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사실 나도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난 이 세상에 태어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
그의 말이 끝나자 바람이 멎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바다의 표정을 보고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진 죽음이란 빛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주체가 바다라니. 가장 가까운 사람, 내가 사랑한다고 느낀 존재가 돌아간다고 하니 모든 말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었다.
바다의 손을 놓고 숨을 크게 들이켰지만 공기가 사라진 듯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슬픔과 함께 스며 있었다. 나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세상을 이해하던 이유가 그저 오래 살아서였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는 이미 수많은 돌아감을 지켜봤던 것이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내 목소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떨렸다.
“아마 너를 만나기 전부터였을 거야. 시간이 다가오면 몸이 알게 돼. 그건 누구에게나 오는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눈이 내릴 걸 아는 구름처럼, 피할 수 없는 일 앞에서 평온해진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 평온이 나에겐 오히려 잔인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별빛이 스치며 바다의 그림자를 감싸고 있었다. 원망이 스쳤지만,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그의 말과 행동, 때때로 멀리 보는 눈빛 속에 이별의 기운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밀어냈다. 말로 꺼내는 순간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까봐, 그저 오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내 말이 끝나자 바다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늘릴 순 없지만, 마음을 남길 순 있어. 돌아감은 끝이 아니야. 흐름의 일부일 뿐이야.”
그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단단했다. 그 안에는 두려움을 넘어선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점점 수축됐다.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죽음을 순환으로 바라본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직접 잃어보지 않은 자의 용기였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를 향해 의미 없는 말들을 흘렸다.
“죽음이 흐름이라면, 난 그 흐름을 거슬러서라도 너를 잡고 싶어.”
바다는 미소를 지었다.
“흐름을 거스르면 고이던 물도 탁해져. 하지만 기억은 흔적으로 남아.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함께할 수 있어.”
언덕 위를 스치는 바람이 강해졌다. 풀잎이 서로 부딪히며 나 대신 울었다.
바다는 내 옆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나비, 언젠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어도 하늘을 보면 돼. 나는 세상 안에 있을 거야.”
그의 시선이 별빛을 따라 멀리 흘렀다. 그 눈 속엔 내가 닿을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의 빛이 스며 있었다. 나는 그 눈을 오래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손바닥을 꼭 쥐었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사랑이 얼마나 두려운 감정인지 알았다. 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 세상이 흔들린다.
“바다,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 말에 바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냥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줘.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야.”
바다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 손을 잡았다. 여전히 따뜻했다. 그 온기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 수 있을까.
멀리서 별 하나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처음엔 떨어지는 줄 알았지만, 이번엔 아주 느리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