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회의실, 두 개의 흐름
"오늘 입주자대표회의 안건은 재건축 추진 지원이래요."
강소장이 조용히 말했다.
"홍위원장님, 오늘은 반드시 가보셔야 합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거죠?"
홍위원장이 웃었다.
"네. 노인회 쪽에서 대거 참석한다고 하네요.
반대 목소리를 키우겠다는 걸까요."
홍위원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봅시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직접 들어야죠."
오후 2시. ○○아파트 관리동 1층 입주자대표회의실.
문을 열자 쾌쾌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낡은 테이블 위엔 커피 자국이 퍼져 있었고,
형광등은 깜빡거리며 공기 중에 묘한 긴장감을 흘렸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동대표 15명, 관리사무소 직원들, 그리고…
회색 조끼를 입은 노인단체 회원 10여 명이
회의실 뒤편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재건축 반대’
‘평생 살아온 우리 집을 지켜주세요’
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그 사이, 눈에 띄는 한 명이 있었다.
30대 초반쯤 되는 젊은 여성.
베이지색 패딩을 입고 낯선 듯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한 손엔 자료 파일을 들고, 다른 손으론 핸드폰을 꼭 쥔 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 엘리베이터 고장 문제를 직접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이사 온 지 한 달. 벌써 두 번이나 엘리베이터에 갇힐 뻔했다.
"이런 건 직접 얘기해야 고쳐지지."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불붙는 반대 – 노인회의 움직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관리사무소장이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오늘 안건은 ○○아파트 재건축 추진 지원에 대한 입주자대표회의 공식 입장 표명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인회장 김영수가 벌떡 일어섰다.
"우리는 반대합니다."
그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재건축?
좋다 이거야.
그런데 나가서 어디 살라고?
우리같이 연금 받아 겨우 사는 사람들은
월세도 못 내요!"
노인단체 회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맞아요!"
"떠나라고 하는 거야!"
소리쳤다.
회의실이 술렁였다.
몇몇 동대표들은 눈을 내리깔았고,
서류를 허둥지둥 넘기는 소리가 울렸다.
부녀회장 김이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껏 억제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저희 부녀회 입장도 같습니다.
재건축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지금 사는 게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히 어르신들에게 큰 불편을 강요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노련한 톤.
회의장은 부드럽지만 단단한 압박으로 조여왔다.
귀도 닫히고, 책임도 닫힌 김종인 회장
그때 입주자대표회장 김종인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90세.
작은 체구에 지팡이를 짚고.
"나는…"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고…
뭐가 뭔지도 모르겠소.
그냥 소장이 알아서 하슈."
회의장은 얼어붙었다.
홍위원장은 손끝이 저릿했다.
조대표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아파트의 미래를 맡긴다고?'
관리사무소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회의를 정리했다.
"회장님의 뜻은 소장 위임으로… 기록하겠습니다."
그의 시선은 슬쩍 부녀회장 김이심을 향했다.
김이심은 작게 끄덕이며 신호를 보냈다.
조대표의 분노 폭발
결국 조대표가 참지 못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
"회장님!"
모두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은 입주민을 대표하는 자리입니다.
'모르겠다', '맡긴다'는 말로
이 중대한 문제를 덮을 수 없습니다!"
조대표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단호했다.
"지금 이 아파트,
전기 설비는 노후됐고,
상하수도관은 터질 위험에,
엘리베이터는 고장나고 있습니다!"
그 순간. 구석에 앉아 있던 30대 초반 여성 입주민이
작게 손을 들었다.
"저… 말씀 좀 드려도 될까요?"
회의장 안의 시선이 모두 그녀를 향했다.
1부 : 재건축추진위원장편(홍위원장편) end
다음화... 2부 : 젊은 여성 동대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