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출발선에 두고 떠나야 한다.
2024년 서울동아마라톤 10km. 얼리버드에 당첨되는 행운 덕분에 무심코 신청했지만, 대회를 기다리는 동안 짧은 달리기 생에 격변이 일어났다.
매번 5km 남짓 달리던 내가 처음으로 10km를, 나아가 하프까지 달렸다. 블로거들의 달리기 번개 모임에 참석해 RCNB(Running Crew of Naver Bloggers)의 일원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롭게 달리며 달리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마음은 막연하게, 그냥 더 빨리, 더 오래, 더 멀리 달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구체적으로 10km를 50분 이내로 들어오겠다는 열망을 품은 까닭은 외부 요인이 더 컸다. 직전해 10km 대회를 52분 56초로 완주하자, 주변에서 다음에는 50분 이내로 완주할 수 있겠다 격려해 주었기도 하고, 동아마라톤 공지에서 참가자들이 개인 기록을 경신하기 좋도록 평지 위주로 코스를 구성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거듭 연습하면서 점차 부풀어 오르는 열망에 비해 실력은 미덥지 못하다 생각했다. 실력 대신 초조함이 늘었고 내 마음을 당연히 모르는 대회날은 다가오는 속도를 높였다.
대회 전 2주간은 정말 가관이었다. 쏟아지는 업무와 스멀거리는 통증과 널을 뛰는 기분이 융합했다. 늘 참가하던 10km인데, 국내 3대 메이저 대회인지 몰라도 중압감이 이전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회 전날에는 그 전날 밤과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크루와(대회 시 러닝 크루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에 내 정보를 등록하기조차 잊어버렸다. 허둥대다 동생의 타이름 섞인 격려를 듣고서야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50분 안에 들어오면 정말 좋겠지만 과거의 나를 이기기만 해도 좋다고.
이후에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3월이 도래한 이후로 매일 여력이 될 때마다 했던 상상을 또다시 했다. 출발선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다리는 상상을.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가장 고대하기 때문에 매번 대회에 참가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솔직하게 글로 적고 읽으며 다짐했다.
내일, 드디어 대회다. 내일이 올까 싶었는데, 정말 오는구나.
내일의 내가 지금까지의 나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순간을 즐기면 더욱 좋겠다.
출발선 앞에서 느끼는 설렘을 끝까지 안고 가보자!
대회날, 몇 차례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다행히 4시 반에 일어났다. 테이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하느라 준비에 30분이나 걸렸지만 목표한 5시에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지하철 첫 차에 올라 대회장에 도착하니 6시 반이었다. 물품보관소는 7시부터 개방한다 하여, 주변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거대한 포카리스웨트 캔 풍선이 떠 있었는데 몹시 귀여웠다. 애드벌룬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특별한 모양으로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개비가 내렸다. 주자들을 생각하며 비가 그치길 바랐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달리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그래서 점핑 잭과 스킵, 수영 시작할 때 항상 하는 준비체조, 다리 늘리기와 팔 돌리기 등 다양한 스트레칭을 하다가 물품보관소가 열려 물품을 맡겼다.
이후에는 늘 그랬듯 워밍업을 했다. 본래 3km를 생각했지만 도중에 묘하게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 2km에서 마무리했다. 그러고도 스트레칭을 이어가다 출발지로 이동하라는 말에 따랐다. 나는 B조였는데, 출발선이 생각보다 멀어 내심 놀랐다. 앞으로 가도, 또 가도 D조의 끄트머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골목 끝까지 가고도 방향을 틀고서야 겨우 B조에 합류할 수 있었다.
지난 8개월 간, 이 출발선에 서기를 줄곧 고대해 왔다. 대기하는 열기, 각자 호기와 용기를 끌어안고 서 있는 자리에 나 또한 함께이길 바랐다.
나에겐, 적어도 달리는 나에겐 꿈이 있다. 서른 해 넘게 살면서도 꿈은 터무니없다 치부하던 내가 달리면서 무려 세 가지나 꿈꾸게 되었다. 10km를 50분 안에 들어오기, 5월 말에 하프 또는 30km 달리기, 가을 제마에서 첫 풀을 완주하기.
돌이켜 보는 지금에야 당연히 모두 이뤘지만, 이때의 나는 당연히 몰랐다. 이때의 나는 그저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할 수 있을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이 어떻든 나는 달려야 하기에.
B조, 출발.
멈추면 끝이다. 기억해. 박자 계획을 원동력 삼아 첫 1km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달리는데 묘하게 빠른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평균 페이스가 4분 32초였다. 엄청난 오버 페이스. 무조건 낮춰야 했다. 4분 42초. 낮추자 계속 되뇌며 달렸다. 4분 51초, 더 낮춰. 다행히 5분 1초로 조율할 수 있었다. 안도했다. 이제 이대로만 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도중에 사람이 많아 음악이 잠깐 끊겼지만 무덤덤하게 달리니 다시 돌아와서 더 안도했다.
롯데월드타워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부터 앞에서 넘실거리던 까만 풍선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시계를 보았다. 나는 4분 55초로 달리고 있었다. 저렇게 큰 풍선이라면 페이스메이커일 텐데, 1시간 페이스메이커는 이 속도로 달리지 않을 텐데…….
깨달았다.
50분 페이스메이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