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맛있어?
처음 우리 개가 풀을 뜯어먹는 장면을 목격한 것은 봄날의 캠핑장에서였다. 날이 풀려 나무 밑 여기저기에 돌나물이 비죽비죽 자라 있었다. 호두는 몇 번 킁킁 냄새를 맡더니 와작와작 뜯어먹었다.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황을 두고 하는 말 아닌가? 근데 우리 개는 왜 풀을 뜯어먹지? 아직 어린 강아지라 먹어도 될 것과 안 될 것을 구분 못하나?
하지만 호두는 먹어도 되는 풀과 먹으면 안 되는 풀을 귀신같이 구별한다. 인구수가 많지 않은 소도시라 우리 동네 길가에는 풀이 지천이다. 서울 한복판처럼 깔끔한 제초작업은 언감생심 기대도 할 수 없다. 산책길에 호두는 오만 풀떼기 사이를 누비며 킁킁 냄새를 맡다가 가끔 민들레잎은 뜯어먹지만 그 외에 잔디나 강아지풀 같은 들풀은 절대 먹지 않는다.
아기 강아지 시절 호두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탐낸 적이 없었다. 식탁이나 거실 테이블에서 우리 가족이 무엇을 먹든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식사를 준비하다가 그만 실수로 모둠샐러드 봉지 옆구리를 주욱 찢어버리고 말았다. 샐러드용 채소가 후두두둑 흩어 떨어졌고, 얼른 주워 담았지만 일부 상추와 양배추 조각이 바닥에 남아있었다. 한참 배변훈련을 위해 바닥에 사료 알갱이를 흩뿌려주던 때*여서 그런지, 호두는 내 곁으로 도도도 다가와서는 날름날름 바닥에 덜어진 채소를 주워 먹었다.
* 강아지는 휴식하거나 밥을 먹는 장소에는 배변을 하지 않는 습성이 있어서, 배변패드 주변을 제외하고 집안 바닥에 사료 알갱이를 뿌려 노즈워크를 하듯 먹게 해 주면 아무 데나 쉬를 하는 버릇을 고칠 수 있다.
"그걸 먹으면 어떡해!"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제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말은 귀신같이 알아듣고, 호두는 잽싸게 가장 큰 양배추 조각 하나를 입에 물고 거실에 놓인 제 쿠션으로 도망쳐 짭짭 먹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급히 휴대전화를 열어 강아지가 사람 채소를 먹어도 되는지 찾아보았다. 다행히 독성이 있는 일부 채소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과량만 아니라면 강아지가 먹어도 큰 탈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싱크대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호두는 뭐 얻어먹을 것 없나, 하는 표정으로 내 곁을 어슬렁거린다. 그 모양새가 웃기고 귀여워서 가끔 상추, 오이, 당근 등의 채소나 수박, 복숭아, 멜론 등의 과일을 아주 소량 잘라서 호두에게 나누어 주고는 한다. 강아지에게도 표정이 있는데, 호두는 내가 식재료를 손질하다 과채류를 나누어줄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을 보인다.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은 강아지가 먹어도 큰 탈이 없지만, 무턱대고 마구 주어서는 안 된다. 먼저 사람에게는 무해하지만 강아지에게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 급여 가능한 음식인지 잘 확인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대파, 양파, 마늘 등 매운 채소는 먹을 수 없고, 과일 중에서도 포도나 아보카도, 과일씨는 먹이면 안 된다. 그리고 새롭게 먹어보는 음식은 알레르기가 있을 수 있으니 소량만 주어 반응을 보아야 한다. 알레르기가 없는 채소, 과일이라도 너무 많은 양을 주면 설사를 할 수 있으니 적당량만 주어야 한다.
호두가 과채류를 너무 잘 먹으니, 기왕 주는 것 더 건강한 방식으로 주려고 하루는 브로콜리를 삶아 보았다. 브로콜리는 데쳐서 주는 것이 강아지에게 더 좋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데쳐 적당히 식힌 뒤, 먹기 좋게 잘게 잘라 호두 밥그릇에 담아주었다. 호두는 신이 나서 팔랑팔랑 뛰어와 냄새를 킁킁 맡더니 질색하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너 저번에 생 브로콜리는 잘 먹었잖아. 이거 브로콜리야. 먹어 봐."
손으로 들고 호두 입가에 대주었지만, 호두는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고 브로콜리를 거부했다. 너 주려고 데친 건데 네가 안 먹으면 어떡하니. 나는 브로콜리의 이파리 부분만을 남겨, 다음 끼니 호두 사료 그릇 위에 토핑처럼 얹었다. 호두는 거부감 없이 사료를 먹기 시작해지만, 입 안에서 브로콜리만 골라 수박씨 뱉듯 퉤퉤 뱉어내고 사료만 삼켰다. 엉망이 된 바닥을 닦아내며 나는 중얼거렸다. 진짜 별 꼴이야.
호두는 브로콜리뿐만 아니라 익힌 채소는 다 싫어한다. 애호박도, 당근도 생으로 주면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지만, 익혀 주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 대신 생 채소는 종류를 불문하고 뭐든 너무 잘 먹는다. 호두가 어디까지 채소를 먹을지 궁금하여 가끔 향이 센 채소를 조금씩 주어봤는데 아무것도 가리는 것이 없었다.
깻잎을 조금 뜯어주니 냠냠 먹어치우고, 더 달라는 눈빛으로 내 발치에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호두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시키지 않아도 얌전히 '기다려' 자세를 취한다.) 다음엔 와일드루꼴라를 줘봤다. 역시 없어서 못 먹더라. 네가 진정 이것까지 먹을 수 있겠느냐는 마음으로 준 채소는 고수 이파리다. 쌀국수를 배달시켰더니 고수잎이 따로 포장되어 왔는데, 우리 가족은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버리기 전에 호두가 먹는지 보자며 뜯어주었는데,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며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외쳤다.
"호두야, 그게 맛있어?"
호두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그 의미가 바뀌어버렸다. 더 이상 황당한 상황을 이르는 말로 들리지가 않는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짭짭하는 소리이다. 질겅질겅 풀을 씹는 얼굴에는 평화와 행복이 가득 찬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아주 듣기 좋은 소리다. 호두야, 맛있게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