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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탈리아 요리를 집에서 해 먹기

이탈리아 식재료

by Bora

이번 여행에는 서울에서 요거트 종균도 챙겨 왔다. J의 지인이 그 유명한 카스피해 유산균 종균을 현지에서 공수해 와 분양해 준 것인데 집에서 거의 1년 넘게 매일 아침 먹고 있다.

요거트 한 국자에 우유를 500밀리 정도 붓고 하루를 두면 상큼한 요거트가 된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까지 온 이 요거트에 블루베리와 견과류를 넣어 계속 먹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견과류는 비싼 편인데 피우지의 슈퍼에서는 껍질을 깐 아몬드와 피스타치오가 서울보다 싸고 신선해 보인다. 생블루베리까지 사서 매일 먹기로 했다. 요거트만 먹어도 하루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아침에 목요시장에서 사 온 토마토와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 한 덩어리, 올리브 몇 알을 꺼냈다. 어제 맛본 올리브는 짜지도 않고 깊은 맛이 풍겨 나와 어느 요리에든 잘 어울릴 것 같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가끔 눈도장만 찍다가 처음 사 본 못난이 토마토를 썰어봤다. 올리브유를 살짝 뿌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오오 풍미와 식감이 남다르다. 이 토마토는 어떤 종류일까? 사진을 찍어 검색을 해 보자.


포모도로 쿠오레 디 부에(Cuore di bue), '황소의 심장'이란 뜻이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토마토 품종이고, 생긴 게 심장 모양이라고 해서 황소의 심장, 단면으로 썰었을 때 그 크기가 스테이크만 하다고 해서 '비프스테이크 토마토', 잘 숙성한 프로슈토 향이 나기 때문에 '프로슈토 토마토'라고도 불리는, 이탈리아 토마토의 제왕이었다. 값은 다른 토마토보다 조금 비싸다.


이 토마토에다 목요일 시장에서 사 온 생모짜렐라를 듬뿍 썰어 넣고, 향긋한 올리브와 루꼴라를 곁들인다. 그 위에 질 좋은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뿌리니 아침 식사가 초 호화판이 됐다. 먹으면서 몸에 좋은 영양이 쑥쑥 들어가 콜레스테롤도, 혈압도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 입 먹고는 "정말 맛있다. 서울 가면 여기 아침이 그리워지겠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쿠오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단어.

어렸을 때 읽은 동화 제목이 쿠오레였는데? 아보니 <엄마 찾아 삼만리>를 쓴 작가다. 쿠오레는 나중에 <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출간됐다.

그 쿠오레가 바로 마음, 심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참 따뜻한 내용의 책이었다는 기억만 아스라하다.

쿠오레 디 부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먹으니 부드러운 식감이 마음을 녹여주는 듯하다.


쿠오레 디 부에를 검색하다 '최고의 이탈리아 요리는 질 좋은 재료 그 자체'라는 문구를 보았다.

맞거나 말거나 원래부터 요리에 관심이 없는, 그러면서 맛있는 건 좋아하는 나에게는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이탈리아에 사는 동안 최고의 이탈리아 요리를 열심히 먹어야지. 일단 목요일은 양질의 식재료를 구하려 재래시장에 꼭 출근해야겠다.


호기롭게 맛있는 냄비밥을 먹여주겠다며 큰소리치던 J의 결과는? 세 번이나 시도한 끝에 '죽도록 냄비밥 만들어봐야 전기밥솥 밥하고 별반 다르지 않네' 하면서 깨갱하고 꼬리를 내려버렸다. 사실 적절한 불 조절로 잘만 지으면 냄비밥이 맛있긴 하지. 우리 엄마가 나 고3 때 매일 아침 나만을 위한 냄비밥을 해주셔서 내가 그 맛을 잘 알거든! 그러나 부엌에서 식사를 위해 30분 이상 시간을 소비하는 것도 귀찮은 나로선 불 옆에 붙어서 제대로 냄비밥을 해 낼 정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재료 본연의 맛을 최고로 치는 이탈리아 요리의 정신은 마음에 쏘옥 들 수밖에.




브런치 이웃인 고추장와플님이 앞 글의 댓글로 '치마 디 라파(Cima di rapa)' 란 이름의 이탈리아 채소를 소개해 주셨다. 나물을 먹는 서양인이라니... 하면서.


마침 슈퍼에 가니 치마 디 라파가 떡 하니 있다. 값도 착해서 한 다발에 0.99유로다.

'치마 디 라파'란 '순무 윗부분'이란 뜻이다. 우리 말론 '무청'인 셈이디. 알려준 레시피 대로 마늘 쫑쫑 넣고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 페페론치노 가루 조금 뿌려 섞으니 이 무청 볶음이 맛도 기가 막히다. 시래기? 미나리? 비슷한 식감에 쌉쌀하고 향긋해서 밥반찬으로도 딱이다. 태국이나 베트남에 가면 즐겨 먹던 모닝글로리와 비슷하면서도 뒷맛은 더 좋다. 한국에서 나물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집에서는 실패를 거듭하여 외식에서만 열심히 먹는 나도 할 수 있는 쉽고도 맛있는 요리다. 이탈리아에만 있다는 이 채소를 있는 동안 열심히 먹어야겠다.


한국 요리에는 똥손인 나도 이탈리아에서는 자신감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벨기에 사시는 고추장와플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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