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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형아 Nov 22. 2024

꺼억 잘 먹고 갑니다

'할아버지 또 그러신다.. 얼른 식사부터 하셔요'

며칠 전 와이프와 아이와 함께 칼국수 집에 갔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곳이었죠. 옆테이블에 한 커플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자산과 가격이야기를 하길래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습니다. 여성분은 그 자산에 투자를 한 사람이었던 듯하고 남성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눈치였습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습니다. 


‘지금 현재가격이 1400원 정도인데 600원까지 내렸다가 올라왔다. 내 목표는 1900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600만 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거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리고 1만 원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난 10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낸다. 누가 알겠느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음.. 저런 변동성을 보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코인 같군요. 그리고 일단 여성분은 단단히 물린 게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계산도 엉터리네요. 1400원에서 1900원이 되면 600만 원 수익인데, 그 5배인 1만 원이 되면 1000만 원 수익이라고요? 물린 금액을 남성분에게 거짓으로 이야기하시는군요.. 차가운 돈 앞에서 정신승리는 금기입니다. 사실 이런 대화 많이들 듣습니다. 제 주변에도 당신 주변에도 가득하죠. 그리고 남이야기처럼 들리다 보니 상당히 객관적으로 판단이 되죠. 이 대화에는 많은 것이 결여되어 있음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느낍니다.

 

일단 ‘왜?’가 없습니다. 그 자산이 뭔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팔았다가 많이 샀다가 하는 모양이군요. 그런데 왜 사고파는지 남자분에게 전혀 설명을 못합니다. 오로지 가격만을 이야기하죠. 또, 자꾸 ‘타이밍’을 이야기합니다. 언제 들어갔다가 언제 나오고.. 를 자신만의 가격과 자신만의 이유를 댑니다. 아니, 사실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이 자산에게서 600만 원 이상 수익을 낼 생각뿐이죠. 그러니 그 수익이 나는 시점이 오기 전까지 아무리 큰 손해가 나도 안 판다는 거죠. 그리고 이 여성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손실은 ‘임시적’이고, 앞으로 오게 될,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미래의 이익은 ‘확정적’이라는 겁니다.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고 성립되기 힘듭니다. 그 여성이 멍청해서 이런 편향적인 사고에 갇힌 것일까요? 아닙니다. 애초에 투자 결정을 저런 식으로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사고방식도 그것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사실 불가항력에 가깝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가만 들어보면 엑시트 전략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600만 원을 먹으면 나오겠다’ 죠. 하지만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신 적 없을 겁니다. 아니 그렇게 큰 이익을 봤는데, 왜 안 나오죠? 나 같으면 그때 나오고, 또 1400원 되면 다시 들어가고, 다시 600 먹고, 캬 부자 금방인데! 실제로 그걸 듣던 남자분이 똑같이 말씀하셨거든요. '아니.. 그러면 1400 때 사고 1900에 사고 그것만 반복하면 되잖아?' 라구요. 그걸 듣는 여성분의 얼굴이 어휴.. 내가 너한테 설명해 봐야 네가 뭘 알겠니였습니다만, 과연 1900이 된다 한들 그 여성분은 나올 수 있을까요?

 못 나옵니다. 


올라가는 그래프와 붉은색 화살표를 보고 있노라면 절절 끓어오르는 욕망도 문제지만, 자산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이게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지 아예 감을 못 잡는 겁니다. 그러니 혹시 1만 원이 되면? 같은 발칙한 상상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욕망은 거둬들이고, 그래프 상의 내 이익을 실제 이익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자산을 살 때 충분한 고민이 없었으니, 팔 때 오히려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이 매도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놀랍게도 우상향 하는 자산에도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당신이 만약에 놀라운 혜안으로 비트코인이 100만 원일 때 10개를 샀다고 가정해 보죠. 그리고 그 비트코인이 개당 500만 원이 되었을 때, 당신은 팔 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원금이 5배가 되었는데요? 지금 비트코인이 개당 1억 원이 넘으니 그때 판 사람들 ‘우우~ 바보들~’ 하고 손가락질하겠지만, 그때 팔지 않을 판단을 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상향 하는 자산 속에서도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오로지 자산에 대한 이해와 믿음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믿는 충분한 자산의 가치가 있어야 그게 왔을 때 비로소 팔 수 있습니다. 그게 없다면 그냥 물릴 뿐이죠. 그러니 그래프가 좋은 자산을 찾을게 아니라, 내가 믿을 수 있는 자산을 찾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야 내가 진정한 의미의 ‘존버’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반려주식’ ‘반려코인’ ‘손자에게 물려줄 그 무엇’ 이 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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