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의 산책』을 펼치면 문장은 먼저 걷기 시작하고, 나는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숨을 고르게 된다. 이 책에서 산책은 어딘가로 향하는 이동이 아니라, 생각이 제 무게를 회복하도록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며, 말보다 앞서 도착한 감각들이 길가에 조용히 놓여 있는 풍경이다. 안리타의 문장은 늘 한 박자 늦게 온다. 그러나 그 늦음은 지연이 아니라 배려에 가깝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반드시 여백이 있고,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자기 하루의 속도를 내려놓고, 자기 보폭이 어디쯤이었는지를 가만히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독서라기보다,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비켜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산책에 가깝다.
리타는 걷는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걷는지는 끝내 중요해지지 않는다. 대신 발아래의 빛, 바람이 스치는 방향, 이름 붙이기 전에 사라지는 감정의 결들이 문장 사이에 남는다. 안리타는 세계를 요약하지 않고, 삶을 해석하지 않으며, 다만 충분히 바라본다. 그 충분함은 더 많은 말을 보태는 데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아끼는 태도, 감각이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에서 비롯된다. 이 책이 조용한 이유는, 삶을 낮은 목소리로 대하려는 확신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리타의 산책』에는 사건이 거의 없다. 대신 사소한 순간들이 있다. 걷다 말고 고개를 드는 순간의 햇빛, 창가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그림자, 생각이 생각을 부르기 직전의 짧은 공백. 안리타는 그 공백을 성급히 채우지 않는다. 그녀의 문장은 언제나 한 걸음 뒤에서 독자를 기다리며, 독자의 기억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둔다. 그래서 읽는 동안 나는 자주 내 삶의 장면들과 마주친다. 잊고 지냈던 감각들이 문장에 반응하듯, 조용히 되살아난다.
이 산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삶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삶의 결을 다시 느끼게 한다. 안리타의 글은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득하고, 강조하지 않는 태도로 오래 남는다. 그녀는 삶을 정리하거나 결론짓기보다, 삶이 스스로 말을 걸어올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 있다. 그 거리 덕분에 독자는 조급해지지 않고, 지금의 상태 역시 하나의 유효한 시간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산책이란 결국 자기 자신과의 거리 조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멀어지지도, 너무 밀착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를 나로 유지하는 방법. 리타의 걸음은 바로 그 균형 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 산책은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일상을 다시 감각하는 방식이 된다. 걷는 동안 리타는 삶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삶이 스스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옆에 서 있을 뿐이다.
책을 덮고 나면 산책은 끝난 듯 보이지만, 걸음의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호흡은 조금 느려지고, 판단은 쉽게 앞서지 않으며, 혼자 있는 시간은 더 이상 비어 보이지 않는다. 『리타의 산책』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더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지만 잊고 지냈던 감각과 시간을 조용히 되돌려준다. 그리고 어느 날 특별한 이유 없이 문득 밖으로 나서게 되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산책은 책 속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발밑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