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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남주 Nov 17. 2024

12화. 송판영

손판영의 과거

- 판영아. 아직도 안 자고 있어?

야간근무를 마치고 현관문을 들어서던 진영은 동생방에 켜진 불을 보고 한소리 했다.

- 내일 시험이잖아. 누나는 안 피곤해?

머리를 긁적이며 방에서 나온 판영은 누나의 짐을 들어주며 헤벌쭉 웃는다.

- 잠은 충분히 자야 된다니까. 누나처럼 멍하게 지 말라고...

- 았어. 얼른 들어와.


판영의 웃음에 진영도 웃으며 신발을 벗었다.

늦은 밤 현관 비밀번호 소리에 동생이 깰까 봐 굳이 자물쇠식 현관을 고수하 진영.

 하지만 판영은 한 번도 누나가 오기 전에 먼저 잔 적이 없었다.

 진영은 머리가 좋은 동생을 대신해서 취업전선에 빨리 뛰어들었다. 많은 수입이 보장된 직업은 아니었지만, 남매 둘이 생활할 만큼은 벌 수 있었다.

 판영은 또래보다 유난히 머리가 좋았다.

 성적표가 나온 주 주말에 진영, 판영은 성적표를 들고 엄마아빠를 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아빠가 있는 그곳에 진영도 같이 있다.

 

 판영은 누나를 죽게 만든 그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지만 그전에 누나 장례가 먼저였다. 누나가 외롭지 않게 엄마아빠 옆에 자리를 알아봤다.

비용이 그렇게 많이  줄 몰랐다.

돈이다. 복수도 돈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었다.


 복수를 뒤로하고 전당포에서 빌린 돈으로 누나의 장례를 치른 판영은 누나를 찾았다.


- 누나, 나도 곧 따라갈게. 우리 다시 함께 살자.

    남은 일 하나만 마무리하고 갈게.


판영은 처음부터 전당포 돈을 갚을 생각이 없었다. 약속따위도 지킬 생각이 없었다. 이런 약속을 받고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라면 약속따위 안지켜도, 돈을 안갚아도 전당포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쯤은 감안해서 빌려준 돈일거라 짐작했다.


판영은 편의점에서 소주를 한 병 샀다. 술이 필요했다.

뚜껑을 돌려딴 뒤 병째 집어 들고 천천히 한 모금 삼켰다. 씁쓸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안개처럼 무거운 생각을 밀어냈다.

그의 시선은 한쪽 구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둑해진 그늘 너머에 가 나타날 때를 기다리며...


이 그의 입가에 닿을 때마다, 강렬했던 눈빛이 조금씩 흐릿해져 갔다. 처음 한두 모금은 긴장감을 억누르려는 시도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금씩 그리고 빠르게 흥분감으로 변해갔다.


긴장 흥분... 그리고 알코올이 뒤섞였다. 두 뺨이 희미하게 붉어졌고, 눈동자에는 피곤과 알코올의 빛이 번졌다. 머릿속이 무뎌지는 느낌을 억누르려고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그렇게 술이 조금씩 그를 잠식할 때쯤, 골목에서 작은 소음이 들렸다. 판영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몸을 숨겼다. 흐릿했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날카롭게 빛났다.

 

기다렸던 그가 나타났다. 한 손에는 케잌이 들려있었다.  누나를 이고도 뻔뻔히 축하파티나 한다는 생각이 들자 판영은 이내 결심을 굳혔다.


그의 뒤를 따라가며 남은 술을 목 안에 탈탈 털어 넣고 병목을 아래로 해서 손으로 꽉 쥐었다.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그의 머리를 뒤에서 내리쳤다. 그는 힘없이 쓰러졌고, 쓰러지며 놓친 현관문 사이 속에서 맨발로 문 앞에 나와있던 어린 남매 둘을 보았다.

 판영은 문 닫히는 소리와 바닥에 떨어진 케잌을 뒤로하고 그대로 둠을 달렸다. 속이 메스꺼웠다. 술 때문이 아니었다. 구멍에서 무언가가 계속 올라왔다.


 판영은 획을 바꿔 조금만 더 살기로 했다.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평소의 판영이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그런 일.

술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판영은  안에 들어있던 소주병을 들어 올려 박기진을 위협했다.

- 죽기 싫으면 어서 가! 지금은 돈 없어!


박기진은 양손을 들어 공격할 생각이 없음을 어필하며 말을 건넸다.


