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재건축추진위원장(홍위원장편)

8화. 두 개의 무대

by 건축학도고니

"우리가 설계사한테 PT 받으면서
커피잔 비켜가며 회의해야 해요?"

강소장이 말했다.

이디야 커피숍 창가 자리, 매일처럼 회의가 이어지던 날이었다.

그날은 유독 햇살이 눈부셨고,
자리에 앉은 홍위원장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 공간도 좋죠. 익숙하고 편해요.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고르고 이어갔다.



"우리가 주민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명확한 상징이 필요해요.
우리만의 자리, 사무실입니다.
이젠 우리가 중심이 되어야죠."


송사장이 턱을 괴며 말했다.
"지금이요?
지금 시작하면, 반대쪽에서 뭐라고 할 텐데요.
‘지들끼리 사무실 차려놨다’, ‘돈이 어디서 났냐’…그 말 나올 거 뻔하잖아요."



조대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이대로는 주민들에게 설득이 안 돼요. 우리가 진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며칠 뒤, 단지 상가 6층의 비어 있던 20평 공간을 계약했다.
낡은 전등과 바랜 벽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단지 풍경은 어쩐지 든든해 보였다.



홍위원장은 손수 커튼을 달았다.
강소장은 책상 위에 커피포트를 올렸고,
조대표는 작은 접이식 의자들을 옮겼다.

현관 옆에는 조그마한 현판이 걸렸다.




○○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사무실


"이제 여긴 우리 기지야."
송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우리도 진짜 ‘있는 조직’ 같아졌네요."

홍위원장은 사무실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벽 한 켠엔 큰 화이트보드가 붙어 있었고,
거기엔 첫 문장이 적혀 있었다.



‘주민들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사 PT – 추진위 사무실에서 열린 첫 회의


사무실이 열리고, 가장 먼저 시작된 건 설계사 PT였다.

이전엔 동대표 몇 명을 만나던 수준이었다면,
이젠 본격적으로 입주민 대상의 오픈 PT를 사무실에서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설계사 팀장은 대형 도면지 두 장을 펴며 말했다.
"이 단지는 구조상, 남향 배치보다도 통풍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건물 간격을 넓히기보다 중정형을 통해 자연 순환을 유도했습니다."


강소장이 입주민 두 명에게 자리를 권하며 속삭였다.
"한 시간 정도 걸려요. 질문은 중간에 하셔도 됩니다.


"입주민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평면도에서 거실 창이 북향인데… 이거 겨울에 춥지 않나요?"


설계사 팀장은 바로 노트북을 돌려줬다.
"보시는 것처럼 3중 단열 시스템으로 보완됩니다. 그리고 난방구역이 중앙분산형이라 에너지 효율도 더 높고요."


그 말을 듣던 홍위원장은 한참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남겼다.

‘단열·에너지 → 주민 설명시 강조 필요’




두 번째 설계사 팀은 모형 대신 3D 영상 시뮬레이션을 가져왔다. 벽에 빔이 켜지고, 조감도 위로 햇살이 퍼지며 입주민 동선이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였다.

“이곳이 3년 후, 여러분의 일상이 됩니다.”

마치 드라마처럼 조용히 흐르는 말. 그리고 고요한 침묵.

입주민들은 말없이, 그러나 확실히 매료되어갔다.


조대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그림이 아니라
희망이야."















꽃과 화환 – 사무실 문 앞에 쏟아진 축하 인사들



그다음 날 아침.
출근하던 강소장은 사무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뭐야 이거…? 다… 우리한테 온 거예요?"

사무실 입구에 도열하듯 놓인 화환 열두 개.
하나같이 건설사에서 보낸 축하 인사였다.



“GSS건설 – 투명한 재건축, 함께 하겠습니다.”

“현다이건설 – 입주민과 함께하는 내일을 응원합니다.”

“삼승물산 – 단지의 미래를 설계합니다.”

“포스크건설 – 추진위 개소 축하드립니다.”


화환 사이로 주민 몇 명이 지나가며 사진을 찍었다.
"우와… 이런 것도 받네요?"
"이거, 주민돈으로 한 건 아니죠?"

송사장이 다가와 한 화환의 리본을 가볍게 매만졌다.
"이건… 격려가 아니라 공개적 입장 표명이에요."
"이제부터 우리도 감시 대상입니다."



홍위원장은 사무실 안에서 가만히 앉아 그 화환들을 바라봤다.

“우릴 향한 메시지예요.
‘우릴 잊지 마라.’
‘우릴 선택해라.’
‘우린 여기 있다.’”



조대표가 옆에서 말했다.
"좋은 일 같지만…한순간에 공격당할 빌미가 될 수도 있어요."

강소장은 벽에 붙은 현판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꽃은 웃고 있지만, 그 향기 속엔 긴장감이 묻어 있어요.”












반격 – 단지 안을 뒤덮은 빨간 현수막



바람이 불던 오후, 단지 정문에 첫 번째 현수막이 걸렸다.




“조합도 없이 단독 사무실? 입주민 기만 중단하라!”


놀이터 펜스 위엔

“단지의 이름으로 무단 추진? 부녀회·노인회는 반대한다!”


상가 옆 담벼락에는

“삶의 터전을 지켜주세요 – 재건축 반대합니다.”


현수막의 디자인은 단순했지만
색감은 강했고, 메시지는 단호했다.



입주민들은 하나둘 사진을 찍었고, 카카오톡방엔 금세 사진과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이홈소망 : 방금 정문 지나오는데 현수막 세 개 붙었어요… 부녀회·노인회 공동입장이라네요.

라온832 : 와… 이건 선 넘은 거 아니에요? 누가 사무실 열었다고 테러하듯 현수막을…

추진위_홍위원장 : 사무실은 정보공개와 설명회의 공간입니다.


모든 비용은 정비업체 대여금과 회계공개 대상이며, 현수막 관련 대응은 공식 입장을 곧 공지하겠습니다.

하지만, 홍위원장은 조용히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날카롭네요.”

그는 사무실 창문을 조용히 열었다.



붉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며 햇빛을 뚫고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경고다..... 그리고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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