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崩壞
사전적 의미로는 ‘무너지고 깨어짐.’
나에게 붕괴되다, 이 단어는 건물이나, 교각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날 때 쓰이는 단어 정도였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쓰일 단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그 사고가 완전히 뒤 바뀌게 된 계기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때문이었다.
나는 반찬욱 감독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세련된 촬영기법, 다시 볼 때마다 새로이 보이는 인물의 설정이나 매력들이 좋았다. 그중 단연 최고로 꼽는 작품은 나에게는 헤어질 결심이다.
극 중 유능한 형사가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할 용의자인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용의자 신분에서 벗어나게 된 여인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지만 결국 그 여인이 살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그 대사가 뇌리에 아직도 남아 있다. 왜 붕괴라는 표현을 썼을까. 마음이 아파요, 나는 무너졌어요 등 여러 가지 단어도 있었을 텐데. 그 여인이 중국인이라는 설정이라 해석의 여지가 충분한 단어를 썼을까? 새로웠고 좋았다. 정성으로 쌓아 올린 마음이 그대로 무너지고 깨어져 붕괴되었다는 심정을, 주인공 중 형사의 그 당시 심정을 저만큼 전달할 수 있는 대사가 세상에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삶에 있어 붕괴라는 단어를 쓸 만큼의 상황을 얼마나 겪고 살아갈까..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여러 만남을 했고 또 이별을 겪었다. 저마다 형태나 모양은 달랐지만 이별의 모양이나 형태는 비슷했다. 순간 아프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추억으로 남았다.
가장 최근에 이별하며 들은 말은 나를 붕괴시켰다.
“당신의 우울과 불안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 단 한순간도 평온했던 적이 없다.”
이 말이 나를 붕괴시켰다. 관계의 잘못이 아닌 이별의 모든 책임이 나에게 전가되어 돌아온다. 관계에서 분명 적당한 다툼도 있었지만 충분히 행복했고 즐거웠던 모든 순간들이 평온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나날들이 나의 왜곡된 기억이라고 나를 몰아세운다.
분명 즐겁고 행복했는데 평온하지 않았다니, 또 우울과 불안함의 영향을 받았다니,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을까.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명 나와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나 역시 그녀와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이제 그녀와 미래를 꿈꿨던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한다. 마음의 붕괴 그 자체를 겪고 있다.
김광석 노래 중 그런 노래가 생각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녀가 나에게 아픈 사랑을 줬으며 나를 붕괴시킨 사람일까,
아니면 나는 어느 누군가에게도 평온함을 줄 수 없는 인간일까..
모든 것을 리셋할 수 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나는 현재 붕괴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