- 고객님, 그럼 제가 언제쯤 다시 오면 될까요?


송판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 올 필요 없어... 조만간 해결될 테니까...


송판영이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박기진의 뒤에서 굵직한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 송판영 씨, 발하시죠


박기진은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본인보다 10cm는 더 커 보이는 덩치가 서 있었다.

송판영과 긴장상태를 유지하느라 뒤에 저런 덩치가 온 것도 몰랐던 박기진은 깜짝 놀랐다.


박기진은 양쪽을 번갈아보다가 그 덩치에게 물었다.


- 누... 구시죠? 


덩치는 박기진을 무시한 채 송판영에게 향했고, 송판영은 체념한 표정으로 문을 다시 닫았다.


박기진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한 덩치에게 자존심이 상듯, 덩치의 팔 소매를 살짝 잡았다.

덩치어쭈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뒤, 박기진을 내려보며 팔을 돌려 박기진의 양손을 자신의 손으로 억세게 잡았다.


------

- 사장님, 락이 없는데 박기진씨한테 전화해 볼까요?


- 걱정되나?


- 아니요. 그냥 일을 귀찮게 만들까봐...


- 약속 때문에 박기진을 무작정 채용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리 일이 아무에게나 맡길 만한 일이 아닌 건 자네가 더 잘 알잖아.


사장은 담배를 꺼내 물며 말을 이었다.


- 박기진이 왜 계속 백수였는 아나?

쓰는 거 싫다고. 적성에도 안 맞는 사무직만 지원했지. 왜 몸 쓰는 게 싫었을까?


덩치는 박기진의 양손을 잡고 뒤로 꺾어 무릎을 꿇게 할 셈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덩치가 무릎을 꿇고 있다. '내가 악력에서 밀린다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그 덩치 사내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박기진은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아니 누군지 여쭤본 건데 다짜고짜 손을 잡으시면 저도 방어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손 풀 테니까 가만히 있으세요.


박기진은 슬며시 손을 풀었고 덩치는 풀린 손목을 잡고 돌리며 천천히 일어서는 듯하다가 오른손 주먹을 박기진을 향해 날렸다.


박기진은 로 살짝 몸을 제치며 주먹을 피했다. 덩치

바닥을 묵직하게 밟으며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의 주먹은 매번 허공을 갈랐다.

무리하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다가오자 박기진은 그 틈을 이용해 팔 안쪽으로 파고들며 상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동시에 다리를 걸어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닥에 꽂힌 그는 그제야 박기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 누군데 일을 방해하는 거야? 상관없으면 방해 말고 꺼져.


박기진은 바닥에 누운 그에게 손을 내밀며 얘기했다.


- 상관있습니다. 고객님께 돈을 받아야 해서요.


덩치지금 상황이 이해가 간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박기진의 손을 쳐며 말했다.


- 전당포 사람이야? 그럼 더더욱 방해하면 안 되지! 돈은 입금될 테니까 꺼져!


- 돈이 입금된다고요? 어떻게요?


- 알 거 없고 그냥 가라고.  


박기진은 어리둥절했지만 순순히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송판영을 보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송판영은 일어서 손을 털고 있는 그 덩치에게 말을 건넸다.


- 지금 가면 되나요? 계약대로 오늘 돈 입금해 주세요.

 4천은 약속 전당포에... 나머진는 그때 얘기했던 곳으로...


 아까의 날카롭고 신경질적이던 송판영은 온데간데없고 체념한 표정의 한 젊은이만 있었다.


' 뭔가 이상한데?'


박기진은 사장에게 화를 걸었다.


- 사장님, 지금 어떤 덩치랑 송판영 씨가 같이 있는데 돈이 입금될 테니 걱정 말고 가라고 하는데...


박기진은 사장에게 오늘 있던 일을 간략히 보고했다.

- 사장님, 그리고 돈은 입금한다고 해서... 저한테도 돈을.......


사장은 말을 끊었다.


- 절대 고객을 놓치지 멜리나가 갈 때까지 기다려.

 

- 멜리나가 누구?...


뚜뚜... 전화는 끊겼다.


박기진은 이번 임무에 나오기 전 사장이 했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내 역할은 고객 안전담당이라고. 돈을 받을 때까지 그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


박기진은 덩치의 앞을 가로막았다.

덩치도 한 숨을 쉬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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