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째깐한게 자꾸 뎀비고 그러냐.
3개월 차에 우리 집에 온 호두는 처음에는 경계심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그저 해맑은 아기 강아지였다.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고, 재미있고, 마냥 즐거운 멍멍이. 그리고 예방접종을 맞으러 동물병원을 드나들고, 산책을 시작하면서 호두는 겁쟁이로 변신했다. 바깥세상은 호두에게 너무 큰 자극이었나 보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호두는 작은 몸을 바짝 웅크리고 가족들 다리 뒤로 숨어들었다. 낯선 사람이라도 다가오기만 하면 꼬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달달 떨었다. 말 그대로 쫄보 녀석이 따로 없었다.
시간은 강아지에게도 좋은 약이었다. 호두는 자꾸 산책을 나가며 바깥활동에 차츰 적응을 하였다. 총총 걸어보기도 하고, 풀밭을 파닥파닥 뛰어보기도 하고, 가로수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며 차츰 탐색의 범위를 넓혀갈 수 있었다. 그러다 길 가는 다른 강아지에게도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씩씩한 청소년 강아지로 변해가던 호두는 중2병이라도 걸린 듯 어느 날부터 180도 반전된 모습을 보였다. 아무에게나 으르렁거리고, 아주 매섭게 왈왈 짖었다. 동네 시비꾼이 따로 없었다. 째깐한게 아무한테나 자꾸 뎀비는 모양새가 아주 호기로운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가족들의 근심은 깊어져갔다.
호두가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데에는 작지만 아주 슬픈 사연이 있다.
호두가 늘 산책을 하는 시간에 자주 마주치는 강아지들이 있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타이밍과 산책길 루트가 비슷한 집들이다. 그중에 하얀색 말티푸도 한 마리 있다. 호두와 같은 말티푸라 털 색이 서로 다른 것을 빼면 얼굴 생김은 꽤나 비슷하다. 그런데 성격은 (그 당시로서는) 정반대였다. 푸들의 명랑함 대신 말티즈 특유의 도도함과 앙칼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했다.
호두는 처음부터 이 하얀 친구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몇 번이나 공원에서 마주친 후, 나도 용기를 내어 하얀 친구의 보호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강아지끼리 인사해도 될까요?”
허락을 받은 뒤 리드줄을 살짝 풀어주자 호두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다. 냄새를 맡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그 순간! 하얀 말티푸가 불시에 날카로운 소리로 짖으며 호두의 코 앞에서 입질을 해버렸다. 정말 한 끗 차이로 코를 물리는 상황을 피했다. 호두는 혼비백산해서 뒤로 물러서다 거의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몹시 분했을까? 충격을 받은 호두는 다시 앞으로 달려들 듯 으르렁거리며 맞짖기 시작했다. 그날부터였다. 호두는 거짓말처럼 변해 버렸다.
길에서 만나는 강아지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으르렁, 왈왈. 심지어 자기 덩치의 열 배쯤 되는 대형견에게도 덤벼들 듯 짖었다. 다행히 대형견들은 코웃음 치듯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소형견과 마주칠 때는 난감할 때가 많다. 물론 진짜 부딪혀서 싸움이 나지 않도록 리드줄을 짧게 잡고 있지만, 아르르르 왈왈, 짖어대는 소리에 사람들 이목은 집중되고, 마주 오던 강아지와 보호자는 깜짝 놀라 길 한편으로 멀찌감치 비켜선다. 그때마다 아이고, 우리 애가 원래는 안 그런데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몇 번이나 하며 난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여야 했다.
처음엔 안 되겠다 싶어 호두를 크게 혼냈다. 하지만 아무리 혼을 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요즘은 다른 강아지가 마주 오는 게 보이면 일부러 혀를 똑똑, 차서 호두의 시선을 돌린다. 혀로 입천장을 쳐서 똑똑 소리를 내면 호두는 저를 부르는 줄 알고 시선을 마주해 온다. 호두가 나를 쳐다보면 바로 간식을 꺼내준다. 이제는 호두도 이 패턴을 알았는지, 얌전히 다른 강아지와 스쳐 지나가는 날이 점점 늘고 있다.
사실 호두의 시비는 강아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끔은 사람들에게도 으르렁 모드가 발동한다. 그런데 웃긴 건, 덩치 큰 아저씨나 힘이 세 보이는 사람에게는 멀리서만 왈왈 짖다가 막상 다가오면 먼산을 바라본다. 반대로 체구가 작은 여자나 아이에게는 끝까지 악다구니를 부리며 소란을 피운다. '강약약강'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호두의 으르렁거림과 짖음은 사실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을 감추려는 나름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작고 소심한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괜히 더 큰 소리를 내고, 더 거칠게 굴면서 자기 갑옷을 두르는 건지도 모른다.
호두야, 그렇게 가짜 갑옷을 입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가 지켜줄 테니, 너는 그저 너답게 있어주면 돼. 설령 쫄보라고 해도 괜찮아. 쫄보에서 동네 시비꾼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조금 더 단단한 강아지로 자라 가는 과정을 우리는 기꺼이 함께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