈이 마주친다. 드디어 우리 집에 대한 의심을 풀고 눈물 어린 사과를 전하는 그녀. 간의 고통과 미안함이 전해져 와, 주머니의 등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내 모습을 함께 그려본다. 그리고는 소음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함께 아파트를 순회하는 거다. 이번에야말로 방향을 제대로 잡고 말이다. 글은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치유계 에세이로 장르를 바꾼다. 제목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윗집에 다정한 이웃이 산다.'로.


 삶은 퇴고하기 전의 글과 같다. 읽어도 읽어도 고칠 이 보인다. 발가벗고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을 피하고 싶은 순간 다. 마주하면 여기저기 튀어나온 군살을 쳐내야 한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글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글에 매몰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다. 고칠수록 나아는 원고처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 그러다 보면 언젠가 스스로의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을 창조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질 만한 그런 문장 말이다.  문장 하나가 어제를 빛나게 하고 오늘을 살게 하며, 내일을 꿈꾸게 할 것이다.     


 간을 만나기 위해 나는 지금도 머리를 짜내타자를 내리친다. 행을 꿈꾸며 꿈속 단어를 남기기도 하고 책 속에서 뛰어난 문장가의 지혜를 빌리기도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주위 모든 것은 살아있는 글감이다. 거무칙칙했던 과거의 순간조차 버릴 수 없는 보물 되었다.


 그러니, 당신도 나와 함께 글을 써 보지 않겠는가. 우리를 스쳐 지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다정한 이웃이 되어보지 않겠는가. 서로가 서로의 글감이 되어 충만한 매일을 꿈꿀 수 있는 삶. 그 아름다운 여정 앞에서 감히 한 발 먼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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