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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Oct 14. 2024

소고기 장조림


  프루스트 현상이란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기억이 되살아나는 일을 말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로 어린 시절을 회상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내가 읽은 소설에는 ‘맛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우리가 느끼는 미각의 80% 정도가 후각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넘어가자.


  과학자들은 과거의 어떤 사건과 관계된 기억들이 뇌의 지각중추에 흩어져 있고, 감각 신호 가운데 어느 하나만 건드리면 기억과 관련된 감각 신호들이 일제히 호응해 전체 기억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냄새를 통한 기억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장기기억(長期記憶)에 속하며,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하여 가장 첫 번째로 느낀 냄새가 뇌에 각인되면 나중에 그 냄새를 맡았을 때 그 대상에 대한 느낌이나 그 상황에서 느낀 감정 등을 선명하게 기억해 낼 수 있고, 혹은 냄새를 통해서 기억나지 않았던 추억을 되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방대한 분량에 문장이 무척 길고 난해한 소설이라서 쉽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아직도 통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행복했던 과거를 박제하고 싶어서일까, 꼭 끝까지 읽어보고 싶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엄마 덕분이었다. 친정집에 놀러 갔다가 막 배송된, 표지가 예쁜 책에 눈이 가 내가 먼저 읽겠다며 가져온 지가 벌써 1년이 넘었다. 여하튼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에게도 냄새 또는 향기를 매개로 되살아난 추억들이 있다.


  소금보다는 간장 맛을 좋아하는 나는 메추리알 장조림, 가오리찜, 갈비찜, 간장게장, 장아찌 같은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입맛이 없거나 간단하게 혼자 차려 먹는 날, 간장 계란밥에 잘 익은 김치 한 조각 올려 먹으면 영양도 챙기고 식욕도 되찾게 된다. 여름에는 제철인 풋고추, 청양고추로 짭조름한 멸치 고추 다짐을 만들기도 한다. 밥이나 잔치국수에 얹어 비벼 먹으면 화끈한 매운맛에 집 나갔던 입맛이 돌아오고, 땀이 나면서 더위도 달아난다. 그저 나란 사람이 원래 간장을 좋아하겠거니 생각했다.


  귀촌해서 생뚱맞게 프랜차이즈 죽 전문점을 내게 된 건 음식 장사 경험은 없지만 평소 죽을 좋아했고, 고령 사회다 보니 수요가 많을 것이고, 재료 수급이나 요리 방법이 쉬울 것 같아서였다. 요리 고수님들에게야 너무나 쉬운 일이었겠지만, 나는 매일 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울어야 했다. 흔히들 생각하듯 그냥 포장만 툭 뜯어 넣고 끓여 내는 게 아니었다. 매일 두 가지 밥을 짓고, 대여섯 가지 기본 채소를 씻어 다지고, 동치미를 담고, 김치를 썰고, 젓갈을 버무려야 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죽을 끓이다 재료가 튀어서 화상도 잦았다.


  그나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장조림 찢기’였다. 손톱이 빠질 것처럼 아팠지만 가게 안을 가득 채운 간장 끓이는 냄새를 맡으며 고기를 건져 찢으면서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사랑받았던 기억과 함께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입이 짧은 아이였다. 오죽하면 부모님께서 나를 먹이려고 어르거나 간지럼을 태워서 까르르 웃을 때 음식을 입에 넣어주셨다고 한다. 고기 편식도 심해서 돼지고기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고, 우연히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1963)를 보고 ‘새 공포증’이 생긴 후로는 닭고기도 먹지 않았다. 생선회도 성인이 되어서야 처음 먹어보았다. 그런 나에게 단백질을 보충해 주던 엄마의 처방이 소고기 장조림이었다.


  간장이 끓는 동안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여동생과 마주보며 마룻바닥의 서늘함을 느낀다. 작은 밥상을 차려 내오는 엄마도 만난다. 나와 여동생의 숟가락 위에 장조림 한 번, 씻은 김치 한 번을 번갈아 올려주며 흐뭇해하던 젊은 엄마. 물에 말아 식힌 밥, 소고기 장조림의 쫄깃한 식감, 약간 매운 듯한 김치의 개운함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시절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가곡을 좋아하던, 마른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먼지 하나 없을 때까지 쓸고 닦던, 남편과 아이들밖에 몰랐던 엄마를 기억해 낸다. ‘어두운 데서 책 보지 마라.’, ‘우스꽝스럽게 가곡 흉내 내지 마라.’, ‘청소할 동안 나가 놀아라.’ 하시던 잔소리 많은 엄마와 집에 들어갈 때면 팔을 벌리게 하고 먼지떨이로 옷을 털만큼 청결 결벽증이 있던 엄마도 보인다.


  행복감과 그리움에 흠뻑 빠져 나도 모르게 미소 짓다가 내가 결코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상념. 내가 얼마나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는지, 세월이 가고 당신들이 쇠약해지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고 계실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전주에 병원을 개업하신 부모님은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쉴 새 없이 일하셨고, 야간에 응급 환자도 많았다. 엄마는 의료보험 청구 일로 집에서도 일하셨다. 건물주에게 되레 빚을 내어 병원을 임대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건물을 살 정도였으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늠이 된다. 1층에 진료실과 수술실, 검사실이 있었고 2층이 입원실, 3층이 집이었다. 병원을 통과해야만 집으로 갈 수 있기도 했고 건물 전체에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어서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병원 냄새 난다며 놀리기도 했다.


  익숙하면서도 싫은, 차가운 냄새. 하지만 그 냄새는 젊은 부모님을 불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흰 가운이나 수술복을 입은 아빠, 환자들에게 상냥한 엄마, 내가 “다녀왔습니다.”하고 웃으면 피곤이 다 풀린다시던 아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엄마, 우울한 엄마의 흔들의자, 그리고 사춘기 소녀였던 나의 불효까지도…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그 시절의 부모님을 안아주고 싶은데, 엄마는 그때 자식들을 잘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아직도 미안해하신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부모님은 바쁜 와중에도 주말이면 시간을 내어 우리와 함께하셨고, 늘 지나치리만큼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 내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방식조차 처음 부모님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나님이 내게 좋은 부모님을 주셨고, 부모의 사랑이 이처럼 크니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더 클까’하는 식이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몸으로도 여전히 자식 걱정뿐인 나의 부모님, 그분들이 원하는 건 나의 행복뿐이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행복해야지. 밝고 씩씩하게, 착하고 슬기롭게,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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