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너 크면 다 돌려줄게, 엄마한테 맡겨 놔’
우리, 숫자 말고 조금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해 봅시다. 돈.. 돈이 뭐죠? 우리는 무엇을 ‘돈’이라고 부르나요? 우리는 돈을 어떠한 절대적인 가치나 존재로 인식하지 않나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액면에 적혀있는 숫자가 그런 이미지를 주는 것일까요? 만원, 오만 원.. 그에 걸맞은 가치가 있고.. 아니, 애초에 왜 오만 원 만원이죠? 1원은 안 되나요? 7 감자는요? 12 귤은 어떤가요? 절대 안 되나요? 어린이가 왜 종이쪼가리로 해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답하실 건가요? 아니 요즘은 종이 쪼가리도 아니죠, 카드의 시대도 거의 저물었고요. 저희 딸은 ‘삑-’이라고 해요. 큐알이나 삼성페이, 애플페이로 결제할 때 ‘삑-’ 하거든요.
아마, 선진국을 제외한 나라를 여행하시는 많은 분들이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저도 이번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다녀왔습니다. 가서 단 한 번도 ATM을 이용하지 않았고, 싱가포르에서는 현금으로 지불한 게 그랩 드라이버에게 카시트 비용 2$를 지불한 게 전부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저도 가기 전에 트레블 월렛이니, 뭐니 잔뜩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필요가 없더라고요. 한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핀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니까요? 싱가포르야 선진국이니 그렇다고 치고.. 말레이시아는 왜 그렇죠? 한국보다 훨씬 못 사는데?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들에서 먼저 핀테크가 성행하고 현금이 사라지고..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도 동전 안 쓴 지 꽤 오래되지 않았나요? 버스 지하철 택시 우리 모두 ‘삑-’으로 해결하잖아요.
어쨌든 우리 모두 느끼는 바는 비슷합니다. 현금은 사라지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조금 더 열려있는 나라에서 더 빠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고.. 그러면 돈이라는 실제 물건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뜻인 건 분명하네요. 예전처럼 위조지폐니 뭐니 그런 뉴스도 잘 안 들리는 걸 보니 범죄자들 조차 현금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돈이 사라졌나요? 그건 아니지 않나요? 여전히 여러분과 저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월급을 받고 누구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혹은 심지어 빌려주기도 하죠. 내가 하고 있는 행동 양식 자체는 30년 전, 50년 전과 변한 게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변한 건 돈만 변했네요. 한국만 보더라도 해방 이후 두 번의 화폐개혁이 있었고요, 2000년 초반 신용카드 대란이 있었고요, 이후 삼성페이의 등장으로 우리의 생활 전반이 바뀌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변화가 있었죠. 이 중 우리에게 가장 큰 변화를 준건 역시 신용카드 대란이었겠네요. 왜냐고요? 그때 우리는 현금을 쥐고 있지 않아도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우리는 이제 지갑에 현금이 두둑이 있지 않더라도 ‘나 큰일 났네’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달랑거리는 카드지갑 혹은 휴대폰만 들고 다니지요. 오히려 짤랑거리는 동전은 귀찮고, 두둑한 5만 원권은 기분은 좋지만 혹시 누가 훔쳐갈까 봐 겁이 납니다. 부담스러워요. 제 돈은 제 통장 안에 숫자로 존재할 때 가장 안심이 되고 기분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근본적인 질문으로 도달해야만 맞습니다.
돈이 뭘까요?
우리는 모두 성인이지만, 이 질문을 하면 대부분 사람들의 답이 둘 중 하나로 모이게 됩니다. ‘버는 것’ 혹은 ‘쓰는 것’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대답이 우리 성인들의 경제관념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버는 것과 쓰는 것은 완전히 반대에 있는 개념이다 보니, 이 둘을 균형 있게 분배해서 행동하는 건 초인이나 가능합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사람은 ‘버는 사람’과 ‘쓰는 사람’으로 나뉘어서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제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듭니다. 나는 버는 사람인가요? 쓰는 사람인가요? 형태도 없는 것을 ‘벌고’ 그것을 다시 ‘쓰고’ 아아- 오늘도 내 월급이 통장을 스친다. 하면서 하루하루 매달매달을 살다 보니 결국 올해가 저뭅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우리는 일분일초도 빠지지 않고 돈의 영향력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통장이 말라가는 월 말이 올 때마다 생각하죠. 나는 돈이 한 번도 넘칠 만큼 있었던 적이 없다는 걸요.
