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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by Jiwon Yun

홀린 듯 무언의 목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큐브 세계 안이었다. 익숙했던 세상은 내 예상보다 더 낯설 만큼 고요했다. 하늘은 여전히 내 위에 있었지만 이제는 내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시간을 온몸으로 마주하니 막막해졌다.


바다의 흔적을 찾고 싶어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발밑의 돌들은 부서져 있었고, 모래 위엔 오래전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남아 있는 건 바람에 실려오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정말… 백 년이 지났구나.”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큐브 바깥에서의 잠깐이, 이곳에서는 한 세기였다. 바다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감의 빛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 내가 봤던 그 빛은 분명 바다였음에 틀림없다.


나는 손끝으로 공기를 쓸었다.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바다의 온기가 있었다.


해가 기울고, 별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언덕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빛은 오래된 시간의 조각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유난히 밝은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바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풀잎이 흔들리고, 하늘의 결이 잠시 물결처럼 출렁였다. 마치 세상이 그 이름에 반응하는 듯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바다는 사라진 게 아니라, 흩어져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는 걸. 그가 말했던 흐름의 일부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너는 여전히 여기 있구나.”


그 말이 끝나자, 바람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천천히 불기 시작했다. 별빛이 하늘로 돌아가며 은은하게 흩어졌다. 그 빛의 잔향이 내 눈가에 닿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본다. 이제는 두려움이 없다. 별이 되는 것도, 그 별을 바라보는 것도 결국 같은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돌아감이란, 다시 만나기 위한 다른 이름이었구나.”


그 말을 끝으로, 내 몸이 천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이 한데 섞이며 모든 것이 조용히, 하나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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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