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을 알고 있다는 바다의 말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등지고 힘차게 걷는다. 앞장서는 그의 뒷모습엔 묘한 들뜸이 배어 있다. 하루 종일 내 위에 떠 있던 하늘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바다는 아는 것이 참 많다. 나는 큐브 안에서 본 세상이 전부였는데, 그는 매일 새로운 감각을 나에게 알려준다. 오늘은 또 어떤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언젠가 내가 바다가 모르는 것을 알려줄 수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두려움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바다와 함께라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해가 천천히 몸을 숨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달이 조금씩 제 빛을 되찾기 시작하는 시간.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가팔랐고, 발밑의 흙은 어둡고 축축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오를 수 있었던 건, 바다가 내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이 닿자 세상의 온도가 달라졌다. 공기가 따뜻해지고, 풀잎에 맺힌 이슬의 냄새가 처음으로 느껴졌다. 그의 손에 이끌려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별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듯했다.
“다 왔어. 여기가 내가 말한 언덕이야.”
“와…”
압도된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별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다가왔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그 낯선 감각을 느꼈다. 이곳의 공기에는 바다의 온기와 하늘의 숨결이 섞여 있었다. 모든 빛이 나를 향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다가 내 표정을 읽은 듯, 부드럽게 웃었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곳이야.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어.”
“고마워… 황홀하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바다는 안도하듯 미소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공기가 우리 사이에 흘렀다. 그 순간, 바다의 눈동자에 별빛이 담겼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보다 그의 눈 안의 별이 더 선명했다. 그 안에는 분명 내가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또렷하게 느껴져서 내 안의 감정이 서서히 차올랐다. 이제야 함께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감정을 어떻게 말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지금 꼭 전하고 싶어.’
별빛이 내 어깨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는 입술을 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더는 침묵 속에 머무를 수 없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바다, 너와 있으면 세상이 덜 낯설게 느껴져.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너에게 주고 싶고,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내가 알아차리고 싶어.”
바다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같은 마음이야. 그걸로 충분해. 사랑이 꼭 더 크거나 밝을 필요는 없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전하고자 했던 감정이 제대로 닿았음을 알았다. 그건 분명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완벽하게 정의되지 않아도, 이렇게 전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별이 사방에서 빛났다. 우리의 그림자가 달빛에 닿기를 바란다. 금세 사라지더라도 그 찰나의 흔적이 오래 남길 바라며. 세상 모든 것이 우리를 중심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바다의 손이 다시 내 손을 감싼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들은 서로를 향해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별똥별 하나가 떨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늘로 직선을 그으며 올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