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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의 만남

by Jiwon Yun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하는 순간, 정말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나비, 참 예쁘다.”


순간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내 이름을 부른 줄 알았는데, 그가 바라본 건 방금 허공으로 날아간 파란 나비였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줄 알았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하자, 그는 잠시 놀란 듯 나를 바라보다 부드럽게 대답했다.


“네 이름이 나비구나. 정말 예쁜 이름이야.”


그 말이 어쩐지 마음 깊이 내려앉는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불러준 내 이름. 그 단어 하나가 이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큐브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고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지만, 너무 오래 침묵하면 그 온기가 사그라들 것 같아 서둘러 물었다.


“넌 누구야?”


“내 이름은 바다야.”


“바다? 거긴 어디에 있어?”


“공용공간을 등지고 조금만 걸어가면 보여. 같이 가볼래?”


“응… 궁금해.”


그의 말에 이끌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처럼 ‘바다’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넓고 깊을 것 같았다. 나에게 나비가 특별한 의미였듯, 바다에게도 그의 이름에는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학교와 마트를 지나 좁은 길을 따라가자, 저 멀리 하늘보다 더 깊은 색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것이 ‘바다’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 세상은 점점 확장되고 있었다.


“우와… 너무 멋져.”


바람이 세차게 불어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푸른 수평선이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공간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나비를 만나기 전에 바다를 봤더라면, 내 이름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참 멋지지? 바다는 나를 항상 편안하게 해줘.”


그가 말하는 목소리는 파도 소리와 닮아 있었다. 차분하고, 깊고, 조금은 쓸쓸했다. 그의 시선이 바다를 향할 때마다 눈동자 속에도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다. 바다는 분명 바다를 닮아있었다.


“넌 언제 처음 바다를 봤어?”


“기억이 잘 안 나. 다만… 그때도 지금처럼 마음이 가라앉았어. 두렵지 않고,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느낌이었달까.”


그의 말이 내 안에서 가라앉는다. 나는 나비에게서 날고 싶은 마음을 배웠다면, 바다에게서는 머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두 손을 모아 허공의 바람을 잡는 시늉을 한다. 공기의 온도, 바다의 냄새, 부서지는 햇살까지. 이 모든 게 낯설지 않다.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온 듯한 기분이 든다.


파도가 발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물결이 멀어질 때마다 마음속의 경계도 함께 풀려나간다. 나는 여전히 작고 미숙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부드럽게 나를 품어준다.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나의 날개도, 이 끝없는 물결처럼 멀리까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바람이 불어와 바다의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린다. 그 순간, 파란 물결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였다. 바다의 눈 속에는 수많은 별빛이 잠들어 있었고, 나는 그 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바다의 이름이 파도처럼 내 안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나는, 세상이 조금 더 깊어졌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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