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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욱 Nov 14. 2024

주관적 죽음과 나의 사랑

장년에는 정말 많은 죽음을 마주했습니다. 직장 동료와 가족들의 죽음,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우리 아빠의 죽음.

처음에는 정말 헤어나오기 힘들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시인이셨습니다. 고향을 노래하는 향토 시인. 아버지는 평생 공부하던 고향을 떠나셨고, 그 이후 무척이나 외로워하셨습니다. 저의 출근과 퇴근 시간에 맞춰 항상 전화를 주셨는데, 그 반복되는 전화가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날, 모든 것이 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중이던 저에게 누나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큰 조카가 크게 울며 "할아버지 죽었어, 삼촌"이라고 말하는 소리에 양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습니다.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누나 집으로 가야 했지만, 통장에는 누나 집에 갈 택시비조차 없는 상태였죠.

같이 일하던 매니저 형에게 10만 원을 빌려 택시를 타고 누나 집에 도착했습니다. 누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얼굴을 만졌습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준비도 안 된 저에게 경찰은 사인과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장례와 현실

장례를 치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장례 비용을 청구하고, 장례 지도사는 누구에게 얼마를 줘야 한다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돈과 물질로만 이루어진 것 같아 참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깨달음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그 슬픔에서 조금은 벗어난 기분이 듭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면, 결국 나도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음을 느낍니다. 삶이 얼마나 유한한지, 젊음이 얼마나 짧은지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이유

친구들과 사람들은 "아버지의 피가 있어서 네가 글을 잘 쓰나 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틀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책도 학창 시절을 포함해 37살까지는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재능도 없었고, 배워본 적도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단 하나, 아버지는 돌아가시던 그날까지도 글을 쓰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가왔을 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죽음 앞에서 "참 잘 살았다.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다. 후회 없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오늘도 나는 글을 씁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의 이야기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아버지는 조금 어색하네요 항상 아빠라고 해서 아빠는 30대 후반의 저를 애기라고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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