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하나의 가정이 완성되는 과정

by 은나무


둘째재민이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했다.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며 달라지는 모습은 수연에게 날마다 감동과 기쁨을 주었다.



남편 진우도 한편으로 현수를 좀 더 신경 쓰고 챙기면서도 어린 재민이가 아장아장 아빠를 찾을 땐 더없이 행복해했다.

셋이서 행복하게 살면 되지 둘 사이 아이가 뭐 그리 필요하냐고 반대하셨던 시어머니 또한 어린 재민이 재롱이 보고 싶어 날마다 궁금해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에 놓아두었던 둘째 물병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수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둘째를 안고 병을 주우려는데
현수가 TV 앞에 앉아 있었다.

“현수야 이거 누가 굴렸어?”
“몰라.”
하지만 현수의 발끝이 살짝 움찔하는 걸 수연은 놓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둘째 재민을 재우고 나서 나와보니 현수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수연이 다가가 보니, 그림 속엔 엄마와 현수 아빠 그리고 커다란 X 표시가 그려진 동생이 있었다.
수연은 현수가 귀여워 웃으려다 웃지 못했다.
“현수야, 이건 뭐야?”
“그냥 장난이야.”
하지만 목소리엔 장난기보다 씁쓸한 진심이 묻어 있었다.



어느 주말, 시댁에서였다.
시어머니가 반찬을 챙겨주며 말했다.
“현수는 학교도 다니고, 재민이 까지 챙기느라 힘들겠다.
너도 좀만 내려놓고 쉬엄쉬엄 해라. 그런데 현수가 한창 학교에 적응해야 할 텐데 재민이 보다 더 신경 써줘야 하는 거 아니니?”
수연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어머니 저도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재민이가 울어 수연이 일어나려 하는데 현수가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 나 물.”
시어머니는 곧장 말했다.
“재민이는 좀 놔두고 현수 먼저 챙겨 줘라.
애기도 중요하지만 첫째는 더 서운한 법이야.”
그 말은 사실 틀린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수연에겐 은근한 압박처럼 들렸다.
마치 ‘너는 네가 낳은 새끼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현수는 니자식이 아니라고 겉돌게 하지 마라’라는 말처럼 들리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밤.

수연은 아기를 재운 후 현수 방으로 가서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었다. 현수는 잠든 척하며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마치 ‘엄마가 나한테 와줬다’는 안도감과
‘이렇게 하면 엄마가 나를 더 본다’는 계산이
섞인 표정이었다.


수연은 그 표정을 보며 가슴이 묘하게 저릿해졌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까지 아이를 바꿀 수 있구나.
그 생각이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며칠 뒤 저녁 준비 시간.

아기는 울고, 주방에선 찌개가 넘치고 있었다.

현수는 부엌 입구에 서서 말했다.

"엄마, 나 숙제 못 하겠어 재민이가 자꾸 울어서 집중이 안 돼." 수연은 손목에 묻은 된장을 씻으며 아기를 안아 달래고 찌개 불을 줄이고, 현수에게 가려고 했지만 아기는 더 세게 울어댔다.



그 순간 현수가 발로 방문을 '쿵' 하고 찼다.

"엄마는 맨날 동생만 봐!" 그 말은 칼날처럼 수연의 가슴에 꽂혔다. 수연은 한쪽 팔로 아기를 안고 다른 손으로 현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무언가가 안쪽에서 천천히 금이 가듯 수연의 마음 한편이 깨져나갔다.



그 주 주말, 시댁.

식탁 위엔 여전히 현수 편을 드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첫째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둘째는 그냥 크는 거야.

현수야, 네가 참아야 한다는 말은 할머니가 안 할게

누구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어머니는 웃으며 반찬을 현수 앞에 올려놨다.

현수는 눈을 반짝이며 받아먹었다.

수연은 조용히 국을 뜨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수연에게 향했다.



수연이 말했다.

"어머니, 현수가 힘든 거 알아요. 저도 매일 보면서 마음이 아파요. 그렇지만, 저도 ~. 저도 하루 종일 두 아이랑 싸우듯 살아요. 현수 챙기랴, 재민이 보라, 밥 하라, 빨래하랴... 솔직히 제 몸하나 추스르기도 벅차요."

시어머니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수연은 처음으로 눈을 피하지 않았다. "현수는 저한테도 아들이고 재민이한테도 형이에요. 둘 다 똑같이 사랑받아야 하고 둘 다 똑같이 책임을 배워야 해요. 그걸 제가 가르치려면...

어머니께서도 조금은 저를 믿어주셔야 해요."

순간 잠시 고요해졌다. 수연은 심장이 요동쳤지만 목소리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그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연 진우 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수연은 온전히 어머니께 이해받은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발 앞으로 더 나아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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