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대한항공의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일주를 했다. 내 평생 다시없을 프레스티지 세계일주였다.
일정을 짜면서 미주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항공편이 마땅치 않아 찾다 찾다 간신히 밴쿠버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KLM 비행 편을 찾아 예약하게 됐다.
처음 계획에는 없던 밴쿠버를 가게 됐고 대서양 횡단 비행편의 좌석 선택을 그냥 1A로 잡았는데, 그 선택이 대박이었다. 왼쪽 창을 낀 좌석 덕분에 비행 중 오로라를 영접한 거다!
마지막으로 오로라를 본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무척이나 그리웠었는데 비행기에서 오로라를 보게 될 줄이야.
탑승 후 모니터에 뜬 비행 노선을 보니 항공기가 옐로나이프 상공을 지나간다. 옐로나이프는 세계에서 오로라를 볼 확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나도 10년 전에 그곳에서 오로라를 봤었다. 그 당시 캘거리에서 옐로나이프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오로라를 살짝 보긴 했지만 그건 오로란가? 하며 카메라로 확인해야 하는 정도였다.
우리는 비행 내내 창밖을 계속 관찰하기로 했다. 오로라는 북쪽 하늘에 나타나기 때문에 동쪽으로 비행하는 항공기에서는 왼편 창에서만 볼 수 있다. 1A 좌석은 시야를 가리는 날개도 없다. 저녁 5시 40분 출발하는 비행기였는데 이륙하자마자 곧 해가 지고 노을이 물들었다. 오로라는 밤에만 볼 수 있으니 좀 더 어두워져야 한다. 비행기가 옐로나이프에 가까워지면서 승객들은 슬슬 잠을 잘 준비를 한다. 기내 조명이 꺼지니 밖을 내다보기는 더 좋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거짓말처럼 창밖에 오로라가 나타났다!
처음엔 희미하게 한 줄기, 잠시 후 조금 굵어지다가 오로라 너울이 드리워지고 모습을 바꾸면서 춤을 춘다. 아무리 봐도 싫증 나지 않는 환상적인 풍경이다. 한 가지 모습으로 가만히 있지 않고 끝없이 자태를 바꾸는 오로라의 춤은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비행기 창문에 두 사람이 교대로 코를 박고 오로라를 보노라니 자려고 하던 뒷자리 승객이 도대체 뭘 보는 거냐고 묻는다.
"노던 라이트야!" 알려줬더니 얼른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본다.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중에도 더 작은 창문에 코를 박고 오로라를 보고 있다가 뒤에 선 승객에게도 알려주고 함께 봤다.
지나가던 승무원에게 "노던 라이트야!" 했더니 "정말?" 하며 깜짝 놀란다. 바로 창문에 달려가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승무원은 이 노선 초짜, 북극항로 노선을 많이 다닌 승무원은 자기가 그동안 비행 중에 찍은 오로라 사진들을 보여준다.
오로라가 구름 위로 넓게 펼쳐진 위로 북두칠성이 선명하다! 처음에 내가 오로라 떴다고 알려줬던 승무원이 우리 자리로 와서 자기가 방금 전에 조종석에 들어가 찍었다며 아주 선명한 오로라 사진을 보여줬다. 작은 창문에서 보는 오로라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조종석 넓은 유리창으로 보는 오로라는 얼마나 장관일까!
가을이나 겨울철 밴쿠버(또는 시애틀)에서 유럽으로 넘어가시는 분들은 저녁 비행기를 타시라. 자리는 북극 방향을 볼 수 있는 왼쪽으로 잡고. 아무리 오로라 활동이 활발해도 땅에서는 구름이나 날씨의 영향으로 볼 수 없는 날이 많지만 하늘 위에서는 볼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이 날도 비행기 아래에는 짙은 구름이 깔려 있어 아랫 세상에서는 오로라의 장관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처음 발견한 오로라는 이 좌석 저 좌석으로 말이 전해져 많은 승객들이 오로라를 봤다. 한 시간 훨씬 넘게 오로라를 실컷 보고 9시간 비행이 끝나 착륙 준비를 하는데 가운데 좌석에 앉아 잠만 잤던 승객이 한 마디 한다.
"비행 중에 노던 라이트가 떴다는데 못 봤네.“
나는 J에게 속삭였다.
'오로라는 찾는 자에게 다가오는 거지.‘
이렇게 우리의 유럽 여행은 행운으로 시작되었다.
마무리 팁.
최근 인터넷에서 발견한 <대한항공 조종사가 알려주는 비행기 탈 때 꿀팁들>에 ’환상적인 오로라를 경험하는 법‘이 나와 있다.
’미주 동부에서 귀국하는 야간 비행 : 토론토, 보스턴, 뉴욕, 아틀랜타, 워싱턴 DC에서 출발한다면, 오른쪽 창가 좌석이 유리합니다. 이륙 후 약 3시간 반을 지나며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유럽에서 귀국하는 길 :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비엔나에서 출발한다면, 왼쪽 창가 좌석을 선택하세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나 중부 시베리아를 향할 때까지 오로라의 신비로운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기본은 당연히 저녁 출발 비행기.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비행기가 북극권 루트로 비행할 수 있을지가 함정이니 비행 노선도를 보며 북극권을 지나는지 확인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