억울합니다! 갑자기 25년 전 엄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너 크면 이거 다 줄게 엄마한테 맡아둬’ 삼촌이 줬던 3만 원, 할머니가 주신 5만 원, 사업 성공했다던 큰어머니네가 통 크게 주셨던 10만 원.. 그거 다 어디 갔죠? 엄마는 왜 나에게서 돈을 가져가 버렸나요? 내 세뱃돈은 어디로 갔냐고요. 그거라도 있으면 지난여름 펑펑 쓴 에어컨 전기세도 좀 편하게 냈을 텐데, 나는 다 컸는데, 왜 엄마는 세뱃돈 안 돌려주나요? 전화해서 따져봐야 ‘너 교복 사느라 다 썼다’라고 할 게 뻔 하니 말해봐야 소용도 없습니다. 큰어머니가 그때 차라리 10만 원을 안 주셨었더라면 지금껏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안 쓰는 삶’을 선택하신 우리네 부모님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제 코 묻은 돈까지 빼앗아 모으셨던 것 같은데 실상 지금 와서 보면 그렇게까지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단 말이죠. 결국 엄마나 나나, 돈 없는 삶을 사는 건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세상에 돈 없는 게 나뿐인가 싶어 뉴스를 봅니다. 진짜 개 황당한 제목의 뉴스가 저를 부글부글 끓게 만듭니다.
‘가진 건 7억짜리 집 한 채뿐인데, 나보고 어떻게 살라고’
내용은 더 가관입니다.
‘7년 전 은퇴한 ㅇㅇ씨는 지난달 관리비를 내지 못하고 가스와 전기가 끊겼다. 부루스타로 밥을 해 먹고, 복지센터에 가서 쌀과 김치를 얻어와 생활한 지 3달째다. 지난여름 폭염에 이어 올 겨울 다가올 추위가 너무 걱정되어 기자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아니 이 양반이 장난치나… 나는 전세는 고사하고 월세에 살며 강제적 비혼자가 되어 독수공방 벽을 긁는데, 밤에 오줌 마려우니 요강 좀 가져다 달라는 소리를 하고 있잖아? 그 집을 팔면 나머지 인생 평생 골프나 치다가 가겠구먼 뭣하러 그걸 짊어지고 있는 거지? 노령 인구 많아서 표 받으려고 이런 기사 쓰는 거 맞지? 진짜 혁명 마렵네. 원조 레카는 유튜브 사이버레카와 어그로를 끄는 실력이 질적으로 다르구먼!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러닝메이트인 xx씨도 부평에서 주방 직원만 4명에 홀직원 7명 쓰는 엄청 큰 족발집 하는데, 그 사람도 러닝 모임 나와서 뒤풀이할 때마다 자기는 돈 없다고 징징대고.. 친구 남친은 삼전 다닌다고 했는데 연봉 빵빵한 그 사람도 제 월급으로 집은 꿈도 못 꿔요 하면서 맨날 돈 없다고 그러고.. 세상에 돈 있는 사람은 누구며, 그 돈은 어디에 있고, 왜 나와 이 세상은 돈이 없다고 하는 걸까? The end is nigh. 세상의 종말이 온 걸까..
