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안 마시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22. 술취한 사람들과의 감정의 진폭이 다르다

by TORQUE

- 회식 전 -


"나 술 끊었어."

이미 단톡방에 말은 해두었지만, 술꾼들이 날 그냥 놔둘 리 없다. 어떻게든 술을 먹이려 할 거다. 하지만 난 그러한 공격을 막아낼 비책이 있다.

"헌혈 예약했거든."

피를 뽑아내는 선행 앞에서 그들의 알코올 압박은 무력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눈앞에서 익어가는 차돌삼합과 그 옆에 다소곳이 자리한 초록빛 소주로 나의 금주 의지 또한 무력해질 수 있다.


밥을 먹고 갈까? 아냐. 그냥 안주발로 달리는 게 낫겠지? 근데 살면서 안주만 먹은 적이 없잖아? 그냥 가지 말까? 차돌삼합은 먹고 싶은데... 밥만 먹고 일찍 나올까? 2차 갈 때 슬쩍 빠지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에이씨 그냥 가지 말까?



- 회식 중 -


"술은 왜 끊은 거야? 어디 안 좋아?"

반평생 술에 절어 살았으니 이상할 만도 할 거다. 그래서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동안 너무 많이 마신 거 같아서 쉬어가는 거지.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잖아."

다행히 다들 수긍하는 눈치다. 나 때문에 모처럼만의 모임 분위기를 망치지는 않을까 싶어 사이다로 건배한다.

몇 가지 신기한 경험을 한다. 첫 번째는 술 없이도 재미있다. 말소리가 잘 들리고 그에 따른 호응도 잘한다. 그리고 과식하지 않는다. 술은 한 잔 할 때마다 안주를 먹는데, 술을 안 마시니 배가 어느 정도 차면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다만 술을 참는 건 우려했던 것만큼 어렵다. 그 맛을 아니 더 힘들다. 차돌박이의 고소함, 키조개 관자의 쫄깃함, 묵은지의 상큼함은 천상의 조합이 확실하다. 그리고 여기에 소주가 입안으로 살포시 흐르면 몸과 마음이 사르르르르르르르 녹아내릴 게 분명하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따깍하다가 분위기에 취해 술을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헌혈을 해야 하는 소중하고 신성한(?) 몸뚱이라는 걸 계속 되뇌어야 한다.



- 회식 후 -


금요일 밤 유흥가, 세파에 시달리는 중생 모두가 취해 있고 취하러 가는 중이다. 이 거리에 어쩌면 나만 혈중 에 알코올이 없을 것이다. 발걸음이 가볍다. 몸에서 술냄새도 안 나고 담배 냄새도 없다. 지극히 순수하고 순결한 신체와 정신이다.

'아~ 술을 안 마신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술을 참아낸 나 자신이 대견하지만, 무언가 찜찜하기도 하다.

'술을 마셨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나 때문에 2차 안 간 거겠지? 아냐 나만 빼고 가는 건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만, 한 편으로는 무언가 외롭고 쓸쓸한 기분도 든다. 나만 취하지 않았으니 감정의 진폭이 그들과는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금주 22일 차


노력

그 어느 때보다 술을 참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더불어 담배도 같이 참았다. 나의 인내심이 이리도 강인할 줄은 몰랐다. 끊고 맺음이 정확하고 사리분별이 명확한 사람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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