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
내가 드니 빌뇌브를 처음 접하게 된 작품이 <컨택트>이다. 이 작품을 예고편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엄청 기대했다. 원래 미스터리와 외계인과 같은 특이한 주제를 좋아하는데 예고편을 경험하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영화 예고편만을 보았을 때는 액션이 강한 비중을 차지하는 그런 작품일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전개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드니 빌뇌브의 정점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웅장하지만 조용하게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작품이 끝날 때쯤 온전히 관객들의 마음 속에 피어오르게 만든다. 함께 보았던 친구는 결말을 너무 평이하게 보여주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이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연출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무척 기쁜 순간을 맞이할 때 온전히 기뻐한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 순간이 조금 지나면 알게 된다. 그러므로 드니 빌뇌브의 폭발적이지만 잔잔한 연출, 후속작들에서 보여주는 긴박한 장면들을 지루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더욱 가깝게 느껴져 그의 진정한 팬이 되었다.
작품의 시작은 주인공 루이스 뱅크스 박사가 자신의 딸 한나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한나는 성장하기 전,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죽고 엄마인 루이스는 슬픔에 빠지면서 현재로 넘어오게 된다. 이런 아픈 과거 때문에 많이 차분해진 상태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정 반대이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외계인 '헵타포드'의 입체적인 언어를 인식하게 되는 존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언어학자로서 순수하게 다른 우주에서 온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던 루이스는 그들이 전달하러 왔던 진정한 무기인 그들의 언어를 얻게 된다. 그렇게 처음 헵타포드의 언어를 알게 된 순간부터 보이던 알 수 없는 기억과 그것으로 만들어진 꿈들이 사실은 자신이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무척 인상적으로 화면에 전개된다. 헵타포드인들은 루이스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자신들의 언어를 전달한 후 떠난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에 함께 활동했던 이안과 만나게 되었을 때, 처음 꾸었던 꿈에 나왔던 자신의 미래의 딸인 '한나'의 아빠가 지금까지 함께 한 이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미래를 알게 된 루이스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이안과 함께 사랑에 빠지고 결국은 한나를 낳고, 한나의 죽음까지 경험할 것을 미리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갈 결심을 한다.
'우리는 과연 루이스와 같은 순간이 되었을 때 나의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이안과 한나를 사랑하지만, 결국 한나의 죽음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과연 그녀를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 수 있을까?'
영화 <컨택트>의 연출이 보여준 것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면, 탄생하게 될 미래의 딸인 한나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온전히 가지(고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아픔을 얻고 결국 죽을 것을 알고 있더라도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의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결국 한나를 낳게 될 것이다. 한나가 죽게 될 것을 알지만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나가 더욱 소중함을 알고, 그녀와 함께 보내는 모든 시간을 더욱 존중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내가 전달 받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션 교수가 윌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아주 가깝게 이어진다.
"교수님은 아내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삶을 선택하셨을까요?"
션은 말한다.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어서 평생 아프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아픔이 바로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가치 있는 기억이지. 그리고 그 아픔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지나쳤던 사소한 행복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
미래를 알기 때문에 한나를 태어나지 않게 함으로써 아픔과 통증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 그녀를 불러와 엄마와 아빠를 평생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하고, 한나 자체도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알고 있더라도 절대 그것과 다른 미래를 걸을 수는 없는 이유는 엄청난 슬픔과 아픔을 통해야만 느낄 수 있는 깊은 깨달음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통찰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지금은 힘들게 글을 쓰고, 음악 작업을 하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만 하찮을 지도 모를 우리의 작품이, 그 결과물이 세상이라는 공적인 장소에 나왔을 때 누군가 우리의 작품을 통해 힘을 얻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길을 걷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지금 여기에서 이미 경험하는 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