하지만, 나도 엄마도, 러닝메이트 xx씨도, 노령인구 ㅇㅇ씨도, 친구남친 삼전맨도, 모두 돈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돈이라는 개념의 형태가 고정되어있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Liquidity. 우리말로 하면 유동성이고, 좀 더 쉽게 뉴스에서 표현하기로는 ‘돈을 푼다’라고 합니다. 아니 여보세요. 우리가 무슨 경제학자도 아니고 유동성이니 뭐니 어려운 말 안 하고 근본적인 이야기 한다면서요. 네. 그게 바로 ‘움직임’입니다. 돈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 이 바로 돈이기 때문입니다. 많이 벌어서 갖고 있는 게 ‘돈’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움직임’을 줄 수 있는가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돈이 없다는 뜻은 비교적 적은 규모의 유동성을 의미합니다. 월세와 관리비, 이번달 식비를 ‘움직일 수 있느냐’가 제 유동성이겠죠. 족발집 사장님의 유동성은 저와 비교도 안될 겁니다. 11인의 인건비와 재료비, 관리비와 임대료를 생각하면 그가 타고 다니는 테슬라는 진짜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약에 이번달 인건비를 단 며칠이라도 미루게 된다면 그가 겪을 고통은 아마 당신이 상상하기는 정말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그는 분명 때깔 좋게 입고 있지만 실제로는 돈이 없는 상황일 겁니다. 가장 경제교육이 잘못된 사람은 아무래도 노령인구 ㅇㅇ씨입니다. 그는 충분히 유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빌어먹는 걸 선택했습니다. 집을 팔면 큰일이 나는 줄 알기 때문이죠. 설명하기 쉽게 비용을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돈이라는 것은 어떤 숫자나 비용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의 개념은 이것보다 훨씬 크고 넓은 의미를 뜻합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잘못한 가장 큰 점은 바로 돈을 어디다가 맡겨두라고 했다는 겁니다. 비단 당신의 주머니가 아니더라도, 은행에 넣어놔라, 도 좋은 경제 교육이 아닙니다. 움직임 유동성 그 자체가 돈이라고요? 그러면 세뱃돈을 쓰라는 이야기인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소비는 움직임의 아주 제한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숫자와 지폐로 표시된 이 어떠한 물건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또 어떻게 해야 나에게 돌아오는지에 대한 연습이 전혀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 엄마는 그냥 은행에 넣어놨는데 잘 살던데요.. 네 그러셨겠죠. 80년대의 금리가 19%에 육박했으니까요. 은행은 당신의 유동성을 ‘대신’ 움직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그 대가로 예대 마진을 얻습니다.
은행이라는 존재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돈의 정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1억이라는 돈을 모아서 은행에 예금했다고 가정해 보죠. 당신은 그 대가로 5%의 이자를 얻습니다. 그렇다면 은행과 당신은 1억 500만 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남자친구가 같은 은행에서 1억을 대출받습니다. 당신의 남자친구는 7%의 이자를 내야 합니다. 은행과 당신의 남자 친구는 1억 700만 원이 되었네요. 당신의 남자 친구가 그 1억 원으로 포르셰박스터를 샀습니다. 두 달 정도 열심히 타더니 유지비가 감당이 안된다며 친구에게 9000만 원에 박스터를 팔았습니다. 당신의 남친은 1억 원의 원금과 700만 원의 이자, 그리고 9000만 원의 현금이 생겼습니다.
가만.. 뭔가 이상합니다. 은행과 나, 은행과 남친, 남친과 친구사이에 풀린 돈이 3억 원이 넘습니다. 나는 딱 1억 원을 예금했을 뿐인데요.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요? 제가 돈을 돌려달라고 은행에 요구하면 은행이 감당할 수 있나요? 네.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돌려줄 수 있고, 돌려받을 수 있다는 그 믿음 그 자체가 바로 ‘돈’의 정체입니다. 당신이 맡긴 1억 원은 돈이 가진 성격의 일부분이지 전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1억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그 숫자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돈이 없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을 돈이 많은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은행에서 가지는 돈의 의미는 이런 겁니다. 은행은 당신의 남자친구에게서 1억 700만 원을 돌려받을 자신감,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 있는 자신감과 믿음, 신뢰, 이게 은행에서 말하는 돈의 정체입니다. 1억이든 100억이든 그것은 은행과 당신, 그리고 남친이 가진 신뢰의 표현방식과 크기 일 뿐이지 그 자체가 돈이 아닙니다. 돈은 신뢰고, 그것을 주고받을 때 생기는 어떠한 현상을 우리가 알아보기 쉽게 숫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돈이라는 것에서 가장 많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시간’입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빌리면 비싼 이자를 낼 것 같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오랫동안 빌릴 수 록 비싼 이자를 냅니다. (금리라는 개념은 다음 따로 이야기해보죠) 즉, 당신의 어머니는 몇 모 타리 안 되는 작은 세뱃돈을 가져다 쓴 게 아니라 아무리 적은 금액이어도 굉장한 시간 동안 유용한 것이 훨씬 큰 잘못이 되는 셈입니다. 그 돈을 은행에 넣어놨으면.. 그 돈을 삼성주식을 사놨더라면.. 그 돈을 가만 뒀다가 나한테 돌려주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닌, 시간 + 이동을 했더라면 그 유동성이 돌고 돌아 지금 어떻게 되었겠느냐를 따지는 게 되는 거죠. 결국 여러분들은 돈이 뭔가 잘 알고 계신 셈입니다. 다만 그 유동성을 정말로 활용해 본 적은 있는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를 뿐이죠. 진정한 유동성의 가치가 시간이라면, 나의 돈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